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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Oct 24. 2021

06. 박물관과 사랑에 빠질 때

영월은 박물관 도시야


 나는 박물관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선 뭐든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한다. 또 시간을 보낼 때 무엇이라도 배우고 읽었다는 감각을 사랑한다.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 낸 문화와 역사, 변화를 모두 사랑하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한 사람이나 특색 있는 박물관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는 참 흥미로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최고의 장소이다. 


 여행지로 떠날 때면 늘 첫 번째로 박물관 정보를 검색한다. 박물관은 계절에 상관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좋고, 비가 올 때도 갑자기 날씨가 덥거나 추워졌을 때도 피하기 딱인 장소라서 여행의 안심보험 같은 존재이다. 여행을 준비할 때 우선 지도를 펴고 박물관들을 표시한다. 그리고 박물관 주변으로 맛집들을 알아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기에 일단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소화를 시킬 겸 박물관을 천천히 걸으면서 각 박물관마다 펼쳐진 다양한 세계를 흡수한다.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의 풍요가 동시에 차오른다. 


 홀로 여행을 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나 아름다운 카페에 가고 싶을 때도, 그 도시의 규모가 있는 박물관에 찾아가 보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많은 박물관에서는 전시 해설자를 두고 있어서 그분들이 설명해주시는 시간에 찾아가면 질의응답을 하면서 전시를 보는 재미가 있고, 또 작은 규모의 박물관에서는 직접 관장님과 수집가님을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박물관의 기념품 샵을 둘러보다 보면 지역의 특산물과 결합한 상품들이 많아서 그 지역 여행을 기념할 무언가를 가지고 싶을 때 들르기도 좋고, 박물관 카페에서는 보통 밖의 카페보다 저렴하게 커피를 판매해서 여유를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그렇게 박물관을 사랑하는 나에게 스무 개 이상의 박물관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영월은 더욱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박물관을 방문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다시 들른 두 곳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미술 박물관과 인도미술 박물관에 들렀다. 미술 박물관들은 다양한 체험활동을 준비해 놓고 있었고, 다채로운 색의 향연으로 단풍잎같이 마음을 채색시켜주었다.





 아프리카 미술 박물관에 들어서니 10월을 맞아서 할로윈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알록달록한 문화품과 조각상, 다양한 악기와 화려한 팔찌, 마스크 기념품들로 인해서 이전에 방문했을 때도 충분히 역동적인 느낌을 받았었는데, 할로윈을 맞이하니 더욱 그 느낌이 진해진 기분이었다. 박물관의 한 중간에는 가까이 가면 소리를 내고 춤울 추는 귀신과 해골들이 늘어서 있었고, 호박 등과 마녀모자 같은 전시품, 체험품도 가득했다. 나도 할로윈 분위기에 취해서 올해가 어느새 시월의 끝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코로나 시대여도 할로윈 분위기를 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할로윈 모자 만들기 체험을 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모자 모양을 만들고 이 빠진 호박모양 스티커를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붙이고 있자니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 만든 할로윈 모자를 쓰고 바로 옆 캠핑장의 기타 치는 해골들과 재밌는 포즈로 사진도 찍었다. 캠핑장의 아이들이 달려와서 나를 보고 웃어서, 함께 웃었다. 

 

 올해 나의 할로윈은 영월에서 벌써 완성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전시도 변함없이 좋았다. 1층에서는 내 키보다도 훨씬 큰 나무로 만든 전통 부족의 조각상들에 감탄하고, 2층에서는 알제리-모로코-튀니지의 다채로운 문화와 예술작품, 그리고 나라간의 교류에 대해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과장된 얼굴 표현과 마르고 긴 몸의 형태들이 이렇게나 할로윈과 잘 어울리다니, 이제 이곳을 떠오르면 함께 할로윈과 이 가을이 떠오를 듯한 느낌이다. 




 인도미술 박물관은 외관부터 인도의 사원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건축물 모양을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는 건물에 잘 쓰지 않는 색감의 상아빛과 핑크빛을 머금은 건물로 들어서면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인도 문양과 인도 악기들이 펼쳐진다. 생전 처음 보는 악기들인데, 체험해 볼 수 있어서 들어보면 각자 영롱한 소리가 났다. 풍류 대장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놋그릇 같이 생긴 악기도 있었다. 예쁜 소리를 위해서 금과 은,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손바닥에 평평히 올려놓고 탁 하고 치니까, 소리가 아주 길고 길게 울렸다. 소리가 과하지 않았지만, 잔잔히 오래 울리는 것이, 마음을 울리는 평화로운 소리였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인도의 예술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종교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신의 모습의 작품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계급과 다른 문화를 가진 인도 부족들의 그림, 조각들이 있었다. 점묘법, 추상 법, 과장법- 여러 기법으로 그려지고 표현된 작품들의 세계에 빠지다 보니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지기도 했고, 종교와 신분제도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전시품 중의 하나는 쌀가루로 야외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한 여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작품 설명을 들어보니 그녀는 매일 아침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 바닥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 그림은 신에게 바치는 그림이다. 쌀가루로 그림을 그리기에, 여자가 떠나고 나면 그 그림은 동물들의 먹이가 될 것이고 그래서 그림은 하루도 가지 못한 채 훼손된다고 했다. 그래도 여자는 매일 아침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신에게 매일 감사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과 공존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선의를 담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매일 망가지는 그림을 자연에 바치며 정성껏 그려내는 그녀의 마음처럼, 21세기의 나는 하얀 원고지를 가지런히 펴고 매일 글을 적어 내려가고 싶다. 설령 그 글이 지워지거나 말이 잘 되지 않더라도. 나 포함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안위와 행복을 기원하며, 오늘도 나는 글을 적는다.


 관장님이 내어주신 인도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인도 문양 도장도 찍어보고, 에코백에 채색도 하며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냈다. 큰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면서 인도 사리 옷들을 비춘다. 헤나 체험도 인도 복식 체험도 할 수가 있어서, 인도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도 고스란히 떠오르며 웃음이 지어졌다.




 박물관에 오면 무언가 한 가지는 꼭 배워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품과 유물에 담긴 만든 이의 마음을 조용히 상상해 본다. 이 소중한 박물관들이 앞으로도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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