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종이란 말이 아직 유행하지 않던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10대, 20대 내내 제법 관종스럽게 많은 곳을 여행했다. 낯선 나라에 갈 때는 늘 게스트하우스에서 잤고, 술 마시고 장기자랑이나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빠지지 않고 주도하고 춤을 췄다. 길거리의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몇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고, 주로 혼자 여행을 다녔기에 다른 여행자들이나 현지의 상인들, 옆자리 테이블의 가족들에게 말을 걸어서 주절주절 나와 한국에 대해서 떠들고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모르는 이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늘 여행은 풍경과 맛집보다도 사람과 경험과 수다로 기억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일상에서는 아니어도 여행지에서만큼은 나는 늘 수다쟁이 관종이 되는 것 같다.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나누고 여행하고 있는 나를 자꾸 자랑하고 싶어진다.
이번 영월 여행은 오랜만에 나의 수다 유전자를 다시 발견하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며 모르는 사람과 많은 정을 나누던 여행 스타일에서, 최근 일이 년간의 여행에서 나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고, 연거푸 인생에 벌어진 안 좋은 일들로 우울해진 탓도 있기는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늘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가고 그 동반자에게 많이 기대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롯이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표정을 가진 두세명의 여행자들에게 사람들은 예전처럼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문화가 확산된 탓이기도 한 것 같았다.
이번에 내가 여행을 떠나면서 결심한 것은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내 모습처럼 자연스러워지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말고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핸드폰과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지 않기도 나의 철칙 중 하나였다. 많이 알아보고 왔으니 여행지에서는 인터넷을 놓고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새로운 장소와 행복을 찾던 예전처럼 여행해봐야지- 싶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조금 외롭게 만들기.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루 최소 수다 필요량이 있는데 지인이나 전화통화 찬스가 아니라 직접 여행지의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그 우연한 대화의 시도가 소중한 기억들로 이어졌을 때 오늘 하루는 참 행복했다며 웃음 짓고 마는 여행 관종이었다는 것을, 멋모르는 타인의 사랑과 잠시의 눈길에 엔도르핀이 흐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다. 재밌었던 대화 몇 개를 이 편에 기록해 둔다.
처음 영월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낯선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새로 생긴 영월의 관광센터로 달려갔다. 지방에 오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관광안내사님께 뭘 묻는 사람은 잘 없다. 앉아있는 안내사님과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내 지난 영월의 여행경력은 이렇고 나의 취향은 이러하고 이곳저곳에 가고 싶은데 추천해 줄 곳이 있으신가,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프로페셔널하고 친절하게 응대해주신 관광안내사님 덕에 바로 모르는 좋은 정보를 얻었었다. 나는 영월에 오기 전 영월과 관련한 수십 개의 팸플릿을 훑고, 책을 대여섯 권 보고, 인스타와 블로그를 눈이 뻘게지도록 찾아봤지만, 역시 모르는 것은 있고 또 있었다. 만족스러운 대화에 시작부터 여행이 좋다 싶었다.
또 좋았던 것은 펜션 주인장님들과의 대화였다. 일주일 살기 중 매일 숙소를 바꾸는 것은 사실 꽤나 수고스러운 일이었지만, 다양한 숙소와 주인님들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짐을 매일 풀고 꾸리는 힘듬을 택했다. 첫 번째 펜션 주인님은 할아버지셨다. 꽤나 재밌는 분이셔서 먼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차종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물이 있냐고 여쭙니 정수기 필터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숙소를 찾게 된 경위까지 나누었다. 또 이야기하다가 보니 시골 숙소 운영의 애로사항과 숙박정보제공을 하는 각종 플랫폼들의 수수료 행태와 만행까지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시골 숙소는 가능하면 전화해서 예약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서울에서 영월로 운전해 오는 동안 쉬고 있던 입을 맘껏 푸니까, 기분이 좋았다. 목이 말라서 막걸리가 쭉쭉 들어가는 수다였다.
그리고 다른 숙소에서 만난 할머니께서는 할머니가 머무시는 집 안으로 나를 들여주셨다. 엄청나게 사랑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통통한 몸매를 과시하는 고양이를 만지작거리며, 할머니가 내어주신 사과대추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들려주시던 자식 자랑과 두 아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할머니들이 해주시는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는 짧아도 어쩜 그리 찰진 것인지, 나는 와- 그러시구나, 와아- 와아- 하면서 다음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펜션에서 만난 손님들과의 대화. 여행에 와서 음식을 나눠먹는 것은 최고의 행복 중에 하나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숯불이 들어오면, 나는 가져온 감자를 굽고 저쪽은 가져온 고구마를 굽는다. 나는 설탕과 마요네즈 소스를 뿌리고 저쪽은 꿀을 곁들인다. 눈앞에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남의 떡도 커 보이는 법!용기 내어서 음식을 반 싸들고 반대쪽 사람들에게로 다가가 본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맛있어요!” 하면 반대쪽에서도 자연스럽게 넉넉한 음식 중 일부가 오가고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트기 시작한다. “어디서 오셨어요?” “내일은 어디 가실 거예요?” 그렇게 소중한 여행정보들과 맛집들을 공유하고 나면, 얻어먹은 식량만큼 마음도 든든해진다.
또 각종 박물관과 체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대화도 빼놓을 수가 없다.
화석박물관에 갔을 때는 사장님께서 자리를 비워 미안하다면서, 코로나 시기로 인한 박물관의 운영상태와 비수기에 문이 잠겼을 때 열쇠를 숨기고 찾는 법 등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재미있었다. 사람 많고 도둑도 많을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시골 여행지에서나 가능한 전화 통화 수다였다. 나는 열쇠를 찾아내 잠금을 해재하고 혼자 할아버지 관장님이 일러주신 대로 중얼중얼 거리며 중요한 것들을 찾아내서 관람했다. 그리고 미션을 잘 마친 손녀딸처럼 전화해서 이런게 재밌었고 잘 봤다며 감사하다며 문단속을 잘하고 간다고 말씀드렸다. 잘했다는데도 불은 껐냐며 연거푸 다시 물어보시는 할아버지 관장님의 말투가 싫지 않고 정겨웠다. 진짜 나의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집안의 문단속 불단속을 물어보는 다정한 말투의 간섭이었다. 얼마나 소중히 모아 오신 물건들일까, 그런 마음이 한두 마디에도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의 다정한 잔소리가 필요한 시기인지도 몰랐다. 듣기 좋아,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석 돌 하나를 선물로 가져가라며 서프라이즈까지 해주시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적은 대화들은 나의 에피소드 중 아주 아주 일부일 뿐이다. 나는 계속 입을 쉬지 않고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영월에서 마주한 사랑스러운 대화의 힘을 조금 적어보면서, 나는 이렇게 한번 또 웃고 감사함을 느낀다. 세상의 수다쟁이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