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 대신 2년 살기
동탄에서 2년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입국할 때만 해도 소프트랜딩이라며 국내 8도 + 제주도 한달살기를 할 생각에 들떠있었어요. 그렇기에 이 글은 To be continued로 마무리할 줄 알았고요. 그런데 여러 변수들이 생기며 예상과는 달리 빠른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수라 하면 한달살기 삶에 급격히 지쳐버린 제 마음과 너무 빠르게 만난 살고 싶은 도시의 조합이랄까요?
탈 서울은 했지만 그리 멀리 나가지 못하고 수도권에 정착한지라 반쪽짜리 성공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저희의 목표는 애초에 '탈 서울, 탈 수도권'이 아니라 '살고 싶은 도시 찾기'였기에 목표 달성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샅샅이 돌아보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면 끝이 없겠더라고요. 더 좋은 곳이 있진 않았을까, 너무 급하게 결정을 내린 건 아닌가 의문이 들 때면 '이곳이 내 마지막 도시는 아닌걸'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 지금까지 대략 3년에 한 번 이사를 했더라고요. 삶의 데이터가 그렇게 말해주기에 지금 정착한 곳에서도 일단 2년만 잘 살아보자라는 마음입니다. 한 달 살기보다 조금 긴 2년 살기라고 생각하면서요.
시간이 흐르며 이곳의 단점을 하나 둘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선택한 도시이기 때문에 그동안 살았던 어느 곳 보다도 더 애정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살고 싶은 도시를 찾는 과정은 나름 순탄했지만 집을 구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는데요. 생각보다 비싼 동탄의 집값에 머리 지끈한 날들을 보내야 했어요. 전세사기를 당했던 일이 생각보다 저희 부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기에, 또 신용을 증빙할 수 없는 백수부부가 집을 구하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기에, 지끈한 머리를 달래기 위해 타이레놀에 의존하며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손을 꼭 잡고 호수공원 산책을 하며 무거운 마음을 흘려보냈고요.
그러다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운명처럼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어요. 호수공원에 매일같이 산책 갈 수 있는 위치이자, 주변에 공간을 오픈하고 싶은 장소가 있어 집을 본 첫날 바로 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달살기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아침, 저녁 집 근처 분위기를 확인하기도 하며 입주일을 기다렸어요. 한달살기 중 집을 구하니 집 내부뿐만 아니라 집 주변을 확인할 시간도 넉넉해 참 좋더라고요.
그렇게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착한 지 딱 일주일이 되었네요. 1년 2개월 만에 다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을 얻게 되니 기분이 묘합니다. 타인의 물건을 빌려 쓰지 않고 저희 생활 스타일에 맞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요.
남편은 한달살기 여행이 종료되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해요. 반대로 저는 당분간 정착이 주는 안정감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이런 마음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1년에 한 번쯤은 한달살기를 할 수 있는 삶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다행히 남편은 단지 내 헬스장이 있어 매일 운동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도 합니다. (일주일째 못 간 건 비밀이고요.)
'왜 화성은 화성시에 없고 수원시에 있는 거야? 화성시에 오산동은 뭐고, 오산시 오산동은 뭐야? 제부도가 경기도에 있었어? 화성시는 왜 이렇게 넓은 거야?...' 등등 아직은 궁금한 게 많은 초보 경기도민 부부입니다만... 앞으로 동탄에서 행복한 2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백수부부의 흔한 서울 탈출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사랑하는 도시를 발견해 원하는 삶의 모양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