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동탄
오늘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동탄 한달살기 마지막 날이에요.
동탄은 서울 탈출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경기도의 여러 후보지역 중 한 곳이었어요. 처음엔 경기도 첫 한달살기 장소로 광교에 가고 싶었지만 괜찮은 숙소를 찾지 못해 동탄을 먼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친언니가 살기에 종종 동탄에 방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런 곳에 살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진주 한달살기를 마치고 동탄으로 올라오던 첫날, 끝없는 가로수와 도심 속 공원을 보며 알바니아 한달살기 시절이 떠올랐어요. 미니 서울 같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편리한 도시의 이점과 수많은 공원이 어우러진 곳으로, 세계여행하며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첫날 마주한 동탄의 모습은 티라나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와 자연의 조화, 딱 제가 원하던 풍경이었죠.
다음날 남편과 손을 잡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았는데요. 잔잔한 호수와 평화로운 공원의 풍경에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특히 사람이 유난히 적은 평일 오후에 공원에 방문하니, 선선한 가을날씨와 함께 느리게 산책하는 사람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곳곳에 심어져 있는 꽃, 돗자리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땀을 흘리며 달리는 사람, 천천히 걷는 연인, 아이 혹은 강아지와 산책하는 부부까지. 어찌나 아름다운 풍경이 던지요. 마음이 쾌적하고 차분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저희도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책과 함께 반찬통에 담아 온 사과를 먹으며 공원의 쾌적함을 누렸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매일 이렇게 소풍 온 것처럼 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또,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인구가 마음에 들었어요. 주말이면 길거리에 혼잡함 대신 적당한 활기가 돌아 좋더라고요.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잠자리채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어요.
산책길 동선에 마트가 있어 종종 장을 보거나 야식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좋았어요. 걸어서 마트나 카페, 서점 등 여러 상권에 모두 접근이 가능해서 동네에서만 살아간다면 뚜벅이로도 살아볼 만하겠다 싶었고요.
한 초등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도서관은 저의 최애 도서관이 되기도 했는데요. 책 소장 권수도 많고 책 읽기 좋은 소파자리도 넉넉해 책등 구경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정말 천국 같은 곳이었어요. 창가에 자리 잡으면 적당히 들어오는 햇살에 한번 감탄하고, 졸음이 오면 바로 앞 공원을 걸으며 잠 깰 수 있는 동선에 두 번 감탄했어요. 잘못 꽂힌 책은 없나 한 권 한 권 세심하게 서가를 들여다보시는 도서 봉사자분도, 역사책을 독서대에 올려두고 공부하는 어르신도, 각자의 삶을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는 청년의 모습도 도서관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고요.
한달살기 숙소는 호수 공원 바로 앞이었는데요. 덕분에 창밖을 내다보면 푸르른 나무와 잔잔한 호수를 볼 수 있었어요. 한 달 내내 봐도 질리기 않는 창 밖 풍경에 이곳에 살며 사계절을 모두 눈에 담고 싶었어요.
한 달을 살아보니 동탄은 저희 부부가 원했던 도시의 조건에 매우 부합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수 공원과 도서관, 적당한 인구, 대형마트, 산책길 등등이요. 물론 '마냥 좋음' 필터를 제거하고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문화시설의 존재는 아직 찾지 못했고, 교통이 그리 편하진 않아 경기버스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 어렵긴 합니다. (같은 동탄에 사는 친언니네까지 50분이 걸리더라고요.) 지금은 날이 좋아 매일 산책할 수 있지만 곧 날이 추워지면 공원의 장점이 무색해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곳에 살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매일 커져갔어요. 적어도 이곳에서는 사람에 치이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당장이라도 이곳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숙소를 예약해 둔 다음 한달살기 장소가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추후 한달살기를 해보려 했던 도시 4곳에 시간을 내 미리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편파적인 판정으로 지금 머물고 있는 동탄에 정착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드디어 도시가 아닌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마다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니, 마음 놓고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찾는다니,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지요.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