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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03. 2024

28인치 캐리어에 담긴 인생의 무게

내겐 너무 무거운 그대

2024년 1월 23일 화요일

우리가 챙긴 짐은 28인치 캐리어 두 개 가득. 왜 또 미련하게 이렇게 많은 것을 챙겼을까. 누가 그러지 않았나, 짐의 무게가 걱정의 무게라고. 난 무슨 걱정이 이리도 많단 말이냐!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짝꿍과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며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1년간 세계여행길에 올랐다. 5개월간 발리와 태국에서 여행의 달고 쓴맛을 경험하며 우리가 원하는 삶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입국했다. 


태국에서 반팔, 반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던 우리가 한국에 돌아오니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패딩 혹은 털 잠바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린 마침 하나씩 챙겼던 긴팔을 입고 입국했다.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웠지만 그래도 한국의 공기가 마냥 반가웠다.


짝꿍과 나는 각자의 부모님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부모님과 5개월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한국에 있으며 못 보는 것과 해외에 있느라 못 보는 것은 심적으로 조금 다르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숙소마저 따로 잡으면 부모님을 자주 못 뵐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나름의 생각으로 부모님 댁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물론,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집밥을 잔뜩 먹고 싶은 나의 검은 속내를 부정하진 못하겠다. 

물론, 부모님 댁에 머무른 것을 부모님도 진심으로 좋아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셨으리나 믿는 수밖에.

물론, 나의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동네 '인싸'시라 나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긴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은 단 2주. 정말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해오던 도서 포스팅 주 5회와, 주말 2회 여행 포스팅을 그대로 유지하며, 양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곧 결혼하는 친구 집들이, 이렇게나 어려울지 몰랐던 축사 준비, 한국 방문의 이유였던 친구의 결혼식 참석, 세계 여행 중 태어난 조카 100일 잔치 겸 친오빠네 집들이, 1차 효능이 떨어질까 부랴부랴 맞은 2, 3차 A형 B형 간염 예방주사, 겨울 짐 재정비 등 정말 바빴다. 이런 일정을 미리 예상했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입국했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도착'이라는 단어가 어찌나 반갑던지!




캐리어도 새로 사야 했다. 한국에 들어오며 캐리어가 부서진 것이다. 안 그래도 다음 여행지가 동유럽이라 사계절 옷을 챙겨야 하므로 큰 캐리어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겸사겸사 28인치 캐리어 두 개를 샀다. 그리고는 '혹시 몰라...' 병과 '빈 공간은 용납 못하지...' 병에 걸려버렸다. 넓어진 캐리어에 신나 공간을 마구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짐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손은 멈출 줄 몰랐다.


지난 여행에서도 설레는 마음에 예쁜 옷을 잔뜩 챙겼었다. 하지만 실제 세계여행은 상상과는 좀 달랐다. 신혼여행지에서나 입을법한 예쁜 옷을 입을 일이 평범한 세계여행자에게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고이 모셔간 부피를 꽤 차지하는 원피스는 한 번을 입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와야 했다. 뼈저린 교훈을 얻었음에도 '이번엔 유럽이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또 원피스 3벌을 챙기고 말았다. 미래의 나의 외침 "당장 그 손 멈춰!!"


무엇이든 바리바리 챙기는 습관은 캐리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짝꿍과 나는 카페를 갈 때 각자의 백팩을 하나씩 멘다. 짝꿍은 그램을 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방이 가볍지만 나는 개발할 때 성능 좋은 걸 써야 한다며 샀던 두꺼운 맥북을 여전히 쓰고 있기에 노트북 하나만 가방에 넣어도 어깨가 휜다. 지금은 타이핑 밖에 안 하니 컴퓨터에게 미안할 정도다. 


거기다, 혹시 책이 읽고 싶어 질지도 모르니 아이패드를 챙긴다. 노트북 배터리가 나갈지도 모르니 각자의 배터리도 챙겨본다. 맥북은 충전기도 무겁다. 하늘이 좀 흐린가? 우산을 챙긴다. 해가 있나? 그럼 선글라스를 챙긴다. 입이 심심할지도 모르니 간식도 챙겨본다. 아, 다이어리는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 외 가방에는 휴대용 티슈며, 위험한 상황을 대비한 호신용 호루라기, 펜, 앞가방, 지갑, 핸드크림, 립밤 등등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는 건 모조리 챙겨뒀다.


아이고 허리야...




누가 그러지 않았나, 짐의 무게가 걱정의 무게라고. 항상 메고 다니는 백팩의 무게도, 28인치 캐리어를 가득 채운 짐의 무게도 모두 우리의 걱정의 무게였다. 한국에서 잔뜩 챙겨 온 선크림은 장사라도 해야 할 만큼 많이 남아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하루에 하나씩 신어도 남는 양말과 살면서 몇 번 먹어보지도 않은 비상약들까지... 아슬아슬한 캐리어 무게에 비행기를 탈 때마다 또 뭘 버려야 하나 고민 가득이다. 걱정의 무게가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낸다. 걱정은 캐리어 안에 쌓이고 쌓여 짝꿍과 내 인생의 무게가 되어버렸다.


캐리어대신 배낭 하나로 여행하는 여행자들 보면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의문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끝에는 출국할 때보다 가벼운 캐리어를 가지고 입국하겠노라, 걱정의 무게를, 인생의 무게를 한껏 줄여보겠노라 다짐해 본다. 


이미 싸버린 짐은 어쩔 수 없는 노릇. 가득 찬 28인치 캐리어 두 개와 무거운 백팩을 메고 동유럽의 첫 번째 여행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났다. 


그곳에선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헝가리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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