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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10. 2024

글 하나에 회사원 월급 벌기 가능할까?

가능은 하더라구요

2024년 3월 29일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귀중한 제안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회사원 월급만큼의 원고료를 주던 A기업의 두 번째 제안 거절 메일 중




부다페스트에 오기 직전 짝꿍은 대기업(이후 A기업이라고 부르겠다)으로부터 기고 요청을 받았다. 


제안을 준 곳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기업이었고, 짝꿍이 모 매체에 쓴 글 하나를 콕 집어 맘에 들었다고 했다. 그 무렵 짝꿍은 A기업 말고도 유니콘 기업에서도 제안을 받았기에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우리는 파티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A기업에서 제안한 원고료는 그동안 짝꿍이 글을 기고하며 받은 것에 10배가 넘었다. 대략 평범한 회사원의 한 달 월급정도. 그러니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가 있겠나. 글로 돈을 벌고 싶다는 짝꿍의 목표에 성큼 다가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토록 설레하던 A기업과의 협업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A기업은 처음 컨택 당시 글의 주제를 먼저 제안해 달라고 했지만, 결국 일방적으로 글의 주제를 정했다. 그 주제는 나는 아직도 뭔지 모르겠는 정말 생소한 분야였다. 짝꿍 또한 처음 듣는 분야였지만 A기업은 자료를 줄 테니 한번 써보라고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한, A기업이 제안한 글 마감일은 아주 타이트했다. 그런데 의사소통 과정마저 너무 느려 짝꿍은 작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의사소통이 딜레이 되어 결국 2주 안에 모르는 분야의 글 50페이지를 완성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짝꿍은 '대기업은 컨펌받을 곳이 많아 그럴 수 있다'며 애써 이해해 보려는 눈치였다.


알고 보니 짝꿍의 이름으로 글이 발행되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 사내 간행물에 쓰일 것이라 짝꿍의 글이 회사 이름으로 발행된다고 했다. 짝꿍은 이 대목부터 매우 실망스러워했지만 그래도 대기업과의 협업(?)이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원영적 사고를 했다. 또한, 글 한편에 회사원 월급을 받을 수 있다니, 그 달콤함을 놓치기 어려웠다.


짝꿍은 고민 끝에 A기업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정신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소한 분야의 글을 쓰려니 글 진도가 잘 나지 않았고 분량과 시간의 압박 또한 엄청났다. 짝꿍은 평소 글 소재에 대해 나와 이야기도 나누고 의견도 물으며 착실히 글을 써내려 갔지만 이번에는 온통 괴로움 가득한 얼굴로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상당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짝꿍은 글을 마감하기 전까지 부다페스트 생활을 마냥 즐기진 못했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묵직한 불편함이 있었던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돈 버는 것이 짝꿍의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돈은 많이 주지만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니, 또 자신의 이름으로도 발행되지 않는, 남이 정해준 주제의 글을 쓰려니 그 시간이 온통 괴롭기만 했던 것 같다. 원고 제안인 줄 알았으나 갑작스레 대필 작가가 되어버렸다. 짝꿍의 말을 빌리자면, 대학원생에게 자료조사를 부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A기업은 짝꿍의 글이 언제 어떻게 발행되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원고를 받고 수고했다, 감사하다 혹은 쓴소리의 피드백 조차 해주지 않았다. 협업 증명서를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그것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짝꿍이 협업했던 타 잡지는 글 발행 후 피드백은 물론, 발행된 잡지를 집으로 직접 보내주기까지 했다. 다른 기업과 비교해 보면 A기업과의 협업은 정말 아쉬운 경험이다.


짝꿍의 고생덕에 우린 한 달 생활비를 벌었다. 이후 A기업은 짝꿍에게 다시 한번 협업하자며 연락을 해왔다. 나는 짝꿍의 고생과 괴로움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봐 놓고도 그들이 주는 돈의 유혹에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짝꿍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짝꿍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A기업의 두 번째 제안은 거절하기로 했다.


A기업과의 협업은 협업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했으며 짝꿍의 앞날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모르는 주제로 긴 글을 억지로 써내는 연습 정도는 됐을 것이다. 남이 정해준 주제의 글을 쓰며 그 성과가 내 것조차 되지 않는다면 그건 회사 일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짝꿍은 회사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을 하려고 퇴사했기에 A기업의 제안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짝꿍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잠시 돈의 유혹에 흔들리긴 했지만 하고 싶은 일보다 돈이 더 중요했다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A기업의 두 번째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짝꿍은 찰떡같은 글 소재를 찾고 나면 즐겁게 글을 쓴다. 나는 짝꿍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다. 글을 쓰며 괴로워하더라도 잘 쓰고 싶음에 괴로워하는 것과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느라 괴로워하는 건 다르다. 


앞으로도 짝꿍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썼으면 좋겠다.


글과 씨름하던 부다페스트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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