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Jun 13. 2024

디지털 노마드가 한달살기를 하는 이유

자꾸 이동하면 힘들거든요...

2024년 2월 26일 월요일

여행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아직 동유럽 여행이 2주나 남았는데 우린 그다음 일정인 오흐리드 한달살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여행은 힘들어…




부다페스트 한달살기를 계획할 때만 해도 이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바르셀로나 한달살기, 포르투갈 한달살기 그리고 유럽 여행을 좀 해볼까 싶었다. 장거리 비행기 탄 김에 뽕뽑자!라는 심산으로.


그런데 쉥겐협약이라는 것이 있더라. 쉥겐협약은 EU 협약국을 180일 내에 90일'이나'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참 좋은 협약인데... 우리 같은 장기간 여행자들에게는 쉥겐협약 국가를 3개월 '밖에' 여행하지 못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쉥겐이라는 단어를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야 처음 들어보게 되었다. 우리의 6개월 유럽 여행 계획을 들은 독일 사는 지인이 무슨 비자를 신청했냐고 물은 것이다. 비자도 없이 6개월이나 유럽 여행을 하려고 했다니... 하마터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될 뻔했다.


이미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해 뒀기에 이는 무를 수가 없고... 급하게 다음 여행지를 새로 찾아야 했다. 헝가리 근처인 체코, 오스트리아와 쉥겐 협약에 포함되지 않은 발칸국가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발칸이라는 새로운 맵이 열리니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북마케도니아... 등 수많은 나라의 이름이 팝콘처럼 튀어나왔다. 선택지가 많아지자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한 달간 이 나라들을 다 가보기로!




여러 나라를 여행할 생각을 하니 드디어 우리가 세계 여행자라는 것이 실감 났다. 그러나 세계여행의 준비는 참 고되더라. 한달살기는 한 달간 살집을 '한번' 예약하고, 교통수단 '하나'만 예약하면 끝이지만, 한 달 동안 다개국을 여행하려고 하니 예약할 거리가 산더미였다. 시간과 동선을 하나하나 맞춰야 하다 보니 여행 계획에만 며칠을 사용했다. 여행지에서 여행 계획을 짜며 시간을 소비하는 그 허무한 심정을 아실런지...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거점 도시를 정해두고 각 일주일 씩 머무르며 즉흥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오스트리아 빈 일주일, 체코 프라하 일주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일주일 머물며 틈틈이 근교 여행을 했다. 이런 P적인 성향 덕에 잘츠부르크나 할슈타트 같은 유명 도시는 여행하지 못했다. 당일 표를 끊으려니 교통비가 어마무시하더라.


사실 한 달이면 동유럽과 발칸을 구석구석 여행하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우리는 여행과 함께 일을 병행해야 했기에 평범한 여행자들처럼 빠르게 이동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2만보를 걷고 돌아와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일을 하는 건 정말이지... 저녁마다 아이고야,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고된 일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들이 한달살기를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여행하며 일하기 위해서는 비자, 와이파이 환경, 물가, 숙소, 시차 등등 참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수많은 고려사항과 함께 매번 도시나 국가 이동을 하며 일하는 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또한, 잦은 이동을 하다 보면 여행에도 일에도 뭐 하나에 진득하게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도 한달살기 장소에 도착하면 첫 일주일은 여행하지 않고 일할 환경을 만들고 정착하는데만 집중한다. 최소 28박을 해야 에어비엔비 장기 숙박 할인을 해주는 점도 디지털 노마드 한달살기의 소소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일 하지 않고 마냥 여행만 했다면 동유럽-발칸 한달 간의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만... 이래나 저래나 우리는 많은 나라를 돌며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여행보다 한 도시에 진득하게 머무는 *생활 여행자의 삶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생활 여행자로 살아가려면 긴 시간 여행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이번 세계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과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세계 여행을 하지 않고도 생활 여행자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생활여행자 : 한 도시에 길게 머무르며 평범한 삶을 여행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했다.

이전 03화 글 하나에 회사원 월급 벌기 가능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