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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17. 2024

브런치에 달린 엄마의 응원 댓글

엄마에게 용돈 받는 30대 딸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일기

엄마는 오늘도 밀린 숙제마냥 내 글 두 개를 읽으시더니 댓글을 남기셨다. 엄마가 보고 있어서 그런지 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라는 작은 호수 마을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오흐리드 호수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고 우리는 매일 이 호수는 가짜가 분명하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나는 아름다운 오흐리드에서 브런치북 <퇴사 후 여행하는 흔한 부부 이야기 1>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 우리가 왜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쓰기로 했다. 이 마음을 먹었을 때만 해도 우리의 세계 여행기를 적어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여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과거의 일을 정리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의 힘든 시기를 글로 적으며 다시 마주하니 그 끔찍한 시간들이 내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것 같아 아팠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텨낸 우리가 기특하면서도 짠해 자주 눈물을 흘렸다. 


한편으론 여행기가 넘쳐나는 브런치 세상 속에서 평범한 내 글을 누가 읽어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두 번째 글이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며 구독자가 생겼다. 그 이후에는 인기 브런치북, 구독자 급증 작가, 브런치 메인, 하단 등등 많은 카테고리에서 내 글을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기쁨에 힘입어 주 2회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참 많다.


가장 먼저, 누군가 읽어주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되었다쌓여가는 공감과 조회수를 보며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면 스스로를 나무라며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조심스레 하트를 눌러 작은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또 가끔은 댓글로 여러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이 기뻤다. 그런 기쁨들은 자연스레 글 쓰기 자체에 대한 설렘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동료가 생기기도 했다. 바로 짝꿍이다. 짝꿍은 이미 글로 돈 버는 전업 작가였고, 브런치 크리에이터였기에 글을 쓰면 짝꿍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럴 때면 짝꿍은 수정해야 할 부분을 척척 짚어주고 매번 잘 썼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브런치를 계기로 서로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게 되었다. 함께 글 쓰는 평생의 직장 동료가 생긴 기분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가장 좋았던 것은, 내 삶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 안다고 쉽게 생각한 내 삶이었지만 글로 적고 읽어보니 마치 타인의 삶인 양 새로웠다. 내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철부지 같은 나의 선택들도 과거를 길게 펼쳐 살펴보니 다 이유가 있었고 또 일관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삶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보이기도 했다. 




응원하기 댓글로 소소한 용돈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 주요 출처는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내 네이버 블로그의 애독자(?) 시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졸면서도 재미없는 내 도서 리뷰를 찬찬히 읽어주신다. 그런 엄마였기에 브런치 연재 소식도 바로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고민이 됐다. 딸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부모가 읽기엔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블로그에도 브런치 북 연재 소식을 알렸기에 언젠가 알게 되실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런치북 링크를 직접 보내드렸다. 아픈 손가락 막내딸이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그 이후 엄마는 내 브런치 글에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주셨다. 


재밌는 건, 마치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댓글을 단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왜 모르는 사람처럼 댓글을 남기냐 물어보니, 아는 척해도 되는 거야?라고 오히려 되물어보신다. 그 이후론 급 반말 모드로 댓글을 남기신다(ㅎㅎ).


무려(?) 갤럭시 폴드를 사용하는 엄마지만 매번 앱 설치나 회원가입을 잘하지 못해 도움을 요청하시곤 하는데 어찌 브런치 앱은 설치하셨고 회원가입을 하셨는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브런치 앱 설치를 못하고 내가 처음 보내준 링크를 매번 다시 눌러 글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은 하고 있다. 


그리고 핸드폰 결제하는 방법은 또 어찌 아셨는지 꼬박꼬박 응원의 말과 함께 응원하기 댓글을 달아주신다. 브런치 정산날이 되면 작고 소중한 금액이 내 통장으로 들어온다. 대부분 엄마가 보내주신 용돈이다. 이렇게 나는 30대에 엄마에게 용돈 받는 딸이 되었다.


4월 29일 일기에 적은 바람처럼,

엄마의 응원대로 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p.s 엄마, 이제 용돈은 안 주셔도 돼요. 마음만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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