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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24. 2024

한달살러의 마음을 사로잡은 도시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2024년 4월 2일 화요일 일기

오흐리드가 너무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내 생각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름부터 생소한 나라 북마케도니아의 소도시 '오흐리드'에 한달살기를 하러 온건 '어쩌다 보니'였다. 


쉥겐 협약 국가가 아닌 발칸국을 여행하다 보니 오흐리드라는 도시 이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유명 국가의 도시들보다 생소한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한달살러가 더 많아 보였다. 교통도 불편한 이런 소도시까지 사람들이 한달살기를 하러 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무작정 오흐리드로 향했다.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4시간 달리니 오흐리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며 슬쩍 확인한 오흐리드는 정말 평범한 시골 마을 같았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 한 달간 동유럽 여행을 한탓에 체력이 바닥이었기에 일단 한달살기 할 곳에 도착했다는 것 만으로 만족하자 싶었다.


오흐리드는 동명의 호수를 품고 있는 도시다. 호수 있는 도시 좋지~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숙소에 짐을 대강 풀고 오흐리드 호수 탐방에 나섰다. 해가 쨍한 한낮이라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저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짝꿍과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일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나름 여행 많이 해봤다 자부하지만 이렇게 황홀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엽서에서만 보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호수는 '눈이 부시게' 반짝였고, 호수 끝자락에 걸쳐있는 마을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호수 뒤로 보이는 설산의 풍경은 정말이지 실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호수의 물은 '물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투명했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나의 가난한 표현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젠 우리가 너무 흥분했던 것일 거야, 하며 다음 날 다시 오흐리드 호수로 산책을 나섰다. 어제 만난 그 아름다운 호수는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겼다. 첫 만남의 감흥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흐리드 호숫가를 매일 걷고 또 걸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아름다움을 우리만 봐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곳에 엄마랑 같이 올 수 있다면, 할머니가 이 호숫가를 산책할 수 있다면 아픈 병도 싹 나으실 텐데... 인천-오흐리드 직항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거리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니 점차 익숙해졌는데 오흐리드 호수는 그렇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짝꿍과 나는 한달살기의 마지막 날까지 '에이~ 여기 영화 세트장이잖아~'라며 눈앞의 풍경을 장난스럽게 부정했다.




오흐리드 호수를 매일 눈에 담자, 나의 생각과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


퇴사를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내 마음속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돈'이었다. 그놈의 돈돈돈. 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고도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돈에 대한 욕심은 끝까지 버리지 못할 줄 알았는데... 믿기지 않은 풍경과 마을의 여유로움, 맑고 투명한 오흐리드 호수라는 처방을 받자 굳은살처럼 박혀있던 돈에 대한 생각들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당장 저축할 돈은 없어도 오늘 먹을 음식이 있고 짝꿍과 함께 마음이 편안히 아름다운 자연을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삶도 괜찮지 않을까? 남들처럼 매번 오마카세는 못 먹어도, 명품가방은 못 사도 괜찮지 않을까?


돈이라는 녀석이 막고 있던 생각의 길이 뚫리자 나는 그동안 여행하며 발견한 '좋아하는 일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문득 재밌고 설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드디어 내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좋아하는 일로 부자가 될 수 없어도 괜찮아.

그저 마음이 두근 거리는 일을 하자.


오흐리드 호수의 낮


그리고 밤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자



p.s 짝꿍도 오흐리드에서 글을 썼더라고요. 역시 아름다운 곳이라 글로 남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같은 도시 다른 글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을 확인해보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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