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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01. 2024

내가 그리스 한달살기를 선택한 이유

자칭 전업독서가의 소소한 사치

2024년 6월 2일 일요일 일기

4박 5일 크레타 섬 여행을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 했다. 인생은 조르바처럼!




알바니아 티라나 한달살기 도중 준비해 둔 세계여행 자금 3,000만 원이 모두 동나버렸다. 이제부터는 여행하며 버는 돈으로만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남은 두 달은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시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을 했다.


주머니 사정에 의하면 당연히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이 현명했지만 우리는 다음 한달살기 장소로 그리스를 택했다. 숙소를 늦게 예약한 탓에 한 달 숙소비로 200만 원을 넘게 지출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리스 한달살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했는데, 그리스 현지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소소한 사치를 부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의견에 동의해 준 짝꿍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의 1년간의 세계여행은 '여행'과 '책'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를 포함하는 트립닷북 프로젝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트립닷북은 내가 여행하고 있는 나라 작가의 책을 읽거나,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는 나만의 프로젝트로 그 시작은 태국이었다. 치앙마이 한 카페에서 아이패드로 책을 읽던 어느 날, 내가 아는 태국 작가가 있나?라는 물음과 함께 인터넷 검색이 시작되었다. 검색 끝에 씨부라파라는 태국 작가를 알게 되었고 난 그의 소설 <그림의 이면>을 카페에서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내가 태국 한달살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씨부라파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 수 있었을까? 세상에 너무 많은 작가와 책이 존재하기에... 그 확률은 아주 낮지 않았을까? 


한 권의 책을 고르기까지 여러 기준들이 있을 수 있지만, 단순히 내가 밟고 있는 땅을 기준으로 책을 고르니 평생 접해보지 못했을 법한 작가의 글을 읽게 되었다. 또, 글을 통해 여행지의 역사나 현지인들의 삶을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매력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트립닷북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넘어오면서 트립닷북 프로젝트는 활기를 띄었다. 태국에서는 씨부라파 이외의 작가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유럽에 도착하자 한국어로 번역된 작가의 책이 많아 읽을거리가 넘쳤다. 특히, 헝가리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읽으며 헝가리에도 강제 수용소로 얼룩진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동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부다페스트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도시 속에 숨겨진 슬픔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책과 함께 했던 여행의 순간은 믿기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다뉴브강이 보이는 헝가리 국립 도서관에 앉아 강제 수용소를 통해 만난 부모님의 실화를 그린 헝가리 작가 가르도시 피테르의 <새벽의 열기>를 읽는 기분을 아실는지.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의 한 아늑한 카페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기분은? 북마케도니아 서점 직원에게서 좋아하는 자국의 작가를 소개받는 기분은? 티라나의 한 서점 귀퉁이 책장에서 알바니아라는 국가보다 더 유명한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한국어 번역 책을 발견하는 기분은?




세계여행 초반엔 한달살기 국가를 정하고 읽을 책을 찾기 시작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객이 전도되어 책을 읽기 위해 여행할 나라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기 위해 아테네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 위해 크레타 섬을 여행했다.


누군가 나에게 1년간 세계 여행하며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신다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플리트비체에 다녀온 것도,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보게 된 것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본 것도 아닌 '여행하며 책을 읽던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특히, 트립닷북은 내가 서울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여행을 떠나온 이유가 되어주었다. 


나의 삶은 여행하며 책을 읽는 삶에서, 책을 읽기 위해 여행하는 삶으로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다.



p.s 여행과 책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여행지 작가의 책을 들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사치를 누리길 권해드리고 싶다. 책도, 여행지도 그 무엇도 잊지 못할 것이다.


아테네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사치를 부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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