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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06. 2024

부다페스트에서 발견한 행복의 조건

아주 단순하디 단순한 이유들

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일기

자전거를 타고 근처 공원을 달린다. 공원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모습이다.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호수에는 큰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공원 뒤편에는 빨간 열기구가 떠 다닌다. 벤치에는 책 읽는 사람, 멍 때리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지나간다. 랑고스와 생맥 한잔을 사서 벤치에서 맛본다. 완벽하다! 심지어 오늘은 금요일이다. 금요일 한낮에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니!




동유럽 한달살기 첫 장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돈이 없어서 해외에 산다던 우리가 유럽에 와버렸다. 동남아시아의 저렴한 물가, 일하기 좋은 환경에 만족했기에 다음 여행지로 말레이시아 혹은 베트남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우리의 발걸음은 갑작스레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 <퇴사 후 여행하는 흔한 부부 이야기 1>의 프롤로그의 제목이 '돈이 없어서 해외 삽니다'다.


우리는 왜 부다페스트 한달살기를 결심한 것일까? 나는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 프랑스부터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영국... 등 홀로 유럽 여행을 했기에 유럽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그러나 짝꿍은 달랐다. 짝꿍의 해외여행 경험은 필리핀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유럽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짝꿍에게 무리해서라도 유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언제 이렇게 긴 시간 여행 할 수 있겠어?라는 마음이 우리를 유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럽의 숙소 렌트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합의를 본 것이 동유럽, 동유럽에서도 그나마 물가가 저렴하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였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다고 들었지만 막상 알아보니 한 달 숙소비는 태국의 두 배가 넘었다. 물론 그것도 태국 숙소에 비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집이 말이다. 긴 고민 끝에 가장 합리적인(?) 160만 원(?) 짜리 숙소를 골랐다. 한 달 생활비가 250만 원인 우리가 비행기 값 150만 원에 숙소비 160만 원을 내고 나니 이미 예산초과였다.


마이너스로 시작한 부다페스트 한달살기, 하지만 그 끝은 분명 플러스였다. 돈이 아닌 행복함이 말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한달살기는 어떻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그 비결은 아주 단순했다.


부다페스트의 평범한 거리를 걷기만 해도 좋았다. '멋지다!'를 연발하며 걷는 짝꿍의 들뜬걸음을 카메라에 담고 있노라면 나에게도 그 행복함이 전염되는 듯했다. 부다페스트의 첫날은 짝꿍의 생일이기도 했는데, 해외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이라며 기뻐하는 짝꿍의 모습이 생생하다. 다뉴브강을 따라 저녁 산책을 할 때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굴라시를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짝꿍의 생일날 맛본 헝가리의 굴라시에 반했지만 이미 예산 초과 상태였기에 매번 사 먹을 순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굴라시를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덕분에 평생 사용해 본 적 없는 월계수 잎이나 파프리카 가루로 요리를 했다. 여러 부위의 고기를 사용해 보고 야채도 다르게 넣어보며 우리만의 굴라시를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진짜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음이 실감 났다.


삼시세끼를 만들어 먹다 보니 장 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침에 먹을 사과부터 굴라시를 만들 야채, 고기 등을 구입했다. 가장 저렴한 식재료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비교해 보는 것도, 한국과 다른 모양의 양파나 호박, 처음 보는 야채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수십 가지의 저렴함 빵이 진열된 빵 코너에서 고심한 끝에 고른 빵을 맛보는 일 또한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한국에 살 땐 장을 거의 보지 않았다. 맞벌이라 밥을 해 먹을 시간도 없었고, 뭔가 필요하다 싶으면 쿠팡으로 주문했기에 과일, 야채를 실제로 보고 산적이 거의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리들에서 산 빨간 부직포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구석구석 누비는 일은 산책처럼 재밌었다. 덕분에 저렴하고 싱싱한 식재료를 찾아내는 능력이 생겼다.


부다페스트 한달살기의 하이라이트는 자전거와 푸릇한 공원이었다. 월 4,000원이면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공공 자전거를 빌려 부다페스트 도시 곳곳을 누볐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되어있어 예쁜 유럽풍 건물을 보며 마음껏 달릴 수 있었다. 공원을 달리다 잠시 내려 랑고스와 맥주를 사 먹을 땐 그 소소한 외식이 그리도 행복했다. 작디작은 랑고스 하나를 짝꿍과 나눠먹는데도 웃음이 났다.


부다페스트의 소소한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집에서 해먹은 굴라시와 슈니첼
공공 자전거로 부다페스트 누비기




한국에서 난 행복해지기 위해 '소비'를 선택했다. 고단한 일과 끝에 침대에 누워 쿠팡앱을 켜고 뭐든 장바구니에 담았다. 잔뜩 산 음식은 결국 다 해먹지도 못하고 냉장고 안에서 썩어갔다. 월급이 들어오면 힘든 한 달이었다며 나에게 선물을 했다. 옷이든 책이든 하다못해 쓰지 않는 화장품을 자꾸만 샀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야식을 시켰다. 야식으로라도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이런 여러 보상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부다페스트에선 달랐다. 한 달간 우리가 산 물건이라곤 추위를 타는 짝꿍을 위한 비니 하나가 전부다. 평소였다면 내 목도리나 모자도 함께 샀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중고로 구입하기도 했다. 매일 같은 옷, 같은 신발을 신었고, 유명 카페나 맛집, 비싼 외식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느 때보다 행복한 한 달을 보냈다. 부다페스트에서 나의 마음은 풍족했다. 


소비하지 않아도 행복했고, 행복하니 소비가 줄었다.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소소한 것들이 삶에 크나큰 만족감을 선물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삶에 대해 아주 큰 힌트를 얻은 기분이다.


짝꿍의 겉옷과 딱 어울리는 겨자색 비니는 참 좋은 소비였다.
행복한 삶의 힌트를 준 고마운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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