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웃고 있다.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저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니구나." (동서문화사 번역)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기가 너무 세상과 떨어져 지내서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 듣는다고도 생각합니다.
"나 너무 오랫동안 산 속에서 살아왔나보다. 시냇물소리와 나무들의 속삭임을 너무 많이 들어왔나보다. 염소치기에게 말하듯 나 저들에게 말하고 있으니." (책세상 번역)
염소치기에게 말하듯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차라투스트라는 자기 앞의 군중이 염소치기 수준도 못 되는, '염소떼' 수준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염소치기에게 말하듯 말하고 있어 저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보는 거지요. 저들은 염소떼이니 말이지요. 다음 글을 읽어 볼까요?
"돌보아 줄 양치기는 없고 가축 떼만 있을 뿐! 모두가 평등을 원하고 모두가 평등하다. 자기가 특별히 다르다고 느끼는 자는 제 발로 정신 병원으로 가게 마련이다." (민음사 번역)
양치기는 염소치기랑 같은 말로 보면 되겠지요? 번역이 조금 다를 뿐이지 의미는 통합니다. 모두 평등한, 그만그만한 수준의 양들이 있고 이들은 특별히 자기가 다른 개체들과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다른 개체는 정신 병원으로 가기 때문에 튀는 걸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계속 '모두가 평등한 가축떼'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지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이런 인간들'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다시 말합니다.
"이제는 인간이 자신의 목표를 세워야 할 때다. 이제는 드높은 희망의 싹을 심을 때다. 인간의 대지는 아직도 싹을 심기에 충분할 만큼 비옥하다. 그러나 이 대지는 언젠가 메마르고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민음사 번역)
안타까운 마음에 차라투스트라는 촉구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희망의 싹을 심으라고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요. 왜냐하면 아직 대지가 비옥하니까요. 하지만 미래 어느 날, 대지는 생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뭔가를 하라고 인간들에게 촉구하는 것이지요. 그 미래의 모습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슬프다! 인간이 더 이상 별을 낳지 못하는 때가 오겠구나! 슬프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민음사 번역)
자신을 경멸할 줄 모르는 것, 그것이 더 나쁜 것이라고 차라투스트라는 생각합니다. 자신을 경멸할 줄 아는 건 그나마 나은 것이라는 것이지요.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하지만, 지금 차라투스트라 눈앞에 있는 군중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들은 저들 나름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어떤 것을 갖고 있다. 저들은..... 그것을 교양이라고 부르지. 그런 것이 있기에 저들은 염소치기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지." (책세상 번역)
"슬픈 일이로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그리하여 경멸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의 시대가 올 것이니." (책세상 번역)
눈앞의 군중들은 자신들은 교양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수준 낮은 염소치기와는 급이 다르고, 자신에게 가하는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도 싫어하는 존재라고 차라투스트라는 봅니다. 그러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자기 자신을 경멸할 줄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의 시대가 올 것을 염려합니다. 그런 한심한 인간의 시대를 뭐라고 명명하는지 볼까요?
"나는 그들에게 가장 경멸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말종(末種) 인간이다." (민음사 번역)
"그 종족은 마치 벼룩 같아서 없애기 힘들다. 종말인이 누구보다 오래 산다.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 냈다.'종말인은 이렇게 말하고 또 눈을 껌벅거린다....그들에게 있어서 병든다는 것과 의심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그들은 걸을 때도 조심한다. 돌이나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는 자는 바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끔 적은 양의 독을 사용한다...... 기분 좋은 꿈을 꾸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 독을 사용해 기분 좋게 죽음에 이른다..... 그들은 가난해지지도 않고 부자가 되지도 않는다. 양쪽 모두 번거롭기 때문이다. 아무도 지배하려 하지 않고 또 복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둘 다 번거롭기 때문이다." (동서문화사 번역)
말종 인간, 종말인은 이런 인물입니다. 편안함을 위해 독도 먹고요, 벼룩같이 생명도 끈질기고요, 남한테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는 자들이고요, 가난과 부유도 아닌 중간을 원하고요, 지배도 복종도 아닌 중간에 머무르길 바라는 존재입니다. 그게 번거롭지 않고 편하니까요.
이런 인간, 사실 우리 일상에 아주 많지요. 튀지 않고 중간을 가는 삶. 그게 살기 편하잖아요. 그래서 다들 그런 삶을 지향하기도 하고요. 동양 철학의 '중용(中庸)' 개념이 비슷한 느낌으로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중간의 도를 택하라는 것. 동양 철학의 가르침이고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처세술'로도 아주 딱임 개념이지요.
하지만, 니체는 이런 '어중간한' 태도를 반대합니다.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이런 인간을 '말종 인간. 종말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2022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꽤 많은 사람이 '말종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니체 기준에서 말이지요.
이런 말종 인간에게 희망의 씨를 뿌리라고 열심히 말하던 차라투스트라. 누군가의 고함에 말을 멈춥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그 인간 말종을 내놓아라. 우리로 하여금 인간 말종이 되도록 하라! 우리가 그대에게 위버멘쉬를 선사하겠으니!" (책세상 번역)
두둥!!!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열심히 설명했으나 사람들은 그 인간 말종이 되고 싶다고 말하니요. 오히려 소원이라도 되는 듯 그렇게 만들어만 주면, 차라투스트라에게 당신이 원하는 '위버멘쉬'로 인정해 주겠다고까지 하고 있으니요. 말이 안 통하는 것이지요. 벽하고 얘기하는 느낌, 들지 않았을까요?
상심한 차라투스트라는 슬퍼하면서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내 영혼은 흔들림이 없고, 아침의 산처럼 밝고 영롱하다. 그렇지만 저들은 나를 냉정하고 무서운 농담을 하는 조롱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저들은 나를 보면서 웃고 있다. 웃으면서 나를 미워하고 있다. 저들의 웃음은 얼음처럼 차갑구나.' (동서문화사 번역)
충분히 상심할 만하지요. 하지만 이 와중에도 차라투스트라는 꼿꼿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영롱하다고 하지요? 영롱한 자신의 말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것이라고요. 냉소와 비웃음을 받는 차라투스트라. 고고한 정신과 영혼의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이라는 벽과 대화하며 나름의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자,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한 줄 요약>
"너희는 말종 인간이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영롱한 영혼을 지닌 내 말 좀 들어라! "
벽에다 얘기하는 꼴, 차라투스트라.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년 동안 읽고도 내용을 모르겠어서,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왕이면 강의 형태로 글을 써 보면 내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아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철학, 오독(誤讀)일지라도 내 식대로 이해해 보기'를 위한 작은 시도이니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