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머리말 4

모르는 자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강의4

by 퀘렌시아

네 번째 시간입니다.

머리말 4는 군중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사랑 선언(?)입니다. 선언이라고 한 이유는

"나는 사랑한다."

"나는 사랑하노라."

식의 표현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실제 아무도 안 듣고 혼자 독백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군중에게 말한다고는 되어 있지만요.


머리말 4의 시작은 이것입니다.


하지만 군중을 바라보던 차라투스트라는 의아해졌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번역)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저 '의아해졌다'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뭐가 의아하지? 하고요. 그런데 지금 다시 곱씹어 읽어 보니, 인간들의 속물적 모습을 보고 의아해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따끈따끈한 가르침을 열심히 펼쳤는데, 다 듣고서 한다는 말이 '너 말고, 빨리 광대나 나오라고 해.'식의 말을 들었으니 말이지요. 차라투스트라 입장에서는 자기의 그 멋진 가르침에 열광하지 않고 속물적으로 광대놀음이나 보려고 하는 얕은 인간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게 아닐까요? '얘들 뭐지? 이 인간이란 존재, 왜 이럴까?'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의아함을 느낀 뒤 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에는 인간들의 속성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통찰과, 그런 인간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의아함 느낀 뒤의 첫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 (책세상 번역)


줄타기 광대의 공연 때문일까요? 차라투스트라는 위태로운 '밧줄'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사람을 표현합니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를 잇고 있는 밧줄, 그 둘의 중간에 걸쳐진 밧줄, 단계상 그 둘의 중간 단계인 밧줄.

모두 다 가능한 해석일 것 같습니다.


짐승〈 인간〈 위버멘쉬

짐승-----위버멘쉬

(밧줄=인간)


머리말 4는 인간 존재에 대해 전체적으로 긍정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몰락과 파멸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 중간 과정의 단계인 인간. 그 인간을 차라투스트라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사랑한다고 말한 인간의 모습을 좀 살펴볼까요?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다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랑받을 만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하나의 '과정'이고 '몰락'이기 때문이다." (동서문화사 번역)


"나는 사랑한다. 인식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 언젠가는 초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인식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몰락을 바라기 때문이다."(동서문화사 번역)


"나는 사랑하노라.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 자를. 누군가가 그에게 고마워하기를 바라지 않고 되갚지도 않을 자를. 그런 자야말로 베풀기만 할 뿐, 자신을 보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책세상 번역)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그럼으로써 기꺼이 저 교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니."(책세상 번역)


"나는 사랑한다. 인간의 머리 위에 걸쳐 있는 검은 구름으로부터 방울방울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 같은 자들을. 보라, 나는 번개의 예고자이며,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이다. 이 번개야말로 초인이 아니던가."(민음사 번역)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니체가 사랑한 인간은 '자기 몰락'을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는 영혼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런데요, 전 이 머리말 4에 나온 인간의 속성이 니체가 바라본 인간들의 '실제 상'이 맞을까 싶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 존재의 조악함, 수준 낮음에 대해 작품 전반에 걸쳐 얘기하고 있거든요. 이 부분에서만 인간들이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 자'라니... 이건 완전 칭송이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머리말 4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짐승과 위버멘쉬 중간 단계인 '인간들의 실제 속성'에 '위버멘쉬로 나아가기 전 단계의 바람직한 인간상'을 표현한 것 아닐까 하고요.


실제 모습 + 이상적 모습 = 밧줄 위의 인간 (머리말 4의 인간상)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그럼으로써 기꺼이 저 교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니."(책세상 번역)


특히 이 부분을 읽고, '니체 자신이 이에 해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부의 채찍을 맞는 말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다 정신줄을 놓고 영영 정상인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한 니체. 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꼈기에 스스로 파멸을 하게 된 니체. 그 시대 사람들에겐 말이 채찍을 맞는 건 하찮은 사건이었겠지만, 니체에겐 정신적 충격을 준 큰 사건이었겠지요. 니체는 정신을 놓기 전까지 말을 보면 목을 껴안고 울곤 했다고 해요. 결국 니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저 세상으로 통하는 교량을 건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저 세상'이란 초월적 세계 말고, '자기만의 세상'의 의미이고요. 니체 철학은 초월적 세계를 부정했으니요. 저 교량을 넘어간 자는 일반인이 아니겠지요. 니체가 새로운 인물상으로 제시한 '위버멘쉬' 바로 그 존재일 텐데. 니체는 교량을 건너 간 자이니 위버멘쉬 아닐까요?


위버멘쉬가 꼭 정상인이어야 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정상인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위버멘쉬가 보기에는 정상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진짜 위버멘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버멘쉬로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요.


어느 책에서, 니체가 미친 것을 두고 스스로는 위버멘쉬가 되지 못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식의 설명을 한 걸 봤었는데요, 전 좀 생각이 다릅니다. 아무나 니체처럼 미치진 못할 것 같아요. 니체니까 저렇게 하찮은 사건에 마음 아파하며 자기만의 영역으로 걸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지요.


궤변처럼 느껴질 수 있겠네요. 철학자와 철학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강의이니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으나 제 생각,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니체가 머리말 4에서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통찰한 인간의 모습을 제 말로 간단히 요약해 본다면

1. 인간, 줄 타는 존재. 위태로운 존재.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

2. 인간, 몰락하는 자. 몰락하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음. 고로 차라투스트라가 사랑하는 존재

3. 인간,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는 영혼을 지닌 존재. 고마운 것 갚으려고도 안 하고, 자신이 준 것을 챙겨 받으려고도 안 하는 존재


이런 인간에 대해 한껏 긍정의 메시지를 던진 부분이었습니다.

오늘 강의 한 줄로 요약하겠습니다.


<한 줄 요약>

"나는 사랑한다. 인간을~~~"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년 동안 읽고도 내용을 모르겠어서,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왕이면 강의 형태로 글을 써 보면 내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아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철학, 오독(誤讀)일지라도 내 식대로 이해해 보기'를 위한 작은 시도이니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위버멘쉬, 초인 뜻이 궁금하신 분 : 아래 강의 보시기 바랍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3

https://brunch.co.kr/@csm-93/108



* 이 강의는 세 개 출판사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요, 이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한 책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되어 세 권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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