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간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사는 도시에 처음 들어가게 됩니다. 드디어 인간과의 접촉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도시의 시장에 간 차라투스트라, 시장이기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특히 줄타기 광대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기다리느라 더 모여 있었습니다.
그 군중을 보며 차라투스트라는 당당히, 기죽지 않고 말합니다.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책세상 번역)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하노라."(민음사 번역)
"그대들에게 초인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동서문화사 번역)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매우 낯설지요? 무슨 선지자처럼, 가르침을 전하는 고귀한 존재처럼 말하는 차라투스트라. 이 부분에서도 역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에 대해 짱짱한 자신감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고 지나갈 용어가 나오네요.
위버멘쉬 & 초인
우리는 니체의 '초인'에 대해 많이 들어 봤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지요? '초인'이라는 말이 익숙하고 멋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육사의 '광야'라는 작품에서도 '초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지요.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중에서
먼 훗날 이 광야에 나타날 위대한 존재, 뭔가 우리를 구원해 줄 것 같은 멋진 선지자의 이미지, 초인.
초인이라는 '번역'이 더 익숙합니다. 초인의 사전적 의미는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초인'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느낌은 '아주 뛰어난 인간. 그런 존재 하나. 선지자적 느낌의 그 누군가 한 명, 신적인 존재 느낌의 그 어떤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초인'이라는 단어의 느낌이 말입니다.
"위버멘쉬'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하지요. 이 단어는 독일어 그 자체를 우리 말소리로 음독한 것입니다. 니체가 원문에 쓴 용어 그 자체요. 위의 번역에서 보면, 두 개의 출판사에서는 '초인'을 썼고, 한 개의 출판사에서만 '위버멘쉬'를 썼습니다. 철학자 이진우의 『니체_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라는 책에서도 '초인'이라는 용어를 썼더군요. 이진우 철학자는 '초인'이라는 용어가 개인적으로 더 좋아서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초인이라는 용어가 저도 더 편하고 익숙하긴 한데요, 그래도 저는 '위버멘쉬'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세상 번역가인 철학자 정동호 님은 '초인'이라는 용어는 니체의 의도와는 반대로 '초월적 인격'으로 잘못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의 글을 읽으며 수긍이 됐기 때문이에요.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인물상은, 신적인 존재의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개인 개인이 모두 자기를 극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의 의미라는 것이지요. '남들과 다른 아주 뛰어난 존재로서의 그 어떤 인물'. 즉 '초인'은 니체가 부정하려 했던 '신은 죽었다'의 그 '신'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지요. 니체가 원한 인물은 '인간계가 아닌 저 윗 세상에서 온 것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길 바라는 새로운 인간상'인 거지요. 초월적 신격이나 인격이 아니라 말이지요. 일본 번역을 따라서 하다 보니 초창기의 니체 책 번역에서 '초인'이라는 단어가 쓰였고, 그게 오늘날까지 널리 통용되었으나 지금이라도 원전의 의미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맞는 번역이 될 것이라는 정동호 철학자의 설명. 그 설명에 전 동의합니다.
'위버멘쉬' 번역 문제로 골치를 썩은 것은 영어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superman, overman으로 번역해 오다 그 번역이 니체의 원문 의미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영어권에서도 최근에는 'Übermensch[위버멘쉬]'라는 독일어 용어 자체를 쓰는 추세라고 합니다. 니체 전집 편집위원회 회원인 정동호 철학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진행될 제 강의에서는 낯설긴 해도 '위버멘쉬'라는 용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말 : 이진우 님도 니체 전집 편집위원회 회원입니다. 같이 니체 전집을 번역한 편집위원일지라도 서로 이렇게 의견이 다른가 봅니다. 두 분 다 철학 박사이시고, 대학교 철학 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자, 자, 용어 정리로 얘기가 좀 길어졌네요. 하지만, 중요한 사항이라 생각해요. 한 철학자의 핵심 사상을 담은 것이 그가 선택한 '용어'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초인'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있다는 것, 그 용어의 선택은 여러분 각자가 판단하시면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다짜고짜 사람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겠다고 한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연이어 인간을 원숭이에 빗댑니다. 위버멘쉬에게는 인간이 원숭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원숭이는 일종의 웃음거리이고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너희는 벌레에서 사람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너희는 많은 점에서 벌레다.....너희는 한때 원숭이였다.....사람은 여전히 그 어떤 원숭이보다도 원숭이다운 원숭이다."(책세상 번역)
인간을 벌레나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비난하고 있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이어 계속 얘기합니다.
대지의 뜻에 따르라고 말합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난날엔 신에 대한 불경이 최대의 불경이었으나, 지금은 대지를 거부하는 자들이 최대의 불경이라는 듯한 말을 하지요.
대지는 자연 아닐까요?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는 기존의 기독교인들이겠고요, 그 이전의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따라 이상계(이데아, 천상계.... 등등)에 대해 추종하는 사람들, 그들을 말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따르고 신을 따르지 말라고 말하는 차라투스트라. 신을 추앙하는 자들은 이미 신과 함께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니체 철학의 한 부분에 대해 알아볼까요?
니체는 자연을 존중했다고 해요. 삶의 철학자이기에 삶이 아닌 신들에 대한 떠받듦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한 없이 작아지는 인간 존재, 그런 문화와 사상이 니체가 살던 서구 사회를 썩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니체는 했다고 합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건, 서구 사회에 대한 극약 처방인 거지요. 정신을 뒤흔드는 전기 충격과 같은 말 말이지요.
그의 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이 부분은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머리말 3 은 기존 가치관과 반대되는 진술이 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좀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의미 파악이 안 되어서요. 기존 가치관과 반대되는 진술이기에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이해가 안 되는 거지요.
행복, 이성, 덕, 정의, 동정, 선... 이런 것들은 다 좋은 의미 아니던가요? 그런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이 개념들을 다 공격합니다. 차라투스트라 본인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게서 역겨움을 느끼고 이것들을 경멸하는 말을 뱉기를 바랍니다.
"그대들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커다란 경멸에 마주하는 시간이다. 행복이 구역질 나는 것이 되고 그대들의 이성이나 덕성도 역겹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나의 행복,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은 가난이고 더러움이며, 비참한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이다...."
"나의 이성,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 이성은 가난하고 더러우며 비참한 자기만족일 뿐이다."
"나의 덕,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들은 모두 가난이고 더러움이며, 비참한 자기만족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정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불꽃이었던 적도, 석탄이었던 적도 없다...."
"나의 동정심,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동정이란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자가 못 박히는 십자가가 아닐까? 하지만 나의 동정은 그런 십자가가 아니다."
"그대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말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외쳐본 적이 있는가? 아, 그대들이 그렇게 외쳐본 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서문화사 번역)
차라투스트라는 군중들에게 묻습니다. 그대들을 혀로 핥아줄 번개가 어디 있는지, 그 광기가 어디 있는지를 말이지요. 뜬금없이 웬 번개와 광기 얘기일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번개와 광기는 좋은 의미입니다. 니체가 바라는 강렬한 충격, 평범한 사람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그 무엇 말이지요.
"보라,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그가 바로 번갯불이요 광기렷다!" (책세상 번역)
니체의 이 일장 연설을 들은 시장의 군중, 반응은 어떨까요?
그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비웃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광대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하지요. 이 말에 진짜 광대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라 생각하고 나타나서 곡예를 시작하며 머리말 3은 끝납니다.
머리말 3은 니체 사상의 중요 내용이 많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제가 꼽은 내용은
1. 신은 죽었다는 사상 강조
2. 대지, 자연의 말을 따르자는 사상
3. 위버멘쉬 개념의 최초 언급
4. 사람들 속에 들어갔으나 그들의 비웃음을 받는 차라투스트라.
5. 행복, 이성, 덕, 동정심, 정의에 대한 공격(가치전도 : 기존 가치를 뒤집음)
그리고 하나 더, 영혼 우위의 사상에 대해서도 날 선 공격을 가합니다.
"일찍이 영혼은 몸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최고의 경멸이었다. 영혼은 몸이 마르고 추해지고 굶주리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여 영혼은 몸과 대지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다. 그러나, 아. 바로 그 영혼 자신이 마르고 추해지고 굶주렸던 것이다. 잔혹함. 그것이야말로 이 영혼이 즐기는 쾌락이었다!" (민음사 번역)
좀 난해하지 않나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을 읽으며
'뭐라는 거야? 잉? 뭔 말이냐고?'
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지금 다시 꼭꼭 씹어가며 읽으니 조금 낫네요. 끝까지 이 책을 다 읽은 상태이니, 이런 게 뒤에도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알겠기에 그냥 좀 이해가 되는 게 있고요, 세 권의 번역본을 펼치고 서로 비교하며 글을 읽으니, 이 책 번역에서 좀 이해 안 됐던 내용이 다른 책 번역을 읽으며 이해되는 점이 있더라고요. 이 머리말 3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니체 철학에 대해 알기 위해 요즘 읽고 있는 다른 자료들 덕분에 니체의 이 글들이 처음보다는 조금 더 이해되는 면도 있고요.
자, 이렇게 오늘 강의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줄 요약>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차라투스트라.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년 동안 읽고도 내용을 모르겠어서,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왕이면 강의 형태로 글을 써 보면 내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아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철학, 오독(誤讀)일지라도 내 식대로 이해해 보기'를 위한 작은 시도이니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 강의는 세 개 출판사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요, 이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한 책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되어 세 권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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