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수난과 모순】

【침탈자의 잔재와 한민족의 응어리】

by Jupitere 하늘색 홍채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서글픔이 아리게 서린 곳은 괌의 수어사이드 절벽과 사이판의 만세절벽이다. 역사의 아픔은 그곳에 잠드신 원혼에 억울한 왜곡사를 규명하여야 할 사명과 소신으로 치욕과 한의 응어리를 어르고 달래게 한다.

일제의 잔혹과 반성하지 않는 비겁함은 한민족 징용병의 통곡을 뒤로한 채, 총알받이도 모자라 천황에 대한 강요된 충성심으로 일본군을 대신하여 자살에 이르도록 하였다. 절벽에서 휩쓸린 민족의 한 서린 영혼인 메아리와 자연의 겸허한 감화는 차디찬 안갯속 잊힌 진실이었다.

미국 포로로 가장한 일본 패잔병은 그렇게 한반도에 정유재란과 동일선 상에서 발을 디뎠다. 일제의 잔혹한 뻔뻔함은 다시 열도 세력과 작당하여, 반일감정을 일으키며, 좌익을 기치로 한반도에 어엿한 세력으로 할거하고 있다. 정당한 배상과 역사의 사죄에도 용서받지 못할, 짐승들은 한반도 징용병에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데도 철면피였고, 역사적 왜곡의 혈안으로 민족성을 짓이겨 파헤쳤다.


왜곡된 역사의 모자이크는 역설적 예술이다. 혐오에 캘리 그라프는 아픔의 상처를 드러내는 공옥진 여사의 한 서린 병신춤이었고, 왜곡에 다시 마주한 평행선이다. 되풀이된 역사에서 경로의 의존성을 탈피한 용기는 민족의 용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시류는 우여곡절 속에 민족성을 이룩할 서광이 밝아오고 있다. 삼위일체는 내선일체와 같이 경로의 의존성에 빠지는 함정으로 이르는 지름길이다.

한반도 소나무숲에 맞지 않은 수종으로 인한 계절성 알레르기는 역풍으로 민족의 시류를 일깨우지만, 아둔한 세대는 일제의 패잔병 세력에 속아 바보들의 행진에 동참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벽장 속 태엽을 감아둔 시계는 역사성을 품고, 영원의 시간 속으로 핏빛 허망함으로 흐른다.

민족의 영령에 대한 위령제와 조상에 대한 시제와 제사를 망각한 민족은 불충과 불효로 민족 영령과 조상령이 허기진 아귀가 되어 한반도 민족이 병들어 간다. 조상령을 잘 받들고, 모시는 문화가 한민족의 저력이고 근기이며, 생의 근간이다. 기독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뻔뻔함으로 굶고 허기진 아귀들의 구렁텅이다. 조상들을 배신하고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기독교인은 아귀같이 걸신들려 비만이 만연하다.

한반도 유전자인 호랑이는 날렵하고, 기민성은 한반도 전역을 하루에 왕복할 만큼 재빠르고 뛰어나다. 최근에는 민족의 심혈로 탄생한 테르기술에 감화•감응하여 순간이동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때론 거북이 마냥, 눈만 끔벅이며, 억울한 민족사에서 시류를 못 본 채 비겁하였지만, 달팽이 같은 느림의 은근과 끈기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유전자를 통하여 소리 없이 울분을 토로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GNP는 8만 달러를 넘었고, 가용 직업군으로만 산술하면 16만 달러를 넘는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가운데, 진실을 보는 정견은 어디에 있었던가? 우익은 철두철미하게 아픔을 딛고, 시류의 역풍에서 당당히 민족의 기틀을 다시 세우려 한다. 야쿠자의 검은돈은 민족을 가렴주구로 수탈하였고, 그러한 음성거래의 음모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민족의 자본은 다시금 배당금으로 이자와 본자를 갚아나가게 힘쓴다. 변제하여할 이자를 무이자로 거래 내막 정보와 상계하는 지혜와 혜안은 민족의 옥토와 잃어버린 황소를 되찾는 영광으로 다가온다. 과거 포스코의 전당은 다시 민족사를 올바르게 이끌 민족의 저력이다.

일본 앞잡이들이 왜곡한 정보에 속고 있는 정저지와의 아둔한 한반도 유전자를 일깨우기에 좋은 방법은 공부 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UFO도 비일비재할 만큼 보편화된 공공연한 일상이다. 밤과 낮의 변화도 전리층을 교란하여 연출 가능하고, 시간 흐름도 아인슈타인의 기치로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하단다. 시간의 흐름을 읽는 법은 배꼽시계를 통해서가 가장 정확하고, 끼니때를 지나 배고플 때 식사하는 지혜로 비만을 줄일 수 있다.

공자께서 분류한 섣부른 생이지지보다, 민족의 보배는 노력하는 집념의 학이지지이다. 환생한 이는 경로의 의존성에 만성화되어 상대방의 예측에 막히기 일수이다. 막행이를 칭찬할 의도 또한 없고, 민족의 돈키호테는 기대 가능성에서 조차 창조와 창의로 민족에 기여하는 바람직함을 함양할 때만이,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풍길뿐이다.

불교에서 조차 표면된 대승불교는 허상일 뿐이었다. 원래 한반도 불교는 소승불교였다. 무여열반이 그러한 단편의 부류였고, 송광사 보물은 거의가 다 남방 불교인 소승불교 유물이다. 효봉스님이 채독에 걸려서 송광사에 이르게 되었다는 일화는 독서에서 진실만을 발췌독하는 지혜를 권하신 재치가 아닐까? 대중의 개념은 불교에 없었고, 사부대중도 우스운 부끄러움과 책임전가의 민 낯이다. 공은 공산주의도 어질러진 화합과 상생도 아닌, 민족성과 유전자를 찾고, 전수하여, 이룩하여야 할 당위성인 흰 코끼리였다. 미국 국기의 흰 줄무늬와 빨간 줄무늬에서 우리는 어디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