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정감의 그리움】

【각각의 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되기 까지】

by Jupitere 하늘색 홍채

만공정에 만귀잠잠할 무렵, 소쩍새는 그리움으로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고즈넉한 달빛에 지난날의 아쉬움으로 귀촉도는 삶의 굴레를 빚어나간다. 산사의 밤은 청량한 밤바람에 더하여, 풍경소리가 비운 공허한 마음을 시냇물 소리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한다.

해림(바다같은 숲)과 중용은 대덕의 미덕으로 드리운 향약이자 두레, 품앗이이다. 그대의 독특함은 어우러진 가시에 숙연해진 감화로 드리운 바닷속 떨어진 한 방울의 색채이더라! 수많은 파도에 휘청일 때도 바다는 포근한 소라 속 태고적 자궁 같은 모성애에 기울이는 잔잔한 울림을 드리운다. 해림이 혜림(지혜의 숲)으로 다가온 이치는 수굿한 성숙미이더라!

많은 것을 담기에 좁은 소박한 정감이 대덕으로 승화되는 포근한 그리움은 향수의 수구초심이다. 아담한 암자에 깃든 소박한 정감은 고요 속 목탁 울림으로 잔잔하다. 자애로운 모성애와 엄하시며, 단호하신 아버지의 정감은 삶이라는 싹을 일구는 부엽토 같은 밑거름이다. 부모님의 희생은 유전자의 발현으로, 부모님의 부활과 환생은 효심의 미덕으로 줄기 찾게 시류 속으로 흐른다.

모두가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그 손가락에 집중하는 모호함은 신뢰를 깨는 불협화음이었던가? 독특함이 그윽한 이치로 독보이면, 큰 뜻을 품고 모두를 아우르는 이해를 얻었기에 보장된 마중이었다. 나무 위에 서서 기다리며 바라보는 '어버이 친' 한자는 사별의 깊은 정을 끌어올리는 정감이다.

시대의 갈등과 아픔은 성숙으로 가는 수렴점이고, 보다 나은 청어람을 일깨운 숙연한 꾸짖음에 겸허해지는 미덕이다. 파격은 어색함에 거부감으로 오는 세대차이였고, 신구의 조화와 화합은 너그러운 훈계이더라! 중추가절에 정겨운 안부의 교류는 순환으로 드높여진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로 깃든 보살핌과 정겹게 지저귀는 까치는 훈훈한 가을 녘 황금들판에 일렁이는 후덕한 풍요로운 정감이다.

자신을 진실로 사랑한 자는 자신의 근본인 마음을 궁구하여, 주변을 살피고, 평등지로 자기 외에서 얻을 것이 없는 청정한 자신인 부처를 알게 되어, 공의 귀함을 깨달아, 보살행의 여래가 된다고 하신다. 곧 부처는 자신에게 있기에 올바른 8 정도를 수행한다면, 바른 습관으로 자신의 도를 이룰 근본인 자신의 청정함을 깨닫는 수승한 세계로 다가간다.

소박함은 그리움의 정서로 자신을 찾을 때, 자신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량심으로, 소승과 대승의 경계가 돈오 되는 동로이다. 태고적 그리움은 열반에 이르는 희생의 근본에 화답하는 효행이더라! 타심통, 누진통을 여의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떠났을 때, 자신은 의지의 표상으로 꿋굿하고 오롯이 겸허하게 표표히 걸림 없이 본연의 일을 행할 수 있다.

숲은 저절로 우거져 피톤치드의 향과 음이온으로 삶을 풍요로이 이끈다. 그곳에는 물들어 탐하는 염탐이 없다. 진도 치도 그러하더라! 자연으로의 감화•감응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 겸허한 훈계에 이르는 수수한 모습이었다. 종심소욕 불유구는 자신 본연의 청정함이다. 나이 들어감은 서글픔을 뒤로한 채, 완숙미로 저마다의 도를 숙연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으며, 순수한 여림을 쫓는 동심이더라! 애늙은이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해맑게 그립고 정겨운 전갈을 전한다.

제 각각의 나무는 한반도 본연의 수종으로 금강송, 해송, 육송으로 화합하며 숲을 이루어 간다. 엊그제 옹이에 귀틀은 철새가 오늘의 텃새로 잊히지 않는 그림움의 원천이 되어 그윽한 감수성을 일깨운다. '자네 거기에 머무르며, 잔잔하게 기대어 서있었구나!'라고 말이다. 함께 하지 못 하여도 은근한 온기와 훈훈한 정감은 솔가지에 부는 청량한 향긋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