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을 다녀와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바쁘다는 표현만큼 무책임한 표현은 사실 없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말은 내가 아닌 내 마음이 바빴던 시간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나의 직장생활이 나를 바다로 데려다줄 순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바다를 꿈꿨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사하도 새 전시 준비를 위해 자기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 우리는 TV에서 태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누비스의 은혜’로 태오가 가석방되었다. 사람들에게서 잊혀가던 태오가 다시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사하야. 태오 만날 거야?”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응. 만나고 싶어.”
“왜?”
“글쎄... 뭐랄까. 내가 기억하는 많지 않은 유년시절의 기억 중에 하나니까? “
“태오가 너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생각해 보니 나도 성인이 되고 태오와 단 둘이서 만났던 적은 없었었다.
“그건 그때 생각해. 안 만나겠다고 한다면 안 만나면 되지.”
“그렇긴 하네.”
이젠 태오라는 사람이 친구라는 이름만으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태오는 2구에 살고 있었었다. 뉴스는 가석방 범죄자들의 거주 반대에 대한 보도가 잇달았다. 그리고 태오가 장외지역에 거주하게 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태오가 장외지역에서 반알터세력을 결집시킬지 주시하겠다는 경찰 측의 브리핑도 있었다. 그렇게 태오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보였다.
“태오의 집이 꽤 부유하지 않았었나?”
사하는 나에게 물었다.
“나도 잘 모르지만, 영생을 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닐걸? 태오 부모님은 공무원이었어. 정말 돈이 많았다면 나와 같은 학원을 다니진 않았을 거야. 뭐 꼭 부유하지 않았다고 해서 알터차별주의자가 된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건 뭐 태오의 신념이었겠지?”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사하에게 실언이 되었을까 움찔하게 되었다.
“신념이라... 신념이라... 신념이 뭐지?”
감정이 전혀 상한 것 같지 않은 사하의 반응에 안도하게 되었다.
“행동과 일치하는 자기 확신?”
“그럴지도 모르겠네...”
사하는 뉴스에 눈을 떼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여름이 끝나가던 날, 우리는 태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만나자고 했을 때 태오는 그러자고 했다. 태오는 항상 어떠한 부탁도 거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봤던 태오는 그랬다. 태오의 신념에 부합되지 않는 부탁을 한다면 태오는 나에게 어떻게 말할까 궁금했다. 태오가 거주하는 장외지구로 찾아가려고 했지만 태오는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이 집은 누군가가 손님으로 초대된 적이 없었다. 그 첫 손님이 태오라니 겸연쩍었다.
“태오는 어떤 음식 좋아해?”
“글쎄? 모르는데?
나는 태오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1년에 두세 번 만나는 동안에도 만나는 장소는 항상 친구들이 정했었다. 태오는 그 약속을 지킬 뿐이었다.
“대충 다 먹던데?”
정말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첫 손님에 대해 나는 알고 있는 게 없었다.
“만나면 뭘 했는데?
“밥 먹었지...”
“마지막으로 먹었던 게 뭐야?”
“글쎄...”
나는 한참을 생각을 더듬은 후에 기억해 냈다.
“스테이크.”
그리고 나는 스테이크와 닮은 단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테이크, 스네이크, 스나이퍼, 나이프...’
온통 공격적인 단어들이었다. 태오의 방문에 나는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태오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던 날 우리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손님이 오는데 식사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냐는 사하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오가 우리 집으로 왔을 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식사라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혹시 모를 세 사람의 적막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친구라면 그냥 보고 싶은 마음만으로도 괜찮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태오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태오가 도착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긴장이 되었다. 친구의 방문에 긴장이 된 다는 게 이상하지만, 태오는 이미 친구라는 이름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약속한 시간이 지나서도 도착하지 않는 태오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나는 태오가 약속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혹시 못 오는 걸까?”
사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태오가 약속시간을 늦는 건 처음이네.”
우리는 태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억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경찰에게 연행이 되었다던가 같은 조잡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월패드가 켜지면서 낯익은 얼굴이 비췄다. 태오가 우리 집에 왔다. 긴장, 설렘, 어색함 그리고 반가움이 교차하며 태오와 인사를 했다. 태오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어떤 변화 정도는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오는 검정 셔츠와 벨트 루프가 없는 검정 트라우저를 입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 옷 때문에 태오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멋진 곳에 살고 있구나.”
알터의 집으로 초대받은 반알터테러리스트의 첫인사였다.
“오는데 힘들지 않았어?”
가석방자의 장외지구에서 1구까지 개인적인 이동에 별도의 절차나 어려움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뭐, 똑같지. 제타웨이로 금방이니까.”
그리고 태오는 나의 옆에 서있는 사하에게 눈을 돌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테러리스트 태오라고 합니다.”
나는 껄껄 웃고 말았다. 어쩌면 처음 듣는 태오의 우스갯소리 인지 모르겠다. 태오는 인사를 하면서 사하에게 히아신스 꽃다발을 건네었다.
“예쁜 꽃다발이네요. 고마워요.”
사하는 꽃다발을 받아 식탁에 놓고 꽃병을 찾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어. 식사 준비할게. 밥 안 먹었지?”
“그래.”
별
거 없는 식사를 준비하면서 ‘테러리스트 태오’라는 말이 떠올랐다.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면 어쩌지? 하고 순간 생각을 했다. 만약 저 말이 어떠한 선전포고 같은 거라면.... 하지만 태오의 뒷모습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그저 친구의 집에 놀러 온 어린아이 같았다. 사하는 식사를 준비하며 힐끗 태오를 살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하도 태오가 보고 싶었을까? 그녀에게 태오는 어떤 의미일까? 알 수 없었다.
손님을 맞아본 적 없는 우리의 힘겨운 식사 준비가 끝났다.
“태오야. 밥 먹자.”
“응. 식사에 초대해 줘서 고마워.”
태오의 맥락에만 맞추는 이 건조한 말투는 그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했었다. 내가 아는, 아니 사하와 내가 아는 그 태오가 여기에 있었다.
인공배양육 스테이크에서는 툼툼한 맛이 났다. 재래시장에서는 아직도 목축한 고기를 구할 수 있었지만 주문 식당에서 목축 고기를 사용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인공배양육이 시판되기 시작했을 때 언론에서는 누군가의 '툼툼한 맛'이라는 평가를 인용했었고 사람들은 인공배양육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맛을 툼툼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주문한 스테이크에서는 툼툼한 맛을 감추기 위해 강한 시즈닝이 되어 있었다. 어릴 적 먹었었던 소고기의 맛이 그리워졌다.
“둘은 어떻게 만났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태오가 먼저 말을 했다. 물어보는 말에만 또박또박 대답하던 태오가 아니었다. 태오는 어쩌면 의외로 사회성이 있는 사람인 거 같았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어. 내가 사하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아, 생각났어. 네가 이 얘기해 줬었구나.”
소용돌이 같던 시간을 뚫고 지내온 태오는 내가 사하와의 교제를 말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특하네,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나야 바쁘게 지내지.”
“뭘 한다고 바쁘게 지내? 또 테러를 준비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네...”
태오가 좀처럼 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 그런 거예요?”
사하는 놀란 눈을 하고 말했다.
“그럴 리가요. 아누비스가 지켜보고 있는데요.”
“그럼 앞으로 뭘 할 거야? 이제는 걱정할 일 없는 거야?”
난 그저 태오가 어떻게 살 것인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채근하는 말투로 들었을까 걱정됐다.
“난 늘 같은 일을 하고 있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리고 난 테러리스트가 아니야.”
태오 답지 않은 비겁한 말에 먼저 말을 꺼낸 건 사하였다.
“그러면 누가 테러를 주동한 거죠?”
“글쎄요. 저도 알 수 없어요.”
어떤 변화와 일들이 태오를 이렇게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태오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건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저 침착한 태오의 눈에서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더 얘기해 봐요.”
나와 다르게 사하도 침착했다. ‘당신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었으니 당신은 솔직하게 말하세요’라는 무언의 합의가 느껴졌다.
“난 인간성회복운동이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었어요.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모든 것을 토론하는 모임이었어요. 예를 들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 사회 신용 등급을 거부할 권리, 어디서든 거주할 권리, 사랑할 권리들을 토론하였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모임이 아니라 단체가 되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그 단체의 회장이 되었어요. 자유롭게 토론을 하던 우리 모임은 토론이 아닌 회의나 강의의 형태로 변화했어요. 저도 그게 좋았어요. 같은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단체가 반알터 성향의 사람들의 모임은 아니었어요. 대체신체로 생명 유지를 거부할 권리 그리고 영생이라는 일부 소수의 수단이 전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토론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안에서 반알터 세력들이 커져가고 있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 단체가 어떠한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모두는 각자가 인간답게 살 권리, 인간성 회복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테러가 시작되었어요. 우리 단체의 누구도 이 테러를 처음 시작했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 단체의 사람들에게 테러를 중단하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이 테러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아무것도 지시한 적 없었고 저는 늘 제가 있던 곳에 있었어요. 수배가 떨어지고 계엄령이 선포되던 그때도 저는 어디에도 숨지 않았어요.”
믿기 힘든 태오의 말에 나는 손이 떨렸다. 태오는 테러리스트였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정성스러운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네가 했던 강의나 회의가 반알터사상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 건 맞지 않아?”
“그래. 나도 그랬을 거라 생각해. 내가 모든 회의나 강의에 함께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내가 없는 곳에서 어떤 모임들이 만들어졌는지도 알지 못해. 하지만 내가 이 단체의 수장이라는 것은 사실이니까.”
자신의 탓이라고 인정하는 태오의 태도는 외려 나를 화나게 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그런데 왜 네가 테러리스트가 된 거냐고!”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나의 손을 사하가 붙잡았다.
“이게 다 사실인가요?”
나를 자중시키는 사하의 목소리에서는 나보다 더 큰 분노가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태오는 고민하고 있어 보였다. 모든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던 그 아이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의 어색한 침묵을 깨고 태오가 입을 열었다.
“심도이. 축하해.”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심도이’라는 이름이 불리어질 순 없었다. ‘축하해’라는 말의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그녀를 심도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순 없었다.
“어떻게 안 거야? 언제부터 안 거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사하를 보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태오는 복잡한 연산을 완료한 컴퓨터처럼 사하를 아니 심도이를 바라봤다. 불가항력의 한 마디로 나를 굴복시킨 태오는 마치 사악한 지도자가 아닌 술사처럼 보였다. 더 이상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말라는 듯한 경고 같았다.
“화가 나면 오른손 엄지손가락 손톱반달을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습관이 그대로네. 심도이.”
나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못하고 나를 지배하던 그 순간에도 사하는 의외로 웃고 있었다.
“대단하네, 태오. 날 알아 보구나.”
사하는 그동안의 어색한 숨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보였다. 태오 덕분에 사하는 나의 여자친구가 아닌 세 명의 친구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난 모멸감을 느꼈다. 나는 그녀와 함께했던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서 무엇도 알아채지 못했다. 태오는 처음 사하와 마주한 오늘 그녀에게서 ‘심도이’를 찾아냈다.
‘태오가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지금의 굴욕감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태오는 오히려 아무런 차별과 편견이 없었던 거 같다. 눈앞에 보이는 여성이 아닌 그 사람의 습관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사하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는 더욱 초라해졌다.
“근데, 뭘 축하한다는 거지?”
나는 태오에게 물었다. 가시가 잔뜩 돋은 나의 말에도 태오는 침착했다.
“도이는 이해했을 텐데?”
사하는 또 웃었다. 나와 한 편이었던 사하가 태오와 한 편이 되었다. 그 소외감이 나를 초라하게 아니 비참하게 했다. 내가 지워버린 ‘심도이’라는 이름을 너무나 쉽게 찾아낸 태오에게 화가 났다. 그건 아마 일종의 질투였을 거다.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태오의 얘기를 들었다. 태오의 단체는 ‘네오KKK’라는 말을 언론을 통해 처음 들어봤으며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하는 말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 물리적 저항을 구상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어느새 태오는 테러의 주동자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다. 태오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 태오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존재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의 필요로 태오는 테러리스트가 되었고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태오를 사람들은 ‘까마귀’라고 불렀다.
태오(太 烏) = 거대한 까마귀
108 계단에서 마주한 거대하고 그저 검었던 경외심을 사람들은 태오라는 이름에서 느끼고 있었다. 나도 점점 태오가 두려워졌다. 그저 침착한 친구였던 하얀 아이가 거대한 까마귀가 되어 돌아왔다. 태오는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말했다.
“누군가의 필요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을 거야. 이젠 내 차례가 아닐까 생각해. 그들이 만들어 낸 내가 이제 무언가를 보여줄 차례.”
침착하게 말하는 태오의 말이 무서웠다. 나는 애써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였다. 사실 정확하게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만든 정부에 복수를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제는 정말 테러리스트가 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사하의 태도였다. 사하는 그저 모든 걸 이해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조촐한 식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우리는 태오를 배웅했다.
“또 볼 수 있는 거지?”
사하는 태오를 배웅하며 말했다.
“살아있다면 아마도?”
태오 답지 않은 말이었다. 그렇게 태오는 택시를 타고 장외로 돌아갔다. 커다란 까마귀가 큰 날개를 펴고 날아가 버렸다.
우리는 식탁을 치웠다. 각자의 생각에 바빴는지 우리는 한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태오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었어?”
사하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심도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
나는 철저하게 숨겨뒀던 ‘심도이’라는 이름마저 자유롭게 두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간단하게 집 청소를 하였다. 까마귀가 잠시 머문 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잠시 작은 정원으로 나갔다. 밤하늘에는 손톱달이 떠있었다.
태오는 한 번에 알아보았던 사하의 손톱을 닮은 달이 밤하늘에 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