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가 집 밖을 나갈 기회를 주질 않았다. 비단 장마의 탓만을 할 수는 없었다. 올해의 감당할 수 없는 강우량으로 장외지구 많은 곳의 지반이 약해졌다. 우리 회사의 모듈하우스는 수평이 일정 수준 이상 어긋나면 않으면 회사로 알림이 오게 되어 있었다. 쌓아 올린 1렬 전체가 수평이 어긋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지반에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현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외국인 노동자이긴 하지만 여러 장외지구에 회사의 거점 오피스가 있었다.
사실 거점 오피스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반응은 매일 온라인으로 수집된 정보를 AI가 정기적으로 자동 리포팅하고 시계열 수치화 되고 있었다. 덴스홈은 모듈하우스의 제작과 공급을 하는 회사로 지반 약화 등의 이유로 인한 사고나 피해는 전적으로 설치업자와 구매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간헐적인 모듈하우스의 사고 뉴스의 총구는 항상 덴스홈을 향했다. 거점 오피스는 그런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소유자에게 경고와 처리현황을 관리하는 역할이 전부였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1차 고객, 2차 고객, 3차 고객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거점 오피스는 1차 고객을 위한 공간이었다. 1차 고객은 대부분 법인의 형태이지만 개인사업자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장외지구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땅에 모듈하우스를 구매하여 렌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2차 고객은 사업자가 아닌 구매자로 대부분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에 실거주 목적으로 구매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3차 고객은 덴스홈의 모듈하우스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했다.
덴스홈은 간편하고 빠르게 규격화된 모듈하우스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1차 고객들이 영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랬던 우리 회사는 올해 홍콩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주택 구독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주택 공급자에서 부동산 사업자로 신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장외지구 거점오피스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거점 오피스에서 근무할 직원의 신청을 받았다. 한국 지사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본사에서 제공하는 프리미엄 모듈하우스가 사택으로 제공되며 추가 수당을 기대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신 사업이 나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이 회사에서 영생의 자본을 축적한 몇몇의 사람들이 나였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하루 종일 장외지구의 거점오피스에서 근무하는 나를 상상했다.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도 있었지만 뭔가 내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어느새 나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그 담 너머에 있었다. 나는 2층에서 1층 작업실로 내려갔다. 사하는 3D 프로젝트를 켜두고 조형을 모델링하고 있었다. 내가 내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평소라면 지루해? 힘들어? 같은 어떤 말이라도 했을 텐데,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뭘 훔쳐 나오는 사람처럼 왜 그래? 할 말 있어?”
어떤 부분에서 평소와 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계단을 내려오는 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던지 사하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계단을 내려오다 멈춰 서서 사하에게 말했다.
“여기서 함께 산지도 1년이 다되어 가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사하는 나에게서 뭘 느꼈던 걸까? 사하는 108 계단 공공프로젝트 때처럼 잔뜩 예민해져 나에게 화를 내었다.
“아니... 왜 화를 내. 회사에서 장외지구 거점 오피스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데...”
“가지 마.”
사하는 '가지 마' 한 마디만 남긴 채 나를 보던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녀는 모델링 3D 영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내가 이 집을 떠난다는 말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가던 계단에 그냥 앉아버렸다.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 그대로 있었다. 어쩌면 듣고 싶었던 그 말이 못내 서운했다. 돌이켜보면 사하와 만나면서 단 한 번도 무엇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간다는 얘기가 아니라 회사에서 뽑고 있다는 말이었어. 거기에 가면 사택도 제공되고, 수당도 높아. 어차피 제타웨이로 오래 걸리지도 않는 곳이야.”
“간다는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벌써 넌 날 설득하려 하잖아. 난 널 10년을 그리워했어. 그리고 이제 겨우 1년을 함께 있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그래. 솔직하게 나도 지원해 볼까 생각했던 건 맞아. 그래서 네 생각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알아, 다 안다고. 뭐가 부족해서, 뭐가 아쉬워서 떠나려는 건데...”
사하는 어느새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흐느끼고 있었다.
“사하야. 너를 두고 절대 떠나지 않을게.”
나는 계단을 내려와 사하에게 갔다. 그리고 앉아 있는 사하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나는 1층에서 사하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필요 없는 감정소비를 하였다. 만약 지방근무를 내가 신청을 한다고 해도 발령이 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우리 집에서 서울역까지는 도보이동 가능한 거리로 서울역에서 어느 거점 오피스라도 KEL을 타고 1시간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행으로라도 서울을 벗어난 적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장벽 안에 살아왔다. 그 장벽 너머에 거인이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장벽 밖을 두려워했다. 어쩌면 우리가 장벽 안에 갇혀 살고 있었다는 게 맞아 보였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장벽 밖을 알지 못했고, 티브이에서도 장벽 밖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사하와 나는 잠시 부끄러웠던 해프닝으로 흐트러진 감정을 정리하고 각자의 일을 하였다. 늦은 시간 핸드폰으로 회사의 팀장 전화가 왔다. 내일 회사로 출근해 달라는 전화였다. 도통 핸드폰으로 연락한 적이 없던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이 이상했다. 어쩌면 신 사업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회사로 출근하면 늘 앉던 서울역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자리로 갔다. 앉자마자 서둘러 가상 모니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했다. 팀장이 언제 내 자리로 올지 몰라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정오가 되어갈 즈음 내 자리로 팀장이 왔다. 그는 나를 회의실로 불러 우리 팀에서는 내가 신 사업부로 이동될 거라고 알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곳에 가서도 지금처럼 잘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누구에게 인수인계해야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팀장은 워크넷에 인수인계 파일들만 업로드해두라고 했다. 다음 주로 발령이 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하며 신 사업부에 가기 전에 충분히 쉬어도라고도 했다. 부산과 광주만 아니길 바랐지만 나는 부산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이 났다.
‘왜 나일까? 내가 우리 팀의 최저 성과자인가? 아니면 잉여인력이었던 건가?’
‘나는 우리 팀에서 인수인계의 필요조차 없는 업무를 하고 있었던 건가?’
‘아무도 신 사업에 신청하지 않아서 내가 가야 되는 건가?’
‘왜 하필 부산인 거지? 필수인력들은 그래도 근무지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을까?’
생각을 할수록 점점 자존감이 낮아졌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어찌 됐던 이 팀에서의 일은 오늘로 끝이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나는 그동안 해왔던 판매율 시뮬레이션 파일들과 AI딥러닝을 위해 그동안 추가하였던 변수들과 결괏값등의 모든 파일을 정리하고 업로드하였다. 그리고 금요일까지 3일간의 휴가를 등록하였다. 팀원들에게 형식적인 그동안의 감사인사를 남겨둘까 했지만 아직 발령도 나지 않아서 이른 감이 있었다. 본사 사무실도 당분간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하에게 원하지 않은 소식을 안고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길이 오늘따라 짧게만 느껴졌다. 사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제 사하는 이미 나의 지방근무를 동의하지 않았었다. 어찌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건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회사가 한 결정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현관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토리나무에는 도토리가 열려있었다. 나무는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어떤 역할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잠시 너무 많은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 뭘 그렇게 생각한 거야?”
사하는 인사도 없이 나에게 말했다. 사하는 아마 소파에 앉아 정원에서 갈등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머뭇거리고 서있었다.
“들어와서 얘기해.”
사하는 다정한 말투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손도 씻지 않은 채 사하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회사에서 듣게 되었어. 나 다음 주에 지방 발령이 날 거야.”
“예상했던 대로네. 겨우 그거 때문에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거야?”
나는 사하의‘겨우’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응.”
“그래도 고맙네. 이 집을 떠난다는 게 그렇게도 힘들었었나 보네.”
사하는 오늘 어떤 생각을 했던 건지 어제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아마도 오늘 내가 지방근무를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생각정리가 끝나 있었던 것 같았다.
“이 집을 떠날 생각은 없어. 여기서 부산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사택도 준다면서... 어떻게 매일 부산까지 출퇴근을 해.”
사하는 부산이라는 지역이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그래도 충청, 강원 까지를 생각 했었나 보다.
“좋은 기회라며... 한번 해봐. 그리고 연인 사이에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데.”
“누가 그래?”
떨어져 진다는 말에 나도 속상해졌다. 사하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시카고가”
“아... 노래 가사구나.”
“어제 네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을 때 난 이미 이렇게 될 것 같았어. 그런데 네가 회사에 신청한 건 아니지?”
“응. 오늘 회사에서 듣게 되었어. 나도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야.”
“그래. 널 믿어. 넌 나에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적 없으니까.”
사하의 이 말에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어떤 거짓말을 했던지 생각해 봤다. 아무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상황에 맞지도 않은 태오가 생각났다. 태오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재미없는 그 아이와 다른 사람들이 떠올리는 나의 모습이 똑같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에이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다가도 ‘정말 그런가’라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태오도 거짓말을 하지 않잖아. 나도 태오 같은 사람이야?”
“갑자기 태오가 왜 나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다 태오가 되는 거야? 넌 태오와 달라. 태오는 자신이 그어놓은 선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넌 달라.”
“그러면 나는?”
“음... 너는 경계에서 갈등하는 사람. 그리고 솔직한 사람.”
거짓말을 한적 없다는 표현보다 솔직한 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경계에서 갈등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불완전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했지만 괜찮았다. 나도 사하를 줄곳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쩌면 사하와 나는 많이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식사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택에 갈 때 어떤 물건들을 챙겨가야 할지, 매주 우리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 같은 이야기 들이었다.
“차라리 잘된 건가? 나도 부산으로 같이 내려갈까?”
문득 사하가 나에게 말했다.
“정말? 그래도 괜찮아?”
“아니... 계속 그러긴 힘들고, 가끔씩 내가 내려가면 되겠다.”
사하는 이후로도 식탁에 앉아 줄곧 부산에 대해 찾아보고 있었다. 마치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