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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찬우 Oct 28. 2024

도플갱어

 일요일 오후 나는 부산으로 떠나려고 했다. 마치 먼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사하가 서울역까지 함께 가 주었다. KEL 국내선 플랫폼까지 따라온 사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잘 갔다 와. 힘들어도 잘해 봐. 좋은 기회잖아.”


    “응. 다 잘될 거야.”


 우리는 열차 앞에서 서로를 안았다. 영상에서만 봤던 장면이다. 너무나 뻔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어색했다. 하지만 플랫폼이라는 공간이 헤어지는 연인에게 같은 장면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플랫폼에 얼마나 많은 헤어짐이 쌓여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도 플랫폼에 쌓인 헤어짐의 돌탑에 작은 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KEL은 빠른 속도로 부산을 향해 달렸다. 지상구간이 없는 KEL에 앉아 나는 두 눈을 감았다. 탈출구가 없는 그곳에서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KEL 국제선을 타고 사하와 함께였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불안이었다. ‘잠깐만 버티면 된다’ 나에게 말했다. 


 부산에 도착하여 나는 역사 밖으로 나왔다. 태어나 처음 온 부산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서울에 사는 할아버지의 고향이라 그런지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낯선 그곳에 적응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겨우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부산지사를 찾아갔다. 거점 오피스 중 하나였던 그곳은 신 사업부가 자리 잡으면서 지사로 승격되어 있었다. 자율주행 택시의 창을 열고 낯선 도시를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지 공기에서 짭조름한 염분기가 느껴졌다. 연식이 오래된 많은 빌딩을 지나쳐 부산 9구에 위치한 지사에 도착했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을 기대했지만 그곳은 고속도로 IC에 접근이 가까운 곳이었다. 경남도 사업을 맡게 될 곳이라 아마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것 같았다. 주차장에는 꽤나 많은 회사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옆으로 세련된 건물 두 동이 있었다. 나는 생체인식을 하고 배정받은 8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창가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연식의 건물이 건폐율을 무시하고 빼곡하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캐비닛에 간단한 물건을 넣어두고 회사에서 도보 5분 거리의 사택을 찾아갔다. 가까운 거리로 알고 있었지만 언덕중턱에 자리한 사택까지 걸어가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새로 조성한 사택타운에 도착하자 잠시의 힘듦이 잊혔다. 똑같은 모듈하우스 수십 채가 있는 길을 따라 나에게 배정된 집을 찾아갔다. 아쉽게도 나에게 배정된 집은 가장 안쪽 동 3층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았던 국내에 시판하지 않는 프리미엄 모듈하우스가 멋져 보였다. 나는 외부 계단으로 3층에 올라가 현관 앞에서 홍채인식을 하였다. 패드에 내 이름이 나오며 찰칵 문이 열렸다.


    ‘드디어 왔네.’


 나는 생일선물을 뜯어보는 아이처럼 잔뜩 흥분하여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 2개와 꽤 넓은 거실, 그리고 화장실과 주방이 있었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나는 성취감을 느꼈다. 회사가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고취되어 있었다. 가져온 몇 가지 짐들을 풀고 두고, 사하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이곳저곳을 신나서 보여주는 나에게 사하가 말했다.


    “그렇게 좋아?”


 사하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있었다. 


    ‘네가 걱정할까 봐 내가 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거야.’라고 말할 뻔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미안해. 처음 보는 프리미엄 모듈하우스라서 신났나 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니까 나도 기뻐. 나도 꼭 놀러 갈게.”


    “응. 잘 자고 내일 또 전화할게.”


 나는 통화를 끊고 소파에 앉았다. 거실 벽에 놓인 새 소파의 착석감이 어색했다. 어떻게 고쳐 앉아보아도 편하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한 이 집이 전혀 편하지 않았다. 나는 사하와 우리 집 소파에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내일 아침 9시부터 신 사업부 자체 회의가 있었다. 신 사업부 공식 첫 업무를 첫날 월요일 오전 9시 회의로 잡은 건 분명 의미가 있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사택에서 지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신 사업부는 근무시간에 대한 개인사정을 배려를 하지 않겠다는 압력이었다. 


 우리 신 사업부가 얼마나 중요한 사업을 맡게 되었는지, 그리고 회사의 지속존속과 미래를 책임지게 될 거라는 설교가 벌써부터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명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지나치게 딱딱한 침대 역시 어색했다. 하지만 새 침구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 나는 뜬눈으로 한참을 사하와 나를 생각하다 잠들었다.

다음날 나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겨우 7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필요 없이 일찍 깨어난 걸 아쉬워하며 머리맡의 암막 버튼을 찾아 눌렀다. 너무 높은 점성의 어둠이 순식간에 방을 암실로 만들었다. 나는 짙은 어둠에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암막 기능을 꺼버렸다. 첫날이니 빨리 출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씻고 집 밖을 나섰다. 


 아침의 사택타운의 풍광이 어제와는 달랐다. 많은 수목은 휴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그때 조깅을 하고 있는 여성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여성을 바라보며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여성은 사하와 지나치게 닮았기 때문이었다.


 YK5008, 나는 그 눈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 여성은 YK5008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의 윤곽, 신장, 체형 모든 것이 사하와 비슷했다. 살면서 사하와 닮은 아니 어쩌면 똑같은 조합의 알터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 여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누굴까 궁금해졌다.




 나는 곧장 사무실로 갔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8층 사무실에 들어가 본사에서 근무할 때처럼 창가 쪽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명패가 눈에 띄었다. 그 명패에는 ‘유지나’라고 적혀 있었다. 오픈 스페이스인 본사와는 다른 시스템이었다. 나는 당황하고 내 자리를 찾아보았다. 창가와는 먼 통로 쪽 끝자리였다. 못내 아쉬웠지만 내 이름이 적혀있는 내 자리가 생겼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신 사업부에서는 정확하게 내 자리가 있었다. 8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통로 쪽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목례를 하였다. 마땅히 하고 있을 일이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부족했던 수면시간 탓인지 지루함인지 어색한 사무실에서도 하품이 나왔다. 고개를 숙여 하품을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 여성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여성은 이미 알고 있는 직원들이 있는지 몇 명과 손 인사를 하며 밝게 웃고 있었다. 그 여성이 내 자리 쪽으로 걸어오자 왠지 긴장이 되었다. 내가 그 여성에게 목례를 하자 그녀도 목례를 하고 나를 뒤돌아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유지나’ 그녀의 이름이었다.


 계속 그녀를 의식하게 되는 내가 불편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옥상에 올라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회의를 기다렸다. 8시 50분이 되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과 그녀를 따라 16층 대강당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대강당에 들어가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도 어색해 앞사람만을 따라갔다. 저기 이미 자리를 잡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나는 그녀가 잘 보이는 대각선 뒤편 쪽 의자에 앉았다. 9시가 되자 몇몇의 호위무사를 대동하고 사업단장이 강단에 올랐다. 예상과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발대식이 있었다. 사업단장의 화려한 언변에 나는 다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가을은 그렇게 또 내가 가진 것 이상을 기대하게 하는 약빠른 계절이었다.


 발대식이 끝나고 우리 팀은 8층 회의실에 다시 모였다. 출근하며 목례하였던 사람들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팀장은 중요 보고 일정으로 본사에 있어서 팀장만이 스크린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10명의 팀원들은 각자 업무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유지나’ 그녀도 자신의 업무를 소개하였다. 그녀가 자신의 업무를 말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오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아도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하게 될 신 사업 손익추정 모델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구독사업은 구독자 Acquisition Cost 설계와 Cohort를 통한 장기적 규모와 손익추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마케팅 비용의 배분 및 설계가 우리 팀이 맡은 역할이었다. 지사에서의 첫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정신이 없었다. 온몸에 긴장을 풀지 못한 탓인지 나는 사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이후로도 나와 팀원들은 항상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사택을 제공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우리는 지사에 감금된 사람들처럼 일했다. 그리고 사하가 나를 무척이나 기다렸을 첫 주말에도 나는 서울에 돌아가지 못했다. 사택에서 겨우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무런 레퍼런스가 없는 구독사업을 추정하고 또 추정하였다. 팀장은 나와 팀원들의 모델링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수정하였다. 나는 팀장에게 먼저 주택 구독사업을 시작했던 홍콩에 DATA를 요청하면 되지 않냐고 물었다. 팀장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홍콩에서 DATA를 줄 가능성도 없지만 받게 된다면 우리의 사업이 잘되었을 때 홍콩에서 자신들이 지대한 도움을 준 것처럼 포장할 거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성공해야 되며 글로벌 회의에서 최초의 주택구독사업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회사이지만 각국의 지사들이 경쟁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전부 같았던 본사도 한국 지사일 뿐이었다. 한 기업 안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하는 구조가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그것은 마치 기업의 영생이 아닌 각자의 영생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마치 최근의 내가 나의 영생을 위해 신 사업에 취해있는 것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유지나’ 그녀를 훔쳐보았다. 왜인지 나에게 설명을 하기 힘들었다. 


    사하와 닮아서?

    사하가 그리워서?


 어떤 대답도 맞지 않았다. 사하가 생각날 때마다 그녀를 훔쳐보았다고 한다면 그건 사하에게 너무 큰 모욕이 될 것 같았다. 그녀를 훔쳐보며 계속 죄책감이 들었다. 




 부산지사에서 근무한 지 2주 차 목요일, 우리 팀은 첫 주택 구독사업 예정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밤낮을 숫자에만 매달려 살았던 우리 팀은 잠시 견학을 가는 학생들처럼 들떠 있었다. 우리는 회사 버스를 타고 부산 장외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황량한 그곳에는 우리 회사의 모듈하우스가 20층으로 쌓여 있었다. 지난해 발매했던 신상품인 이 모델은 최대 20개까지 쌓아 올릴 수 있지만 장외지구 어디에서도 그렇게 높이 쌓아 올리진 않았다. 외부 계단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모듈하우스는 층수가 높으면 사람들이 입주를 하지 않아 대부분의 모듈하우스는 5~6층 정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구독사업과 더불어 전용 엘리베이터 모듈을 새롭게 개발하게 되면서 우리의 첫 주택구독은 20층으로 설계될 예정이었다. 


 팀원들은 현장감독을 따라가 엘리베이터 모듈 테스트 현장으로 갔다. 최대 하중 400Kg의 모듈 엘리베이터에는 5개의 테스트용 더미가 장치되어 있었고 연속 운행 한계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유지나 씨는 현장감독에게 모듈 엘리베이터를 직접 타 볼 수 있냐고 물었다. 현장감독은 우리에게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했다.


    “모듈 엘리베이터 타보실 분 있나요? 딱 한 분만 탈 수 있습니다.”


 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물어봤던 유지나 씨가 타겠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자 내가 말했다.


    “제가 탈게요.”


 현장감독은 선심에도 예상치 않은 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한 눈치였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세우고 테스트용 더미를 내렸다.


    “올라가 보세요.”


 현장감독은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보는 사람에게 알려주듯 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태워줬다. 지켜보던 팀원들은 '오~'라며 나의 용기를 응원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대단한 모험이라도 되는 것 같은 이 상황이 부끄러웠다. 어색한 시선을 둘 곳 없던 나는 유리로 밖을 볼 수 있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현장감독은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아주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층과 층을 이은 모듈을 블록을 지나갈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덜컥거려서 불안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20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비어 모듈하우스 입구가 보였다. 나는 닫힘 버튼을 누르고 1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15층에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1층 버튼을 다시 눌러보았다.


    < 탕, 탕, 탕 >


 엘리베이터에서 울리는 생각지도 않은 굉음에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어떤 문제인지 단순한 소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소리였다. 


    < 탕, 탕, 탕, 탕, 쿵, 쿵, 쿵, 쿵, 쿵 >


 연이어 기계 부품 따위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 들리더니 땅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도대체 이게 어떤 상황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엘리베이터 옆 손잡이를 움켜 잡았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떨어지며 사하를 만났던 날부터 서울역에서 헤어졌던 날까지 모두 생각이 났다. 사하와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남겨져 사람들에게 닿길 바랐다.


 사하에게 어제도 전화를 하지 못했던 게 생각이 났다.


    ‘어제 밤늦게라도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나는 처음으로 사하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사하는 나에게 자기와 영원히 함께 하겠냐고 물었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었다.


 영생에 닿을 수 없는 내가 내 운명 이상의 것을 탐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사하와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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