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루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러 곳을 생각해 봤지만 결국은 사하의 의견을 따랐다. 우리는 도쿄로 가기로 했다. 간단한 짐을 챙기고 걸어서 서울역으로 갔다. 국제선 기차 KEL을 타고 1시간 30분이면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도쿄까지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출발하기 전부터 사하에게서 도쿄의 시나가와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예술지구가 있으며, 바다와 연결된 곳 정도의 정보밖에 없었다.
“너도 분명 마음에 들 거야.”
사하의 이 말은 나에게 거절을 불허하는 강요와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없었다. 괜스레 나도 의견을 고집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정한 명확한 목적지가 없었던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있었다. 시나가와라라는 목적지를 명확하게 말하는 사하에게서 부러움을 느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던 걸까?
그곳은 어디일까?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랜드 캐년’, 다음엔 이곳으로 가야겠다고 나는 마음먹었다. 사실 미국 어디 즈음 있는 곳인지도 몰랐지만 나도 목표와 목적지를 정하는 습관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렇게 정하는 게 맞나 싶긴 했지만 ‘그랜드’라는 단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하네다에서 내려 시나가와를 거쳐가는 열차로 환승하였다. 시나가와역에 내려서 본 도쿄는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핸드폰 위치정보를 보니 시나가와역이 시나가와구가 아닌 미나토구에 있다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왜 시나가와역이 미나토구에 있는 거지?”
“여기가 미나토와 시나가와의 경계니까. 시나가와역이라고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심도이와 심사하의 경계에 있었던 그때의 사하를 상상했다. 정말 어떤 이름이라도 상관이 없었던 걸까? 생각했다.
역의 뒤편으로는 고층의 세계적인 기업의 도쿄지사가 있었지만 역 인근으로는 긴 시간을 박제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야, 심사하의 고향.”
사하의 눈이 강한 태양의 빛나고 있었다. 사하의 눈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고등학생 때 살았던 곳이 여기인가?”
“응.”
“아, 그랬구나. 말을 하지 그랬어. 난 여기가 여행지인 줄 알았네. 여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건 아니지?”
“응. 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어. 홈스쿨링을 하긴 했지만 말이야. 알터가 되어서 여기서 3년간 살았었어. 아빠는 심도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어. 나도 마음이 편했지.”
“아, 그랬구나. 그래서 여기가 와보고 싶었어?”
“아니, 딱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그래도 너와는 여기에 다시 가보고 싶었어.”
“왜?”
“나중에 말해줘도 될까?”
사하는 대단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소녀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 비밀이 나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다. 들떠있는 사하의 표정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시나가와역 앞 큰길을 건너 언덕을 오르자 많은 단복층 건물들의 사유지구가 있었다. 사하는 미주알고주알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집이 아직도 그대로인지, 어떤 집에 누가 살고 있었다던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청소기로 청소한듯한 깨끗한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작은 실오라기 같은 쓰레기 하나 버려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과잉 배려를 느꼈다. 어쩌면 그런 과잉 배려에서 사하는 편안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짙은 회벽돌이 깔린 높은 담의 집 앞에 사하가 멈춰 섰다.
“여기가 내가 살았던 집이야. 사실 여긴 미나토구야. 사람들은 이 동네가 시나가와구로 알지만 미나토구에 속해.”
사하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살펴보는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사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때? 이 집 멋지지?”
“어, 그래. 진짜 멋지네.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집 같아.”
사하의 물음에 그때서야 그 집을 바라보았다. 큰 검정 대문 양 옆으로 꽃사과나무가 두 그루씩 심어져 있어져 있었다. 이 동네의 많은 집들과는 다르게 현대적인 건축이었다.
“아빠가 널 위해 이렇게 멋진 집을 구하셨나 보네.”
나는 큰 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하를 보며 물었다. 사하는 집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를 위해서도 그랬겠지만, 아빠 본인을 위해서도 그랬을 거야. 의사였던 아빠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고 나의 알터 수술을 승인하셨어. 여성의 대체신체에 이식할 수 있는 건 여성 밖에 없어. 물론 성전환 수술 후 여성으로 전환된 사람들도 가능은 하지만 말이야. 아빠는 여성 대체신체로 이식할 수 없는 나의 수술을 허가하셨어. 그 일로 아빠는 의사면허가 취소되셨어. 아빠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셨을 거야. 나처럼 아빠도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오고 싶었을 거야.
“아, 그랬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사하의 이야기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빠는 내가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언제나 반대했어.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아빠가 일하는 병원에 나 혼자 찾아가던 차 안에서 불이 났던 거야. 아빠는 죽어가던 나를 살렸어. 내 평생의 소원을 이뤄주기로 했던 거야. 아빠는 내가 다시 여자로 태어날 수 있게 했어. 본인의 의사면허가 취소될 거란 걸 알면서도 수술을 허가했던 거야.”
나는 오늘 서울에서 출발하여 도쿄에 도착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와본 미나토와 시나가와의 경계에 있는 사유지구의 알지 못하는 집 앞에서 사하의 과거를 듣고 있었다. 사하는 말하기 어려웠던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기 위해 이곳까지 나를 데리고 온 걸까? 이 이야기를 서울의 우리 집 소파에 앉아서 해줄 순 없었던 걸까?
우리는 그렇게 남의 집 담벼락을 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사하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무지에서 벗어나자 두려움은 사라졌다. 시나가와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더 손을 잡고 서있었다. 그러다 사하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쌩긋 웃어 보였다. 그녀도 쌩긋 웃었다. 서로에게 긴 말은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큰길을 건너 역을 뒤돌아 걸어갔다. 웰시코기 만한 까마귀가 인도 분리대에 앉아 까악 까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몸통과 눈 그리고 다리까지 온통 까만 까마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보며 까악 까악 소리를 내었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우리는 대치하고 있었지만 까마귀는 나의 눈을 먼저 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까마귀가 나를 향해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일본 까마귀는 왜 이렇게 커?”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지. 일본 까마귀는 커. 한국 까마귀가 작은 건가?”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어찌 됐든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렇게 변한 걸까?”
“그런지도 모르겠네.”
“진화론에서 생존을 위해 개체가 작아지는 경우도 있나?”
“있지 않을까?”
“그런가? 뭐, 우리가 생각한 반대의 경우가 항상 있었으니까...”
우리는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가며 걸었다. 조금 걸어가자 도쿄에 마치 어촌과도 같은 수상 가옥이 있었다.
“신기하지?”
사하는 마치 자랑하듯 말했다. 정말 황당한 풍경이긴 했다. 수상가옥에는 각자의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크지 않은 배였지만 여러 척을 보유한 집도 있었다.
“이 배는 어디로 갈 수 있는 거야?”
크지 않은 강가에 자리 잡은 집들과 배들이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명미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바다, 바다로 갈 수 있지.”
“아... 도심의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 배를 타고 바다로 간다고? 정말 멋진 집이네.”
도시의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 배를 타고 바다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명이 될까 생각했다. 엄청난 부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경미하지만 일종의 폐소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다. 탈출구가 확보되지 않은 공간에 있거나 지나치게 밀폐된 공간에서는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함을 느꼈다. 특히 식당의 밖으로 빠져나가기 힘든 구석자리에서는 식사를 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 시나가와의 수상가옥은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그런 꿈같은 집이었다. 바다와 이어지는 집,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지어진 집 그것은 마치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막연한 한계가 이 집에서 산다면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그 집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사하는 그런 내 모습에 자기가 더 신나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지겨워졌는지 사하는 나를 채근했다.
“좀 더 가보자.”
“응.”
사하와 나는 깨끗한 거리를 함께 걸어갔다. 그러고 다리가 아파 와 쉬고 싶었을 때 염분을 가득 머금은 공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에 다 왔나 보네...”
“응. 내가 시나가와에 살 때 늘 혼자 왔던 곳이야.”
사하의 표정은 설렘과는 사뭇 달랐다. 읽을 수 없는 암호와도 같았던 그 표정에서 나는 기대, 그리움, 설렘, 슬픔, 환희와 같은 너무 많은 감정들을 읽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없이 사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사하는 바다와 큰 교각의 대교가 보이는 벤치로 나를 데려갔다.
“여기야. 내가 다시 오고 싶었던 그곳.”
나는 드디어 앉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의자에 털썩 앉았다. 사하는 나의 옆에 선채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는 건지, 과거에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를 회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미나토와 시나가와의 경계가 모호한,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있었다. 나도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던 사하가 나에게 말했다.
“난 이곳에서 너를 그리워했어. 닿을 수 없는 거리의 너를 생각했었어.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길 바라고 또 바랐던 그곳이야.”
사하는 그저 그렇게 선채로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은 여러 감정으로 복받쳐있었다. 나는 같이 일어서 있어야 할지, 이렇게 그대로 앉아 있어도 될지 어쩔 줄 몰랐다. 사하가 이곳에 나와 함께 꼭 오고 싶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논리적인 이해보다 사하의 얼굴에서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바다에게 말했어.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리고 오늘 그 사람과 나는 다시 이곳에 왔어. 그래서 기뻐.”
사하는 오랫동안 나를 그리워했다고 했다. 심도이가 아닌 심사하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옆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말이야,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너를 항상 찾았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3 대학에 찾아갔었어. 어디에 있을지 모를 너를 우연히 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난 어디에서도 너를 찾을 수 없었어. 그리고 네가 3구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난 종종 그곳을 찾아갔었어. 여전히 난 너를 찾을 수 없었어. 그런데 무척이나 추웠던 그날, 우리가 만났던 그날 난 너를 찾았어. 정말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난 그냥 너를 따라갔어. 카페에 들어가던 너를 따라 나도 올라갔어. 조금이라도 더 너를 보고 싶었어. 그리고 네가 누굴 만날지 두려웠어. 네가 그 카페에서 여자를 만나지 않길 바랐어. 그래... 솔직히 난 그랬어. 그랬는데 네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사하는 바다를 보며 나를 찾아다녔던 날들을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집 담벼락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나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사하의 긴 기다림 같이 긴 키스를 하였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우연보다 더 긴 기다림이 우리를 만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또 바다를 보고 있었다. 사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하의 표정은 간결했다. 더 이상 그녀의 표정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저 바다로 나가면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디로든 갈 수 있겠지만 나는 목적지가 없었다. 어딘지 모를 곳이라도 사하와 함께 가고 싶었다. 그곳은 경계가 없는 곳 이길 바랐다.
우리는 다시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3구에 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노아의 메타그램에서 봤어.”
나는 웃음이 나왔다. 실없고 오지랖이 넓은 노아가 분명 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