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찬우 Oct 17. 2024

도토리나무

 일주일이 지나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까지 이동하는 차량에 동승한 간호사 때문에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센트럴병원의 과잉 서비스가 불편했지만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간호사와 인사를 하고 대문을 닫았다. 드디어 우리 둘의 세상에 돌아온 것 같았다.


 작은 정원의 흙 내음을 맡았다. 빨리 봄이 오길 바랐다.


    “드디어 우리 집이네.”


    “우리 집이라는 말이 참 기분 좋네.”


 사하는 며칠 사이 부쩍 예전의 사하 얼굴을 찾아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하는 말했다.


    “소파를 돌려놨네. 잘했어.”


 우리는 창 밖이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사하는 내 어깨에 기대어 아무 말이 없었다. 창 밖의 도토리나무는 겨울에도 색을 잃은 잎들을 많이도 붙잡아 두고 있었다.


    “낙엽 치워야겠다.”


    “그냥 두자. 그냥 지금 그대로 두자.”


 사하는 도토리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토리나무는 암수한그루인 거 알아?”


    “아, 그래?”


 엉뚱한 물음에 멍하니 대답했다. 혹시나 이 질문에 다른 예민한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냥 그렇다고... 그리고 그냥 두자.”


    “응.”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있던 그곳에 돌아왔다. 겨우내 사하는 예전의 사하와 무척이나 닮아갔다. 나는 회사로 복직하였고 둘 다 바쁜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겨울은 또 지나가고 있었다.




 제법 정원에서는 풀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아가미처럼 펄떡거리는 식물들의 생명력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도 철저하게 살아남아라’


 오늘은 사하가 참여한 조선신궁 108 계단 공공 프로젝트의 오프닝이 있는 날이었다. 사하를 휠체어에 태우고 이 근처까지 다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용산중고 뒤편으로 그동안 시야를 방해했던 큰 가림막이 사라지고 괴랄한 검정이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그냥 검정이 있었다. 외계에서 차원의 문을 열어 놓은 듯 거대한 검정 구멍이 있었다. 측면까지 모두 검정으로 칠해진 그곳 어디에서도 계단의 형태를 가늠할 수 없었다. 


    “멋지냐?”


 사하는 원하는 답변은 없는 듯한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멋지네. 아주 크고 멋지네.”


 나도 딱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크고 검었다.


    “좋은 표현이네. 나도 큰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


    “크다의 정의는 뭐지?”


    “글쎄. 비교형이 아니라 수치화한다면 2미터 이상이 아닐까?”


    “왜 2미터 일까?”


    “보통 사람은 2미터가 되지 않아. 사람도 동물이야. 자기보다 거대한 대상을 마주하면 위압감을 느끼지 않나?”


    “그런가?”


 갑자기 특이점의 시대 때 머스키가 2.5미터의 대체신체로 나타났던 게 생각났다.


    “마냥 크다고 위압감을 느낄까? 우리가 큰 애드벌룬에 압도되진 않잖아.”


 나는 허점을 찾아낸 맹수처럼 비어 있는 목을 물었다.


    “생명체나 적어도 미술에는 해당될 거 같은데?”


 고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말투에 나는 전의가 사라졌다.


    “다 빈치가 라조콩드를 2미터 보다 크게 그렸다면 사람들이 더 큰 감동을 받았을까?”


    “뭐, 똑같은 그림을 단순하게 확대하는 개념은 아니겠지? 2미터 보다 더 크게 그리려고 했다면 화면의 구성도 달랐을 테지만 단순하게 크게 그리는데도 더 실력이 필요하니까. 위압감을 경외심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필요하겠지?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작은 사물을 더 주위 깊게 볼까? 아니면 큰 사물을 자세히 볼까? 오히려 큰 사물을 더 자세히 보지 않나?”


    “그런가?”


    “먼저 집에 가 있어. 난 사람들 좀 만나고 들어갈게.”


    “응.”


 지척의 집으로 돌아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사하는 돌아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 같은 얼굴로 웃어주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저 크고 검었던 그것이 생각났다. 빛을 흡수하여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그것의 크기에 압도되었었다. 사랑의 색깔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적어도 애니쉬 카푸어의 레드는 아니길 바랐다. 오디오를 켜고 The Czars의 <Drug>를 재생했다.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Muse의 <Unintended>가 흘러나왔다. 나를 위한 선곡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 두 노래를 함께 즐겨 들었던 걸까? 어쨌든 이 선곡이 마음에 들었다. 유년시절 오래된 음악을 즐겨 들었던 시간들이 재산이 된 기분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사하가 들어왔다. 


    “빨리 왔네?”


    “응,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혹시라도 찾으면 다시 가면 되지 뭐. 바로 앞인데.”


 털썩 소파에 앉은 사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노래 알아?”


    “응. 넌 어떻게 이 노래 알아?”


 되려 사하가 나에게 물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날 돌봐줬던 날들이 많았는데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자주 들었어. 이 노래가 나올 때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이 밴드의 라이브 공연에서 이 노래를 들었던 얘기를 마치 나에게 처음 하듯 매번 얘기했거든.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음악이나 책이나 영화라면 나도 꼭 챙겨 봤었어. 누군가의 신성한 선택을 받은 것 들이니까. 그러면 넌 어떻게 이 노랠 알고 있어?”


 사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나에게 말했다.


    “네가 이 노래를 학교에서 듣고 있는 걸 봤어. 내 자리에선 항상 네 자리가 다 보였거든. 네 휴대폰에 나온 앨범커버와 노래 제목이 다 보였어. 나도 같이 들어봤었지.”


    “아...”


 나는 사하에게 그녀가 기억하는 나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배려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나와 같은 반 아이였던 ‘심도이’를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사하가 아닌 심도이가 기억하는 나에 대한 첫 이야기였다.


 심도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기억의 공간을 강제로 옮겨 덮어두었던 심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태오의 옆에 앉았던 심도이는 태오처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태오만큼 하얗진 않았지만 점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때문에 우리들은 그 둘을 밀가루라고 불렀던 거 같다. 소년 답지 않게 속눈썹이 굉장히 길었었고 너무나 장난꾸러기 같아 보이는 입 모양은 항상 즐거워 보였었다.


    심도이는 나의 어떤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언제부터 나를 사랑했던 걸까? 왜 나였을까?’


 나는 사하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아마 그건 ‘심사하’가 아닌 ‘심도이’까지 사랑할 수는 없었기에 그랬던 거 같다.


 사하는 오늘은 어떤 물음에도 솔직하게 답하겠다는 눈빛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자신이 어떤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오늘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이 슬펐다. 사하의 얼굴에서 숨기지 못하는 두려움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해주고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일인 거 같아.”


 나는 이 말로 어색했던 그 장면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심도이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때서야 갑자기 떠올랐다.


    “아... 전에 태오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었던 거 기억나? 넌 태오를 잘 알겠구나?”


 어쩌면 태오 앞에 앉아 있던 나보다 그녀가 더 태오와 친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사실 태오와 많은 말을 해보지 않았어. 난 그저 태오 옆 자리였을 뿐이야. 난 항상 널 바라보고 있었어.”


 사하가 오늘 어떤 결심을 한 걸까? 심사하가 아닌 심도이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하는 오늘 심도이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결국 심도이에게 물었다.


    “왜 날 좋아했어?”


    “널 바라보고 있으면서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을까, 아니면 널 바라보기 전에 좋아하는 감정이 먼저 생겼던 걸까 정확하게 나도 알 수는 없어. 언젠가부터 난 널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 네가 하는 얘기, 네가 듣는 음악, 네 생각 모든 게 궁금했어. 그렇게 네가 내 안에서 날 밀어낼 만큼 커졌을 때 나는 나를 잃어도 된다고 생각했었어. 그저 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했었어. 어차피 너에게 내가 가진 그 마음을 말할 용기도 없었지만 말이야.”


 그저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나와 갈등하며 싸우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누군가가 나를 많이 좋아했었다고 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이 얘기에서 여전히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사하는 오늘 어떤 마음인지 나를 도망치게 두지 않고 막아섰다.


    “그리고 내가 다시 태어났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도 너였어.”


 2개의 이름, 2번의 인생을 사는 동안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그녀임에 이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도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하나의 정신이다. 나는 ‘심사하’ 하나의 이름만 남겨두기로 했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면서 도망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이전 22화 2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