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 윤우를 만나러 가야 했다. 지유는 나를 위해 차량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겨우 그런 일상적인 일마저 지유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석방자들의 이동 계획을 사전 등록 해야 했고, 이동 목적, 주소 그리고 일정을 등록했다.
<이동 목적 : 친구 집 방문>
나는 친구라는 단어를 입력하며 기뻤다. 친구라는 단어를 거리낌이 없이 사용하는 날이 오게 되었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고,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제타웨이를 타고 윤우의 집이 있는 서울 1 구로 출발했다. 그것은 마치 여행과도 같았다. 나는 창춘으로 떠나는 기차에서처럼 흥분해 있었다.
나 또한 장외인이 되어버렸다. 제타웨이에 탑승한 많은 장외인들이 보이지 않는 장벽 안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동공에서는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감정이라는 것은 뇌의 사치스러운 작용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살리어지고 있었다.
1년이 넘는 수감생활 후 처음으로 서울에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서울은 이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변한 것은 딱히 없었지만 나는 여행객과 같은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윤우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치 과거로 타임슬립이라도 한 것 같은 동네로 들어섰다. 윤우가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함께 보기로 한 여자친구와의 동거 때문일 것 같았다. 윤우, 노아, 지후, 수빈 모두 사회가 권장한 길을 따라 성장했다. 한편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린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두려워졌다. 하지만 윤우는 내가 가석방이 되자마자 나에게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친구라면, 우리가 정말 친구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만의 기대라고 해도 정말 그렇길 바랐다.
무엇이 그렇게 새로웠던 걸까, 아니면 복잡한 생각들이 두 다리를 느리게 했던 걸까 나는 약속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윤우가 알려준 주소의 집 앞에 도착했다. 살면서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나는 달라져 있었다. 그게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알지 못했다. 윤우의 집은 굉장히 오래된 주택이었다. 이 동네 자체가 그런 집들이 모여 있어서 윤우의 집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진 속에서나 봤을 법한 초록색 철재 대문 앞에서 마치 중요한 면접을 앞둔 사람처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대문 옆 버튼을 누르자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그 소리는 마치 수감되어 있을 때 독방의 철제문이 열릴 때의 소리 같아서 신경이 곤두서버렸다. 대문을 지나 들어가자 현관문이 열리며 윤우와 여자친구가 서 있었다. 눈물샘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왈칵 얼굴이 젖을 만큼 눈물이 쏟아져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잘 참아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했다. 냇가에서 잡은 송사리 새끼를 고사리 두 손으로 강물에 담아 강가로 나오는 아이처럼 눈물을 한 움큼 움켜쥐고 참았다. 안압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끝까지 참아냈다. 친구와의 첫 만남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먼진 곳에 살고 있구나.”
그리고 나는 윤우의 여자친구에게 나를 테러리스트 반태오라고 먼저 소개했다. 이보다 더 정확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역에 내려서 산 붉은 하얀신스 꽃다발을 여자친구에게 전해주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산 꽃이었다. 그 꽃이 마음에 들길 바랐다.
“예쁜 꽃다발이네요. 고마워요.”
윤우의 여자친구는 나를 편하게 대했다. 그들은 식사 준비를 위해 나에게 소파에 앉아 기다려달라고 했다. 다행히도 소파는 창가를 향해있었고 나는 그들을 등지고 있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모르게 눈물을 쏟아냈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눈물을 닦아내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앉아 있었지만, 심각한 이명이 괴롭혔다. 윤우가 식사를 하자고 불렀지만 듣지 못할 정도였다.
식사가 준비된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포크와 나이프가 나의 왼쪽에 놓아져 있었다. 맞은편 윤우와 여자친구의 식기를 보았는데 둘 다 오른쪽에 포크와 나이프가 있었다. 나는 테이블을 등지고 있었지만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있었다. 식기를 준비한 사람은 윤우의 여자친구였었다. 내가 왼손잡이라서 왼쪽에 포크와 나이프를 두었다고 잠시 착각했다. 단지 우연일 뿐이었다.
식사를 하며 윤우와 여자친구는 나에게 왜 테러를 계획했는지 물었다. 그들의 질문이 불편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테러를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 연민이었다.
이명이 불편했지만 나는 편하게 말했다. 그러다 보고 말았다. 나를 바라보는 윤우의 여자친구의 손을 보고 말았다. 그녀는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엄지손가락 손톱 안쪽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던 연민의 눈빛 속에서 누군가를 보고 말았다.
‘심도이’
내가 일생을 연모했던 그 아이, 심도이였다. 그녀는 자기를 심사하라고 소개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의심할 수 없는 심도이를 보았다. 그때 이명이 사라졌다. 내 앞에 그렇게 찾고 싶었던, 보고 싶었던 심도이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