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뻘건 광휘가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그 불빛에 매료되었다. 불길은 붉었지만 검붉기도 하다 노란빛을 뿜어 내었다. 그것은 마치 생명이라는 관념을 시각화한 것처럼 격렬했다. 내 눈앞에 일렁이며 나를 괴롭혔던 불길들이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 불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시테 테러에서 도망쳐왔던 나는 더 이상 불길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미 많이 자라 있었다. 어쩌면 자라 있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나는 달라져 있었다.
매체는 반알터테러 소식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B.E.S에 처음 찾아왔던 날이 생각났다. 나는 그날 붉은 시테 테러를 이야기했다. 이제 서울이 불타고 있다. 나는 오늘을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지유는 긴급 모임을 소집했다. 평론을 사전 검토할 사안은 아니었다. 이번 모임은 토론 모임이었다. 모임이 열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중에 김민미 그녀가 또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말하였고, 김민미는 마이크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제약하는 알터에 대한 비판적 어조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많은 우리 회원’들이 테러에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이 테러에 힘을 함께해 달라는 말을 했다.
그녀는 ‘입속의 검은 말’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라는 말로 그녀는 마이크를 놓고 자리를 나갔다. 그녀가 일어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여러 명의 사람이 그녀와 함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김민미 그녀에게 압도되어 있었다. 그녀의 말들은 마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져왔었던 것처럼 심리적인 착각을 심어주었다. 나는 김민미 그녀의 조악한 말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들은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를 차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모임이 끝나버렸다. 지유와 나 그리고 몇 명의 연구원들이 New Flux 강당에 앉아 있었다. 정신이 없는 나의 곁에 지유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시발, 좆된 거 같지 않아?”
“뭐가?”
“김민미 저 년은 왜 계속 모임에 나오는 거야. 그리고 같이 일어선 새끼들은 sobriety 새끼들 같지 않냐?”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럴지도 모르겠네 라니... 지금 이게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아무리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sobriety 새끼들이 지 집처럼 드나드는 건 아니지 않냐?”
“sobriety는 실체가 있는 조직인가?”
나는 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실체를 알 수 없다면 그게 더 무서운 거지, 아니야? 저 새끼들이 우리를 숙주로 쓰고 있다면 어쩔 거야?”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창 밖은 불길과 연기, 그리고 사이렌 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다시 붉은 시테섬의 중학생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