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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ul 18. 2024

<애정의 조건 (1983)>

Terms of Endearment

백일도 채 되지 않은 딸아이가 혼자 침대에 누워 미동을 보이지 않자 엄마는 당황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막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거나 그 반대로 새벽녘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습이다. 남편이 괜찮을 거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아래층에서 소리치지만, 엄마는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기어이 아이를 건드려 깨웠고, 단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한껏 울부짖는다. 그런 아이를 보고서야 안심하며 문을 닫고 나가는 이는 <애정의 조건>이란 제목의 영화 주인공 오로라 그린웨이(Aurora Greenway; Shirley MacLaine)이다. 아이의 울음보다 아이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고픈 자기 욕구가 더 중요했던 오로라는 한평생을 '나'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쓰며 살아갈 여인이다.


잠시 후 카메라는 갑작스레 남편과 사별한 오로라가 슬픔에 잠겨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나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이제는 어느덧 귀여운 소녀가 된 딸 엠마(Emma; Debra Winger)가 차에서 내렸는지는 오로라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남편을 잃은 서러움에 사로잡힌 자기 마음을 정리 정돈하기만으로도 바빴다. 엄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분하게 차문을 열고 차밖으로 나가는 엠마를 향해 운전기사 아저씨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너, 엄마를 잘 돌봐야 해. You're gonna to take good care of your mom, ha?”     

아저씨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거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한 묘한 표정을 짓는 엠마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채운다.      


다음 장면은 성인이 된 엠마가 친구와 함께 자기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일이면 엠마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 플랩 홀튼(Flap Horton)과 결혼식을 올리고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는 날. 엠마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런 엠마가 영 못마땅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이기에 그런 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오로라는 노력한다. 하지만, 경제력이 변변찮은 플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어 보인다. 엠마는 그런 엄마의 잔소리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항했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싶었던 엠마는 결혼 후 곧바로 임신하여 첫째 아들을 출산한다. 몇 년 후 엠마는 남편이 새로 구한 직장을 따라 고향 휴스턴(Houston)을 떠나 데스 모이네(Des Moines)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아들과 딸을 차례대로 출산하여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 시간 강사에서 이제는 부교수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플랩이 버는 돈으로는 다섯 식구가 편히 살아가기에는 빠듯하다. 재정난에 살며시 마음을 조여오자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까란 생각도 해보았지만, 말 꺼내기가 무섭게 엄마는 냉담하게 충고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은 엠마를 꼬집어 낸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엠마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지금 엠마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주어진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내기. 엠마는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에서 주어진 삶을 향해 걸어간다.      


엠마가 소녀에서 숙녀로, 숙녀에서 가정을 꾸려 세 아이의 엄마가 될 동안 오로라는 홀로 살아간다. 주변에서 자기를 좋다며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늘 있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이 가질 않는다. 이상하게 자기 마음이 끌리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옆집에 사는 바람둥이 중년 남자 게렛 브리드러브(Garrett Breedlove; Jack Nicholson)이다. 우주 비행사로 미항공우주국에서 일했던 게렛은 스스로 이룬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바탕으로 기회만 되면 젊은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바람둥이다. 도무지 한 사람에게만은 집중할 수 없는 한 남자가 자기 말고는 다른 이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없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마음이 서로 부닥치고, 몸이 뒤섞이며 하나가 되는 과정은 웃음 없이는 보기 힘들다. 


엄마가 드디어 한 중년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엠마는 남편이 외도 중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이 학교 사무실에서 책을 읽다 그만 잠들었다는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이 잦아지자 엠마의 느낌은 확신으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아들을 데리고 간 식료품 가게에서 20달러가 부족해서 카트에 담은 물건을 모두 사지 못해 당황할 때, 같은 동네 은행에서 일하는 한 남자인 샘 번스(Sam Burns; John Lithgow)는 엠마가 부족한 금액을 선뜻 대신 내주면서 불친절한 가게 직원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며 엠마 편을 들어준다. 엠마는 샘에게 20달러를 되돌려주기 위해 찾아갔고, 함께 차를 한 잔 마시는 중에 샘은 엠마에게 부인을 통해 성욕을 해소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내가 허리 디스크로 인해 6년째 아내와 성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엠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가 아픈 아내가 상위 체위를 잡아주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엠마의 당돌하지만 진지한 물음에 당황한 샘이 얼굴을 붉히고 망설이다 말했다. 

"지금까지 그걸 600번은 말했다고요. I told her that six hundred times." 

엠마는 깔깔 웃으며 그 고통 이해한다는 따뜻한 눈빛을 샘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은 가끔 만나 혼외정사를 즐기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엠마는 샘에게 자신의 외도를 남편이 먼저 그랬으니 자기도 그래야만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그녀의 결단과 그 결단을 순식간에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을 곱씹어보면 그녀의 충동적인 외도 속에는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에 자기를 감싸준 한 남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따뜻함과 아내가 허리 디스크로 인해 6년째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 못했다는 그 남자의 고백에 공감하는 엠마의 배려와 사려심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1983년. 엠마는 그 시대가 감당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성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부부 사이에 설렘이 사라졌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이미 멀어질 만큼 멀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위해 정절을 강요하는 건 자기 속임과 자기부정을 권장하고 격려하는 게 아닐까?


엠마의 외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 플랩이 네브래스카(Nebraska)에 있는 한 대학교의 영문학부 학과장 자리를 맡기로 했음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기에 가족을 지키려면 엠마는 새로운 곳으로 다시 이사를 가야 했다. 마지막 만남에서 샘은 엠마에게 사진이라도 한 장 달라고 부탁했다. 지갑을 열어 보관해 온 사진을 하나 꺼내 건넨다. 파격적이었다. 그건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외도남은 활짝 웃으며 엠마에게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부탁했다. 엠마는 망설임 없이 입맞춤을 승낙했고, 그런 후 둘은 헤어진다.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거 아닌가?'란 질문이 무심하게 여겨지리만치 둘의 태도는 자연스러웠고 진지했고, 진심이었다. 1983년의 시대정신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육체적으로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정서적으로 함께 사는 것임을 강조하는 장면일까? 아니면 그 당시 미국형 현모양처(賢母良妻)가 여자의 일생을 옭아매는 고삐임을 고발하는 장면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엠마는 남편 플랩을 진심으로 대했던 만큼 샘 또한 진심으로 대했다. 어쩌면 엠마는 남편 플랩을 남편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면, 동시에 샘을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좋은 친구이자 동지로서 최선을 다해 사랑했을 수도 있겠다. 


엠마의 삶을 훔쳐보며 삶과 사랑, 결혼과 육아, 늙어감과 성숙에 관해 쉼 없이 생각할 때, 난 뒤통수를 크게 한 방 얻어맞았다. 엠마에게 떨어진 유방암 진단 때문이다. 암투병 중 생존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1983년. 엠마의 단짝 친구는 엠마를 자기가 사는 뉴욕 맨해튼(Manhattan, NY)으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엠마는 '신' 여성 한 무리를 만난다. 이혼을 삶에서 내린 현명한 결정이라 생각했고, 홀로 양육하기가 힘든 아이들은 기숙사 학교로 보낸 후 직업여성을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직접 돈을 벌어본 적 없는 엠마는 이들에게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엠마가 암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동정과 연민의 눈빛을 한없이 베풀기 시작했다. 엠마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소한 자기에게 밀어닥친 삶을 내친 적 없이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낸 엠마는 대체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런 자기를 다시 한번 위로하려는 친구를 향해 외쳤다. 

"암 투병 중이라고 말해도 돼. It is OK to talk about cancer!"

죽음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불철주야로 달리고 있는 현대 문명을 향해 엠마는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엠마는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엠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기 얼마 전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엠마는 아이 셋을 데리고 고향 휴스턴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세 아이를 재우고 엄마 침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엎드린 채 한참을 웃고 이야기하는 중 엄마가 물었다.

“우린 언제쯤 이렇게 치고받는 걸 멈출까? When ca we stop fighting?”
“우린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엄마만 싸운 거죠. 내 모습에 만족한 적이 없었잖아요. We never fought. That’s just from your end because you have never satisfied with me.”     


엠마가 병원에서 죽는 걸 목격한 오로라는 간호사가 잠든 플랩을 깨워 엠마의 사망 사실을 알릴 때까지 잠자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플랩이 엠마에게 다가가자 오로라도 뒤를 따른다. 잠시 후 슬픔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오로라는 사위의 품에 안겨 오열하며 나지막이 외친다. 

“이럴 거라고 생각은 해봤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힘겹네. It is harder than I thought.”     

오로라는 결국 나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엠마의 세 아이를 자기가 키우기로 결심했다. 다행인 건 혼자서 외롭게 키우지는 않아도 될 거 같다. 바람둥이 게렛이 자기에만 집중하겠다며 다시 돌아왔다.


한 여자의 삶, 그 여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또 다른 여자의 삶, 이 두 여자의 인생에 등장해 두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받은 또 다른 사람들의 삶, 다양한 삶이 다양하게 얽히고설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속절없고 냉정하리만치 뒤끝도 없다. 속절없고, 냉정하며 뒤끝도 없는 삶을 우리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 혼자서 감당하는 모습은 그래서 우습고, 불쌍하고, 안타깝다. 웃음과 눈물. 어쩌면 우리 삶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면 그건 웃음과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07.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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