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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둥이 Nov 22. 2024

모두 나가주세요. 혼자서 뜨개 하고 싶으니까.

서른일곱 살에 아이를 임신했다. 누구보다 남편의 손길이 필요할 때 시어머니가 위암에 걸리셨다. 외아들인 남편은 나를 내팽개치고 시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렸다. 입덧으로 세상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걸 느끼고 있는 순간에도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 항암치료를 갔다. 


아이를 출산했다. 누구보다 남편의 도움이 필요할 때 시어머니가 복막암에 걸리셨다. 외아들인 남편은 나와 딸을 내팽개치고 시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렸다. 허리 디스크로 아기를 돌보며 살림하며 일하는 것도 힘든데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1박 2일에서 2박 3일 시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며 항암치료를 모시고 갔다. 



남편은 직장인이 아니다. 그래서 주말도 휴일도 없다. 신생아 시절 딱 한 달, 그 정도만 빼고 남편은 거의 매일 아침 9~10시에 나가서 밤 9~10시에 들어왔다. 나 혼자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씻기고, 삼시세끼 밥, 빨래, 청소를 다 했다. 결국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 한번 걸리면 일주일은 기본, 20일 넘게 미열이 지속되는 감기에 걸리는 것은 예삿일이요, 드퀘르벵 증후군이라는 희한한 병에 걸리기도 하고, 지난 5~6년간 아무렇지도 않았던 허리 디스크가 도져서 약을 먹지 않고는 아기를 안아 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 역시 직장인이 아니다. 들어오는 일을 출산과 육아를 핑계로 고사하다 보면 언젠가 일이 끊어질 것이고, 아기가 좀 더 커서 내가 일을 하고 싶어질 때가 되면 경력에 공백이 생겨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밤에 아기가 자면 꾸역꾸역 2시간~3시간씩 일을 했다. 


가사, 육아, 일까지. 단 하루만이라도, 정말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누워서 쉬고 싶은데 남편은 아기를 대신 봐주지 못했다. 그렇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이 아기를 대신 봐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계 활동으로 바쁘니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7개월을 살았다. 


그런데 아기가 7개월 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복막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편은 제깍 하던 일을 멈추고 하루 시간을 전부 빼서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잠실에 있는 병원까지 갔다가, 다시 시골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 드렸다. 그제야 알았다. 그는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매주 하루에서 이틀을 이런 식으로 일을 멈추고 시간을 빼서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갔다. 


사안의 경중을 따지자면 물론 복막암이 더 중하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임신부터 출산에 육아까지, 이런 식으로 남편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밀려, 끝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린 상황이 지긋지긋했다. 더는 내게 도움을 달라고, 관심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지쳤다. 그래도 화가 너무 나서 가출이라도 해버릴까 생각했지만, 조그맣고 착한 딸이 생각나서 그건 할 수가 없었다.


뭔가 스트레스를 풀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출산 후 몸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운동은 할 수 없었고, 곧 집을 사야 하기 때문에 쇼핑을 하기도 꺼려졌다. 원래 내 취미는 꽃 기르기였는데 아기를 기르면서 뭔가를 더 기르기 싫었다. 그래도 뭔가 생산적이고 즐겁고 모든 잡념을 잊게 해 줄 만한 취미가 필요했다. 


곰곰이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혼자 할 수 있고, 누워서 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눈으로 영상을 보거나 귀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데다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취미를 어떻게 까먹을 수 있지? 그래서 다시 뜨개바늘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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