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6월
8킬로그램, 70.6센티미터. 열 달 동안 내 몸속에서 양분을 얻어먹은 덕에 세상에 나온 이 귀여운 생물은 나를 집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차꼬다. 그리고 이 차꼬를 내게만 떠안기고, 가장과 돈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12시간씩 자유를 누리는 나의 남편은 이 감옥에서 나라는 죄수를 관리하는 교도관이다.
교도관님의 동의가 없으면 나는 아무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아무 곳이란 공원, 영화관, 서점, 카페처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한 정도의 장소와 병원, 약국, 미용실과 같이 21세기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장소도 포함된다. 그래서 2주 동안 미열에 시달리며 아파도, 모유 수유 중에 갑자기 하혈을 해도, 머리가 묶을 수도 풀 수도 없는 일명 '거지존'에 진입했어도, 휴대전화가 갑자기 고장 나도 나는 집 밖에 함부로 나갈 수 없다. 교도관님이 차꼬를 내게서 떼어내 잠시 맡아주는 아량을 베풀어주시지 않는 한, 나는 지박령처럼 집에 있어야 한다.
교도관님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아침 7시 반부터 밤 11시까지도 나가 있으면서도 때로 특별한 일이 생기면(가령 본가 방문, 장례식 등) 3박 4일씩 집을 비운다. 어느 날 남편 차에 탔더니 차에 모르는 세차장 회원 카드가 있었다. 또 어느 날 차에 탔더니 모르는 카페의 테이크 아웃컵이 있었다. 눈앞이 허옇게 변하고, 불이라도 몸에 붙은 것처럼 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는 내가 집에서 아기를 보는 동안 어떤 자유를 누리는 걸까?
내가 사는 동네는 산골짜기 오지다. 높게 솟은 산과 거미줄처럼 뻗은 고속도로 아래 움푹 들어간 이 동네는 뭐든지 하나만 있다. 약국 하나, 마트 하나, 병원 하나, 산책로 하나, 김밥집 하나, 본인이 열고 싶으면 열고 닫고 싶을 때 닫는 카페 하나, 오래 있을 생각도 없는데 '2시간 이상 앉아 있지 마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가게 안 곳곳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카페 하나. 아 맞다, 편의점은 세 개였다가 두 개로 줄었다. 그러니 내가 유모차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기를 데리고 가면 어디를 가겠는가. 아기가 족쇄처럼 느껴졌다. 운신의 자유를 돌려달라고 울부짖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과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미쳐가고 있었다. 아기가 이유 없이 우는 날에는 다용도실 문을 닫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아기가 잠 안 자고 보채며 울부짖으면 벽에 내 머리를 찧어 육체적 고통을 내게 선사하는 방법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그냥 아기를 안고 나도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아니다. 아기처럼 귀엽게 울지 않았다. 나는 체면도 품위도 없이 꺽꺽, 거위 같은 소리를 내며 한참을 울었다. 아기가 내 품에서 잠들면 나도 울다 지쳐 아기를 안은채 딸꾹질을 하다 스르륵 잠든 날도 여러 날이다.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동안 그는 세차도 하고, 본가도 가고, 거래처도 가고, 카페도 가고, 외식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매달 꼬박꼬박 미용실도 갔을 것이다.
어떻게든 돌려서 말하는 방법을 썼지만,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내가 얼마나 남편을 '씹고' 싶어 하는지 강하게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정말로 많이 남편 흉을 보고 다녔고, 그 흉을 임신 때부터 계속 들어준 사람이 바로 내 동생이었다. 험담이 아무리 재미있어봐야 그 재미는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다. 더군다나 가방 끈이 긴 문학도인 내 동생은 교양 있고, 순수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채식주의자이자 정도를 지킬 줄 아는 여성주의자다. 따라서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는 동안 고통을 겪었더라도 1~2년 가까이 형부 흉을 들어주고, 또 왕복 세 시간 거리의 우리 집에 와서 말벗을 해주고 아기를 돌봐주는 일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동생에게 예쁜 옷을 떠주고 싶어졌다. 지금껏 어른 옷은 전체 제작 과정이 공개된 짧은 조끼 밖에 만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아기 카디건을 예쁘게 완성한 경험을 용기의 자양분 삼아 어른 카디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 이번에도 전체 제작 과정 동영상이 있는 카디건을 뜨기로 했다.
어깨 라인도, 목 칼라도, 소매 끝도 둥글둥글한 이 귀여운 형태의 카디건은 바늘이야기라는 뜨개질 업체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제품의 도안, 실, 바늘까지 한 번에 패키지로 사고, 같은 업체에서 운영하는 유튜브에 공개된 전체 제작 과정 동영상을 보며 뜰 수 있다. 마치 과외 선생님이 옆에 붙어서 일일이 정답을 알려주는 방식이라 망치면 안 된다(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깝다)는 부담감이 훨씬 덜 했다.
그리고 아기 돌봄과 가사를 전적으로 담당하면서 밤에는 부업을 하는 엄마로서 더는 시간을 짜낼 수 없어 밥을 먹으며 뜨개질을 했음에도 작은 아기 카디건을 만드는데 두 달이나 걸렸던 점을 생각해 나는 장비와 뜨개질 방식을 업그레이드했다.
지금까지 나는 바늘에 줄이 일체형으로 연결된 대바늘을 사용했다. 그래서 뜨개질 중간중간에 대바늘의 크기를 바꾸거나, 길이를 바꿔야 할 때마다 대바늘 줄에 걸린 실을 하나씩 돗바늘을 꿰맨 실에 옮기는 귀찮고, 시간이 오래 드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번잡한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바늘과 줄을 각각 따로 떼어낼 수 있는 조립형 대바늘이 있었다. 조립형 대바늘을 사용하면 실은 그대로 줄에 걸어놓은 채 바늘을 바꿔 끼울 수 있으므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또다시 뜨개질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일체형 대바늘을 사용하는 것은 포모도로 파스타를 정석으로 만드는 법과 비슷하다. 한 알씩 토마토를 씻고 자르고, 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볶으면서 다른 냄비에는 소금과 물을 넣어 펄펄 끓인 후 파스타를 넣어 삶는.... 그런 방법이다. 반면 조립식 바늘은 포모도로 파스타를 가정 간편식으로 조리한다고 보면 된다. 소스는 병에 든 것으로, 파스타는 숙면 파스타로 바꿔 비닐만 뜯어 소스에 넣고 볶아 손쉽게 만드는 방법이다. 바쁜 아기 엄마에게는 꼭 필요한 뜨개질 장비다. 거기다가 소매 바늘이라고 해서 폭이 좁은 소매를 편하게 뜰 수 있는 매우 짧은 대바늘도 있었다! 새로운 장비에 눈을 뜬 나는 눈이 돌아서 카디건 뜨기에 필요한 조립식 바늘을 재질과 크기와 길이별로 구입했다.
그리고 뜨개질 방식도 바꿨다. 대바늘 뜨개질 방법은 일반적으로 컨티넨탈이라는 방법과 아메리칸이라는 방법이 있단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하던 방법은 아메리칸 뜨개질 방법으로 실을 오른쪽 손으로 잡고 어깨를 사용해서 한번 돌리는 방법이란다. 따라서 아기 옷보다 크기가 큰 동생 카디건을 뜨려면 수백 번쯤 실을 손으로 잡고 어깨를 돌려야 한다. 이 방법은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내 몸에 꽤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컨티넨탈이라는 방법을 연습해 보았다. 이 방법은 실을 왼쪽 손가락에 건 채로 위아래로 까딱이면서 바늘에 걸리게 하는 방법이라 어깨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몸에 무리가 덜 가고 시간도 줄어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법으로 뜬 뜨개질 편물이 너무 못생겼다는 점이었다. 손 땀이 고르지 않아 편물이 울퉁불퉁하고 어떤 부분은 너무 쫀쫀하고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여유롭여서 펄럭거렸다. 이대로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동생에게 카디건을 떠서 선물한다는 의도를 전혀 살릴 수 없는 넝마주이 옷 같은 카디건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나는 차선책을 택했다. 열심히 유튜브를 검색하고 뜨개질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고수님들의 조언을 얻은 결과 플리킹이라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실을 오른쪽 손에 두고 뜨는 것은 아메리칸과 똑같지만 오른쪽 검지 손가락에 실을 걸어놓은 상태로 뜨기 때문에 실을 바늘에 감는 동작을 할 때 어깨가 아니라 손가락을 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일주일 정도 플리킹으로 동생 카디건을 뜨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그리고 몸도 편했고, 놀랄 만큼 뜨개질 속도가 빨라졌다!!
입 안이 미어터질 정도로 밥을 밀어 넣어 우적우적 씹으며 뜨개질을 해도 아기 카디건 뜨는데 두 달이나 걸렸지만, 이번에는 플리킹과 조립식 바늘 덕분에 한 달 만에 어른 카디건의 몸통과 소매를 후딱 뜰 수 있었다. 처음 하는 플리킹이라 어떤 부분은 코가 크고, 어떤 부분은 코가 가지런해서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탁을 마치고 스팀 다리미질까지 했더니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옷이 되었다.
새로운 기법, 새로운 장비, 새로운 뜨개 옷 덕분에 사람이라기보다는 원시 동물에 가까운 아기를 집안에 갇혀 오롯이 나 혼자 보면서 겪는 고통을 이번에도 잠시나마 뜨개질로 잊을 수 있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 마냥 똑같은 환경, 똑같은 사람, 똑같은 상황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는 지겨운 일상에도 따스하고 밝은 햇빛이 조금 비치는 느낌도 받았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열심히 만든 카디건을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다. 호들갑스러운 칭찬을 기대했지만, 동생의 반응은 매우 무미건조했다.
"와, 놀랍도록 멀쩡하네."
그러나 이것이 최고의 찬사라는 점은 나도 알고, 동생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