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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둥이 Dec 06. 2024

두 번째 편물: 아기 카디건

2024년 2월~4월

아기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만들었던 코바늘 귀도리 모자는 대성공이었다. 포근하고 폭신하고 부드럽고, 귀도리 부분이 작고 말랑한 아기 볼을 폭 감싸줘서 실용성도 좋았다. 코바늘 모자의 성공에 힘입어 나는 대바늘을 들기로 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바늘이야기라는 뜨개 용품 쇼핑몰에서 우연한 기회에 <내 아이가 좋아하는 옷>이라는 아기용 뜨개질 옷 만들기 책을 염가에 구매한 적이 있다. 태교용으로 노란 뜨개 원피스를 하나 뜬 후에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뒀는데, 다른 책을 구하거나 도안을 보고 살 에너지도 없어 그냥 다시 집어 들었다.


아기와 함께 보람차지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아기를 재운 후 사위가 조용할 때 나는 책을 뒤적뒤적거리다가 아기용 카디건 사진을 발견했다. '카디건! 카디건 좋다!' 카디건은 아기에게 유용하다. 아기는 체온 조절이 미숙해서 갑자기 땀을 뻘뻘 흘리다가도 순식간에 몸이 추워졌는지 딸꾹딸꾹 하며 작은 몸을 들썩들썩거리고 딸꾹질을 했다. 거기다가 옷 입히기는 얼마나 힘든지! 피와 살로 이뤄진 아기는 정말 무겁다. 작고 귀여워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 뼈와 피와 장기가 가득 차서 얼마나 무거운 줄 모른다. 우리 아버지는 "쌀 한 포대는 못 들어도 제 새끼는 들 수 있다"면서 통통한 아기를 안고 웃으셨지만, 나는 그건 옛날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건 무거운 거다. 5kg은 무거운 거다. 무거운 녀석이 제 몸도 못 가누니 팔을 들어 소매에 끼워 넣고, 머리를 들어 티셔츠 안에 끼워 넣는 일은 아주 어렵고 버겁다. 거기다가 옷 입기 싫다고 새된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얼굴이 시뻘게져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복어 같은 얼굴을 한 아기에게 옷을 입히기란 더 어렵다. 그래서 카디건은 아기에게 좋은 아이템이다. 바닥에 양쪽 앞판을 펼쳐놓고, 아기를 살포시 눕힌 후 팔만 쏙 끼워 넣으면 되니까. 그도 아니라면 유모차에 앉혀서 안전띠로 몸을 꽉 잡아놓은 상태에서 팔만 살살 들어 카디건은 등 뒤판으로 밀어 넣어 입히는 방법도 있다. 여하간, 아기는 옷 하나 입히는 것도 어렵다. 


출처 <내 아이가 좋아하는 옷>


예전에 코로나 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나도 집에서 답답함을 풀고자 유튜브를 보면서 조끼를 뜬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조끼를 뜨는지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동영상 덕분에 쉽게 뜰 수 있었지만, 이번처럼 글로 된 설명만 읽으면서 옷을 뜨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실패의 확률을 약간 줄이기 위해서 책에 나온 실과 바늘을 전부 똑같이 구입했다. 그러면 크기도, 질감도, 모양도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일이 벌어졌다.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나의 계획은 아기가 밤 잠에 들어간 후, 청소하고 젖병 소독을 마치고, 번역 일을 1시간~1시간 반 한 다음 뜨개질을 하고 잠드는 것이었다. 그러면 11시~12시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제 이유식 만들기라는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복병처럼 등장해 버렸다. 


이유식은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쌀을 깨끗이 씻어 불려 밥을 만들고, 밥을 식혀서 믹서에 갈고, 각종 조리도구를 소독해서 물을 넣고 불 앞에서 오래오래 저어준 후, 다시 식혀 실리콘 틀에 넣어 얼려 며칠 먹을 분량을 만든다. 소고기는 삶아서 다지고, 채소는 소화하기 쉽게 이파리만 깨끗이 씻어 찜기에 넣어 찌고 다 쪄지면 꺼내서 쫑쫑 다진다. 온갖 것을 다지고 끓이고 불려서 소화하기 쉽게 만들고 나면 씻어야 할 그릇과 조리도구가 싱크대에 한가득 쌓인다.


시간이 없다. 도무지 짜낼 시간이 없다. 헤르미온느는 돌리는 방법으로 수업을 여러 개 들어갔다. 그것은 수업을 여러 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루 일과 중 어떤 시간으로 돌아간들 내게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으면서 뜨개질을 하기로 했다.


아기를 재운 후, 후다닥 젖병을 씻는다. 그리고 큰 솥에 젖병과 조리도구 소독용 물을 올린다. 곰탕을 끓이는 큰 솥인 만큼 물이 펄펄 끓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국에 밥을 말든, 양념에 밥을 비비든, 어떻게든 밥과 반찬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큰 그릇에 대강 대강 덜어놓고 레인지에 돌린다. 그리고 최대한 오래오래 밥을 씹을 수 있도록 밥을 입안에 많이 욱여넣는다. 그래야지만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며칠을 굶은 걸인처럼 밥을 우적우적 씹고 가끔은 입 밖으로 흘리기도 하며 뜨개질을 한다. 인간의 존엄이나 여성의 품위 같은 것도 생각할 시간이 없다!


다행히 이 옷은 뜨기가 쉽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렇게 쉬운데 완성물이 예쁜 카디건이 또 있나 싶다. 우선 오른쪽 앞판과 왼쪽 앞판을 아래쪽에서부터 쭉 뜬다. 겉뜨기 한번, 안뜨기 한번 하면서 앞뒤로 돌려가며 길쭉한 사각형 형태로 몸통 부분을 뜨다가, 팔부분을 감아코를 만들어 길이를 옆으로 늘려주며 몸통과 소매를 한 번에 뜬다. 그 후에 목부분을 뜰 차례가 되면 코를 하나씩 덮어씌우며 줄여준다. 뒤판은 그냥 널따란 네모 편물을 한 장 뜨면 된다. 그리고 칼라 부분을 만들기 위해 직사각형의 작은 편물을 하나 더 떠준다. 그렇게 오른쪽 앞판, 왼쪽 앞판, 뒤판, 칼라를 각각 만든 후 바느질로 꿰매주면 된다.



뜨개질을 아는 사람이 읽으면 쉽게 느껴지겠지만, 뜨개질을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어렵게 느껴지는 설명이리라. 그래서 뜨개질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냥 머리 쓰지 않고 계속 손만 놀리면 만들어지는 옷'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각각의 조각을 바느질로 꿰매는 것이 아주 귀찮다는 점이다. 이 옷은 메리야스 뜨기, 즉 앞판은 겉뜨기로 뜨고 뒤판은 안뜨기로 떠서 전체적인 코 모양이 알파벳 'V'처럼 보인다. 따라서 각각의 조각의 V 모양이 서로 잘 이어지도록 꿰매야 예쁜 옷이 나온다. 어떤 V 모양은 위쪽에 있고, 어떤 V 모양은 아래쪽에 있으면 꼭 벌레가 갉아먹어서 삐뚤빼뚤하고 중간중간 알이 사라져서 측은해 보이는 불량 옥수수 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몰라도 바느질로 꿰매기 부분만큼은 입에 음식물을 가득 담은 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기를 재운 후에는 집중력과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그렇다. 그래서 있는 힘껏 없는 집중력을 짜내고, 감기는 눈을 부릅뜨려고 노력하면서 뀄지만, 어떤 꿰맨 부분은 조금 울기도 하고, 빈 부분도 있다. 


그렇게 먹이고, 먹으며, 그리고 먹이고 먹기 위해 일하며 매일 밤 파김치가 된 몸과 마음으로 한 조각씩 옷을 2월 중순부터 만들기 시작해 4월 말에 겨우 완성했다. 12개월 사이즈 옷이라 8개월 아기한테는 너무 컸지만 작지 않고 큰 옷이라면 언젠가는 한번 더 입힐 수 있으니 괜찮았다. 


8개월 아기에게는 너무 크다.


 

13개월 아기는 넉넉하게 입을 수 있다.


홀로 카디건을 뜨는 2개월 반의 시간 동안 괴롭고 많이 아팠다. 낮잠 자기를 어려워하는 아기는 피곤하고 졸려서 보채고, 낯선 세상과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퍼부었다. 안아서 40분~1시간을 흔들어줘야 겨우 자고, 잠든 아기를 눕혀놓으면 금방 일어나서 울어대는 통에 나 역시 괴롭고 힘들었다. 오전 9시~10시에 나가서 밤 10시~11시에 들어오는 남편이 야속하고 미워서 모두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다잡는데 뜨개질이 도움이 되었다면 믿을까? 그렇다. 이 옷을 떠서 아기에게 입혀보고 싶다는 마음이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더 자유로웠을 것이고, 결혼 생활과 육아에 소홀한 남편도 밉지 않았을 것이라는 감정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올 때마다 나는 뜨개바늘을 들고 입에 음식을 가득 넣은 채 뜨개질을 하며 '이 옷을 입어줄 아기가 없었다면 이 뜨개질도 할 필요가 있었겠어? 아기가 있으니까 아기 옷 뜨개질도 다 해보지'라는 생각으로 그 감정을 누르고, 삭히고, 없애보려 애썼다. 이 카디건은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기, 남편, 밥벌이에 대한 미움을 삭이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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