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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둥이 Nov 29. 2024

첫 번째 편물: 분홍 귀도리 모자

23년 1월

뜨개로 육아와 가사 스트레스를 풀기로 결심했다. 


항상 집에 갇혀 있는 몸이다 보니 밖에 나가서 하는 활동은 할 수 없다. 아기는 언제 자다가 목이 막힐지, 머리를 콩 박고 울지, 속싸개에서 팔을 뻗어 제 손과 팔에 놀라 자지러지듯이 울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아기가 자는 밤에도 나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5분 대기조로 살아야 한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취미 생활 중 가장 적합한 것이 뜨개질이다.


출산 후 생긴 드퀘르벵 증후군으로 오른쪽 손목이 아파서 좀 부담스러웠지만, 소염진통제를 바르고 손목 보호대를 차고 뜨개질을 하면 그나마 괜찮을 것도 같았다.


무엇을 뜰까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뜰 수 있고, 마음속에 부글거리는 화는 성취감으로 가라앉힐 수 있게 단번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는 아이템이어야만 했다. 어떤 물건을 뜨면 좋을까 하고 며칠을 생각한 끝에 겨울 산책 나갈 때 아기 얼굴을 폭 감싸줄 수 있는 귀도리 모자를 뜨기로 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귀여운 귀도리가 달린 버킷햇 만들기 영상이 있었다. 어른용 모자를 뜨는 방법이었지만 모자의 머리 뚜껑 부분을 작게 만들고, 그 아래로 계속 편물을 돌려가며 길게 뜨기만 하면 작게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을 뜰지도 정했고, 어떻게 뜰지도 정했으니 이제 실을 정할 차례였다. 뜨개질 초보인 나는 어떤 실이 좋을지 몰랐다. 지금이야 합사니, 1합이니, 울이니, 알파카실이니, 모헤어 실이니 하는 다양한 실의 종류와 상태에 대해 말만 하면 대충 알지만, 이때만 해도 실은 다 똑같은 아크릴이나 울실인 줄 알았다. 그래서 검색사이트 제일 상단에 나오는 뜨개 용품 상점에서 실을 둘러봤다. 


실 둘러볼 시간도 많으면 좋으련만. 새벽 5시~6시에 아기가 '엥!'하고 울면 혼합수유를 하고, 어떻게든 모유를 더 먹이고 싶다는 마음에 유축을 하고, 남편이 아기와 잠깐 놀아주는 동안 아침밥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밥을 먹고 나면 나도 밥을 먹고 아기와 또 놀아준다. 남편이 나가면 아기는 한두 시간 정도 잔다. 그러면 나도 자고, 젖병을 씻고, 집안일도 한다. 아기가 깨어나면 또 놀아주고, 밥을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재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싱크대에 씻고 소독해야 할 아기 물건이 한가득 쌓이고, 깨끗이 씻어둬야 할 아기 욕조와 정리해야 할 아기 목욕 용품도 잔뜩 놓여 있다. 그것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저녁 8시다. 


저녁 8시가 되면 나는 10시까지 번역을 한다. 요즘 같은 불황에 일감이 있고, 또 나처럼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에게 일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는 집중력을 어떻게든 다시 되살려보려고 애를 쓰며 일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느긋하게 털실을 구경할 시간 따위는 없다. 


그래서 대충 샀다. 뭐든지 대충, 대충. 그러지 않으면 내 머리와 몸에는 과부하가 걸려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내 정신과 신체를 위해 그냥 아기에게 써도 좋다는 설명만 대충 보고 부드러운 수면사를 샀다. 이틀 만에 배송 온 수면사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수면 양말을 만드는 실이라 그런지 두께도 도톰하고, 부드러운 데다가 색깔도 아주 환해서 마음에 들었다.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입히고, 놀아주는 12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나면, 잔뜩 쌓인 아기 설거지거리를 씻고 열탕 소독하는데 한 시간을 쓰고, 1시간~2시간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 그 후 밤에 자기 전에 혼자 침대에 누워 분홍색 수면사로 귀도리 모자를 떴다. 


그런데, 어라... 출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코바느질이 힘들었다. 실을 코바늘 고리 끝에 걸기 위해 손목을 돌리는 행위가 이렇게 몸에 큰 부담을 주는 줄 몰랐다. 잠을 좀 줄이더라도 내 기분이 좋아지게 좀 더 오래 뜨개를 하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내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하는 지금 하는 모든 일은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남편이 하는 모든 일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기가 생겼다.


뜨거운 물주머니, 저주파 마사지기, 손목 마사지기를 동원해 뜨개질하기 전과하고 난 후에 손목 마사지를 했다. '그렇게 까지 하면서 뜨개질을 해야 하니?'라고 묻고 싶은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 마음의 위안거리가 필요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즉시,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위안거리가 필요했다. 


아이는 너무 늦게 큰다. 하루는 너무 더디게 지나간다. 그 모든 것을 나 혼자 견디기란 너무 힘들었다. 아기는 예쁘지만 우는 아기를 달래고, 수유하고, 무거운 아기를 안아 올려 기저귀를 갈고,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아 쪼그리고 앉아 아기 목을 욱신거리는 손목으로 받치고 목욕을 시키고, 버둥거리면서 싫다는 아기를 달래 가며 로션을 바르고, 재미도 없고 반응도 없는데 아기한테 웃어주며 말 걸고 책 읽어주고 놀아주는 행위는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었지, 내 개인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고통을 참고 뜨개질을 했다. 폭신한 수면사로 8코를 잡고 시작한다. 원형 뜨기로 둥그렇게 뜬 후 아기 머리 위에 살포시 올려보았다. 아기 머리통에 적당히 맞는 것 같아 보여 원형 뜨기는 그만하고 이제 머리 둘레 부분을 빼뜨기 없이 쭉 떠 나갔다. 거의 모자스러운 형태를 갖춰갔을 때 다시 아기에게 씌워보았다. 눈썹을 살짝 가리는 것이 너무 길었다! 아직 챙도 만들지 않았는데 너무 모자가 길어진 것이었다. 실에서 바늘을 빼고 살살 풀어서 길이를 좀 줄여주었다. 서너 줄 정도 줄인 후 다시 아기 머리에 씌워보았더니 아기 이마가 간신히 가려지는 정도의 길이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모자의 챙을 만들어주면 된다. 한 단에 몇 개씩, 대충 눈대중으로 코를 두 개씩 늘려주는 두코 늘리기를 하면서 모자챙이 완만하게 퍼지는 형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모자는 그렇게 일주일 만에 끝났다.

그다음으로는 귀도리를 떴다. 귀도리는 한 번도 떠본 적이 없어서 유튜브를 보면서 한 줄 한 줄씩 떴다. 귀와 볼을 감싸는 부분은 직사각형으로 뜬 후에 턱을 감싸는 부분은 점차 면적이 줄어들도록 두코 줄이기를 하면서 떠주고, 마지막으로 턱에 끈을 묶을 수 있도록 사슬 뜨기로 끈을 만들어줬다. 수면사가 워낙에 도톰하다 보니 사슬 뜨기만으로도 충분히 통통한 귀도리 끈이 되었다. 


양쪽 귀도리를 만든 후에는 돗바늘로 귀도리를 모자 안쪽에 달아주었다. 완성한 모자는 아기 세탁세제를 물에 풀어 손으로 조물조물 세탁한 후 빨래걸이에 수건을 깐 후 그 위에 눕혀서 올려두었다. 작은 아기 모자지만 물을 먹어 무거워진 편물이 축 늘어져서 모자가 크게 늘어날까 봐 빨래걸이에 걸지 않고 눕혀두었다. 


처음 코를 잡고 모자가 완성되어 아기 머리에 씌워지기까지 열흘 넘는 시간이 걸렸다. 작은 아기 모자를 뜨는데 열흘이나 쓰다니...... 이게 다 남편이 나를 도와주지 않고, 혼자 지내게 한 탓에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 남편이 새삼 또 미워졌다. 하지만 미움이 나를 잡아먹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피해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혀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은 임신 기간에 이미 질릴 만큼 했다. 거기다가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고, 먹이고 키워야 할 아기도 있는 엄마였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아주 작고, 희미하고, 미약한 것일지라도 내게 희망을 주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위안거리가 된다면 그 일을 함으로써 나 자신을 살려야 했다. 작은 귀도리 뜨개 모자가 바로 그것이었고, 그 일에서 잠시나마 머리를 비우고 행복감을 맛본 나는 없는 시간과 아픈 몸이라는 장애물을 무시하고 어떻게든 더 뜨개질을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모자는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뜬 모자를 쓰고 재밌다고 웃는 아기도 예뻤다. 귀도리 모자를 씌워 함께 산책을 나갔더니 귀도리 모자가 두툼해서 따듯하겠다고 칭찬해 주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예쁜 아기와 예쁜 아기가 쓰고 있는 모자를 만들었다는 즐거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차가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 작은 뜨개 모자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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