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vin Jun 09. 2024

그 사람의 흔적들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나

가족들, 친구들, 여자친구, 남자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선물 같은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매개체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모두 버리겠지만 추억하며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것들은 내 방 곳곳에 숨어있다.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때 도자기를 하던 친구에게서 받은 직접 빚은 투박하지만 귀여운 컵, 비어있는 페이지에 짧은 손편지를 써놓은 선배에게 받은 세련된 공책,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마신 첫 술병에 각자 사인을 해놓은 술병 등이 있다. 하지만 음악을 참 좋아하는 나는 이런 물건들보다 음악이 더 강렬하게 나의 옛 기억을 끄집어내 주는 매개체다. 내게 그랬던 음악들 몇 곡에 대해 적어보겠다. 



1. 비스트 – How to love


초등학교 6학년 당시 프랑스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한국학생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때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적어도 아이돌그룹 하나씩은 좋아하고 있었고 친구무리들 사이에 끼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반강제로 아이돌들에 대해 배우게 된다. 나는 아이돌 팬덤에 대해 궁금하지도 일부러 찾아보지도 않았던 사람이지만 B1A4의 팬덤이름은 ‘바나’, 슈퍼주니어의 팬덤 이름은 ‘엘프’, 비스트의 팬덤 이름은 ‘뷰티’, 그리고 인피니트의 팬덤 이름은 ‘인스피릿’이라는 걸 별다른 노력 없이 알게 됐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생애 처음으로 누군갈 좋아하는 감정을 느껴봤고 내가 좋아하던 그 여자아이는 ‘뷰티’였다. 차마 고백은 할 수 없었던 소심했던 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당시 신곡이었던 비스트 fiction의 앨범을 사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남몰래 그녀의 사물함에 넣어놓고 반응을 지켜보던,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에 헛웃음이 나오는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하고 그녀와는 연락이 끊겼지만 덕분에 비스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곡들을 찾아 듣게 되었다. 비스트 How to love라는 곡은 Hard to love, How to love 앨범의 수록곡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도 타이틀곡보다 더 좋아한다.


“이것저것 따지고 끼워 맞출 시간에 네 눈을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웃을래

보고 있기만 해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남지 않더라도 난 좋은데

Woo baby, tell me, how to love
닫힌 맘을 열어 조금만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비워 봐"


두 번째, 세 번째 줄 가사는 내 성격과도 잘 들어맞는다. 큰 이벤트나 활동보다는 일상의 소소함을 즐길 수 있는 하루들이 모여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2. 어반자카파 - River


전 에피소드는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누군갈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곡은 중학생 때 내가 생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 고백을 했던 여자아이, 어쩌면 내 첫사랑일지도 모르는 친구에 대한 에피소드다. 한창 이 친구를 짝사랑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친구의 카X오톡 상태메시지에 ‘어반자카파’라는 다섯 글자가 업데이트 됐었다. 나는 당시 어반자카파가 뭔지 아예 몰랐기에 이 친구의 관심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어반자카파가 무엇인지 네X버 포탈에 검색해 봤다. 이때 처음으로 어반자카파라는 혼성그룹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어떤 분위기의 곡들을 쓰는지 찾아 들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내 취향에 꼭 들어맞는 곡들을 찾게 됐고 현재는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꼭 모든 수록곡들을 들어보게 되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는 다시 아프고도 예쁜 추억들을 만들어 갈 테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않고 그저 믿어주면 되죠"


많은 곡들이 있지만 그중 내 가슴을 가장 아리게 만들었던 노래는 이 곡이다. 한때 과거에 얽매이며 살아가던 때의 감정을 되살리게 해 준 그런 곡이다.



3. 치즈 - 너 없이 첫날


공교롭게도 이번 에피소드도 위의 어반자카파를 알게 해 준 친구와 동일한 친구이다. 치즈라는 밴드를 알게 된 건 내가 미국으로 떠난 이후였다. 여느 때처럼 들을만하던 음악들을 탐색하던 중 올티의 무중력이라는 곡을 알게 됐고 그 곡에서 치즈의 달총이 피처링을 했다. 그 피처링한 여자 보컬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맑고 청아한 하지만 살짝 허스키함이 묻어있는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라는 걸 알아챘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 나는 치즈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달총은 치즈라는 밴드의 보컬인걸 알게 됐다. 그리고 달총의 프로필 사진을 본 순간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반자카파를 알게 해 준 나의 첫사랑과 너무 닮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 동안 달총의 프로필 사진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친구의 모습까지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 오버랩되었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치즈라는 밴드의 곡들이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많은 치즈의 곡들이 내 음악취향과 맞아떨어졌다. 앨범이 나올 때마다 주기적으로 모두 들어보고 있고 현재 나의 최애 치즈곡은 작년에 출시된 너 없이 첫날이란 곡이다. 조매력이라는 유튜버의 채널에 달총이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이 곡은 오랜 연애를 끝마친 이별 후 첫날을 그린 곡이라 소개했다. 이 상황에 본인의 감정을 대입하여 들어보면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것 같다. 인디밴드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과 멜로디를 좋아하는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노래의 분위기에 심취하게 된다.


"어느새 하늘은 까맣게 물들어 가는데

새벽이 지나도 아마 넌 안 올 것 같은데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해 물어보고 싶어

너 없이 어떻게 해야 돼

가르쳐줄래"



4. 래원 - 양치기


래원이란 래퍼를 처음 알게 된 건 쇼미더머니 9에 나왔을 때였다. 가사 자체는 말이 안 되지만 천재적인 라임을 만들어내 곡을 써내고 신들린 박자 쪼개기로 각광받던 래원은 사실 노래를 볼 때 가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겐 그리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생 말미에 호감을 갖게 된 여자아이와 대화를 하며 그 친구가 래원의 팬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일부러 다시 래원의 곡들을 찾아 들어보곤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억지로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없듯이 래원의 곡들은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호감을 갖게 된 친구와는 잘 이뤄지지 않고 무던하게 생활을 이어가던 중 래원의 새 앨범이 음악포털에 올라온 걸 보게 되었다. 본래 나 같았으면 취향이 아닌 아티스트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그날따라 왠지 좋아했던 그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고 래원의 곡을 한 번만 더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새 앨범은 유레카라고 외칠 만큼 곡들이 매우 내 맘에 들었다.


여전히 그의 곡들은 이 앨범에서도 아무 말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를 매혹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노래라는 건 무조건 마음의 울림을 주는 가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을 처음 깨트려준 곡들이 아닐까 싶다. 이 앨범의 몇몇 곡들 중 내가 좋아하는 신비롭고 풍부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양치기라는 곡이 내 최애이다. 비록 그 많은 가사들 중 제대로 들리는 건 I’m a shepherd, just wanna enjoy the world라는 두 문장밖에 없지만 이 두 문장의 임팩트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이 앨범을 계기로 앞으로 래원의 곡들은 출시될 때마다 한 번씩 들어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구석 싱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