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곧 오게 될 그 날을 위해
그러고보니
네 앞으로 써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가 이미 여러통 내방 서랍에 있는데
그건 사실 네 앞으로 쓴다는 핑계로
결국 내 앞으로 쓴 편지들이었지만,
먼 훗날이 되어 웃으면서
그 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날이
혹시나 올까 싶었는데
역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 그런 이상한 날은 오지 않는게 맞지
만약에 우리 둘 중에 누군가 결혼을 한다면
그건 당연히 내가 먼저가 될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언젠가 술취해서 했던 말처럼
내가 너에게 너무 아까웠고
너는 나를 보내고 나서 너무 후회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도저히 못만날 것 같다고
말했었으니까
나는 사실 그 후에도 새로운 연애를 몇 번인가 했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러는 동안
넌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들었어
그렇게 다른 기억들로 덮여버려서
정말로 우린 이제 과거가 되겠지
그래, 그러는게 맞아
결국 현재도 미래도 될 수 없을테니까,
과거로 분류해버리는게 맞아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조금 이상했어
어차피 너와 나는 아닌데,
널 아직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이 이상한걸까
그래서 미리 이 편지를 쓰는거야
언젠가 다른 사람과 사랑하고,
가정을 만들거나 아이를 만들지도 모를
미래의 너에게, 라는 핑계로
실은 지금의 나에게
한 때 참 많이 좋아했던,
그런만큼 참 서로를 가엾이 여겼던,
안쓰러워했던,
어쩌면 그래서 놓을 수 없었던
그런 너는
이제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추억일 뿐이야
추억은 아무 힘도 없으니까
추억은, 추억이니까
너는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니고
한동안 후회는 했지만 이젠 극복했고
나도 이제 널 미워하지 않고
그저 그정도의 마음으로 서로 편안하게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남이야
요즘도 가끔 네 소식이 궁금한 마음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좋아했던 마음보다도 더 큰,
진심어린 연민때문이었을지도 몰라
세상에서 서로를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서로라고 믿었던 그 기억 때문에
아무도 날 몰라주는 것 같을 때,
제일 먼저 네가 떠오르곤 했어
그러면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가끔씩 현실로 소환되어
내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지
나도 가끔씩 너에게 그랬을거야
하지만 이제 너는 그 자리에 없겠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볼 곳은, 이제 없는거야
어쩌면 그동안은
이별 유예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대단한 이별을 한걸까 우리?
아니 아마, 이별이 대단한게 아니라,
그 마음이 대단했던 거겠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래서 이렇게 참 오랫동안
바보들처럼 맴돌았지만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야
차라리, 네가 먼저 떠나줬으면 해
난 이제야 겨우 마음의 준비가 됐으니까
이젠 정말로,
너와 헤어지는거야
이 순간 이후로도
이 세상에 너는 존재하겠지만
더 이상 내가 부르는 '너'는 아니니까
잘가,
고마웠어,
더는 널 찾지 않겠지만
잊지는 않을게
행복하게 잘,
살자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