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15)

15. 백지장도 동생이랑 맞들면 훨씬 낫다.

by 이양고

1. 동생이랑 일하면 좋은 점


이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머니 플레이에 일하는 인원만 최소 13명이 필요하다.

운영부스 3명, 각 미니 부스 2명씩 총 10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하지만 13명만 있어서는 10분마다 한번씩 바뀌는

라운드 알림 '징'을 칠 사람도 없고,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쉴 시간이 없기 때문에 추가 인원이 필요했다.


애초에 관련 스태프를 구하기 위해

연계된 회사가 있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4일 동안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그 바람에 대표님이 당근에서 급하게 알바를 구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일을 하겠다고 연락을 해놓고

무책임하게 3명이나 잠수를 타버려서 인원이 부족하던 참에

동생에게 주말 알바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고,

동생은 피곤하긴 하지만 재밌을 것 같다며

흔쾌히 응해주어 함께 일하게 된 것.





순천 한달살기 In 장천 편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나는 동생이랑 사이가 몹시 좋다.


어렸을 때는 싸우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함께 여행도 다니고 글쓰기와 같은 취미생활도 함께 한다.


나는 권위 있는 언니가 아니고

동생은 언니를 이겨먹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어

우리는 4살 차이임에도 친구처럼 잘 노는 편이다.


일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동생이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사람이 많은 축제 현장이라

오토바이는 진입이 안 되어 운반카트를 끌고 가

점심을 받아왔다.


오늘의 점심은 김치볶음밥!


대표님이 점심으로 뭘 먹을지 추천을 받았는데

썸머와 또치는 햄버거를 추천했고

점심은 밥으로 먹어야 한다는 주의의 나는 김치볶음밥을 추천했다.


결과적으로 김치볶음밥. 성공적.

저녁까지 배가 든든해서 일할 맛이 났다.





오늘(10/11)부터는 머니플레이 뿐만 아니라 '럭키드로우'도 함께 진행됐다.


럭키드로우는 소원을 빌고 경품을 받아가는 부스였는데,

그 부스 또한 홍의별곡에서 진행한 이벤트라

우리가 기존에 쓰던 넓은 부스에서 쫓겨나(ㅠㅠ)

거리에 나와 운영부스를 세팅하고 일을 시작했다.



천막 안에 부스가 있을 때는

앞에서만 고객을 응대하면 되어 편했지만

거리에 나와 있으니 앞은 물론이고

뒤, 옆에서 무작위로 말을 걸어와 신경쓸 게 더 많았다.


사방에서 말을 걸어와 정신이 없는 것 외에도

힘든 일은 더 있었다.

오후 세 시쯤, 해가 정수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나무 그늘이 사라지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사방에서 말은 걸어와 정신은 없고

해는 따갑고...

4일 동안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오늘의 간식은 '김보' 아조시의 소시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대표님께서 커피며 간식거리를
축제 내내 빠짐없이 챙겨주셨기 때문이었다.


사실 15명이 넘는 인원의 간식과 커피를 준비하는 건
재정적으로도 꽤 부담이 되었을 텐데,
대표님은 늘 아끼지 않고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덕분에 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3만원 보다 훨씬 더 많이 모은 친구들. 많이 모은 친구는 100만원 가까이 모았고, 나머지 친구들도 몇 십만원 단위까지 모아서 기념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머니 플레이 3일 차가 되자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애초에 목표는 가장 빠르게 3만 리치를 만들어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입장 후 3시간, 4시간씩 게임만 하는 어린이들이 생긴 것이다.


날씨가 아무리 좋다 해도 땀이 날 만큼 더웠는데,
그 어린이들은 돈을 불리는 일과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 라운드마다 바뀌는 미니게임이
너무 재미있었다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몇몇 어른들도 이 게임의 취지와 규칙이 참신하다며 칭찬해주셨다.
게임의 룰과 초기 설정을 만든 망고를 비롯해,
한 달 동안 함께 준비해온 나, 썸머, 또치 모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퇴근할 시간.

함께 일했다는 흔적으로 사진을 남기고 흩어졌다.


드디어 내일은 축제 마지막 날.

3일차 정도가 되자 피로가 누적되어

어깨도, 다리도 아파왔지만

하루만 더 잘보내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시원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우리의 저녁은 중식.

김치볶음밥도 먹었고 소시지까지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았지만

뛰어다니고 수많은 이야기를 하느라

에너지를 까먹었으니 다시 채워줄 차례.




유산슬, 깐풍새우와 같은 요리류와 함께

새우볶음밥과 짬뽕까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맥주까지 마시니 온몸에 긴장이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2. 비와이 팬된 썰 풉니다


타라, 또치, 썸머는 비와이를 본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고,
나는 동생과 함께 대표님, 망고와 남아 있었다.


대표님과 망고가 추가로 살 물건이 있다며 다이소에 간다고 해
나도 함께 들렀다가,
다시 부스로 돌아와 미니 부스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작업을 도왔다.


나는 작업을 돕고, 동생은 부스 안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때 무대에서 비와이가 곧 등장한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다섯 개 부스 중 세 곳의 가림막을 설치했을 때,
망고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비와이 무대는 보고 싶다고 말하자
걱정 말고 얼른 가서 즐기라며 웃어주었다.


그렇게 동생과 함께 맥주를 사 들고, 비와이의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힙합 장르를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비와이의 ‘나의 땅’이라는 곡을 좋아한다.


그래서 3·1절이나 광복절, 혹은 문득 생각날 때면

그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곤 했다.

래퍼 중에서도 특히 비와이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이번 무대가 더욱 기대됐다.


래퍼 비와이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작사, 작곡한 기념 음원이 공개된다.
'나의 땅'은 "이젠 절대로 가져갈 수 없어 너와 나의 땅/ 내 바지에 내 땅에 흙이 묻도록 밟아/ 이젠 절대로 가져갈 수 없어 너와 나의 땅/ 내 바지에 내 땅에 흙이 묻도록."이라는 가사가 담겼다.
위원회는 "음원은 '지난 100년 역사에 대한 기억과 감사,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땅 위에 선 우리의 자긍심'이라는 주제를 담았다"며 "최신 경향의 비트, 은유적 가사, 비와이의 감성을 적용해 역사성, 예술성,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고 전했다.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





결과적으로 ‘나의 땅’을 듣지는 못했지만,
수퍼비와 데이데이 등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TV로 들을 때도 딕션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음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내가 잘하는 일을 확실히 알고,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다는 것.
그리고 유명세와 함께 돈도 많이 벌게 되는 것.
그런 건 어떤 기분일까?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비와이가,
무대 위에서 여전히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부러웠다.



비와이 무대를 다 보고 돌아온 우리는
의령 칠곡면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혼자 걸을 때는 괜히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생과 함께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사실 의령에서 지내는 동안
컨테이너 밖에서 들려오는 외부 소리에 예민해져
새벽이면 한두 번씩 꼭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런데 동생이 함께 있어서였을까,
그날은 모처럼 푹 잘 수 있었다. 피로가 싹 풀리는 밤이었다.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14화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