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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14)

14. 도파민에 젖어 체력을 까먹지 않기

by 이양고

1. 신나도 일할 체력은 남겨놓을 것.




어제 축제의 개시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기분에 젖어 술을 잔뜩 먹은 탓에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당연했다.

6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한 것도 오랜만이거니와

물을 잘 먹지도 않은 몸으로 알코올을 들이부었으니 피곤하지 않는 게 이상할지도.





해장이 간절했다.

홍의별곡 사무실 근처에 있는

자굴산 촌국수에 가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는데,

오늘도 세팅해야 할 게 많아 지금 출발해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누군가는 홍의별곡에 남아 있어야 했다.


국수를 간절히 먹고 싶어하던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내가 남아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무한감사)






오늘도 화창한 가을날씨.

분명히 가을이라고 하는데,

해가 얼마나 쨍쨍한지 여름을 방불케한다.


이런 날씨에 빨래를 해줘야 하는데.. (자취 1n년차)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국수를 기다리는데,

뒤늦게 합류한 만듀가 국수집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한참 동안 말 없이 국수만 들이켰다.




만듀와 나란히 국수를 먹고 다시 사무실로 가는 길.


의령 칠곡면은 마을 자체가 워낙 작고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 밤에 돌아다니면

마을이 잠든 듯 고요-하다.


밤산책을 나서면,

오히려 칠곡면을 지나치는 자동차들이

놀라서 속도를 낮추며 지나갈 정도로 조용한 곳.


하지만 낮에는 마을이 깨어난다.

어젯밤에는 보지 못한 메모도 보고,

할머니가 잠깐 주차해둔 어르신 보행기도 구경하고.





난 워낙에 시골에서 자란 터라

봄이면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면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논을 보고

가을에는 보기만 해도 배부른 황금빛 논이 낯설지가 않다.


도시는 피부와 눈으로 사계를 느낀다면,
시골은 사람들의 행위와 마음,

생각으로 사계를 느끼는 곳이라
그 변화가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특히 가을이 되면 힘든 줄도 모르고 수확하시던
어르신들의 굽은 등이 떠오른다.

황금빛으로 물든 저 수많은 벼들이
올해도 누군가의 풍족한 마음이 되었겠지.




오늘도 축제 현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1박2일 톤)

머니플레이는 12시부터 시작되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12시 전.

어제 게임을 진행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점검하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넣는 시간.

분명히 가을인데 (오늘 : 10월 11일) 날씨가 왜 이렇게 더운건지.


물건을 옮기거나 필요한 작업들을 집중해서 하노라면

노란색 하와이안 셔츠 안에 받쳐입은 티가 금방 축축하게 젖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이기 때문에

묘하게 들뜬 표정의 수 많은 사람들과

풍선을 만들어주는 키다리 아저씨,

젤리를 나눠주는 우리 멤버들이 있기에 더욱 즐겁다.


축제 현장에서 일을 한다는 건

더워도, 힘들어도, 살이 새카맣게 타고 있어도

그걸 잊을 정도로 도파민에 젖어 일을 하는 것인가보다.





회사를 다닐 땐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바쁠 때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후루룩 지나갈 때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아주 길고 더디게 흐르는 듯 피부에 새겨지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숨이 콱 막혀서 잘 쉬어지지 않았는데

그럴 때면 1층으로 내려가

주변을 잠깐 걷고 오며 그 답답함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축제 현장에서는 우선 시계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고,

정신 없이 결제를 하거나 게임을 설명하거나

상품을 건네주는 일을 하다 보면 1-2시간이 훅훅 지나가있었다.


분명한 건, 회사에서 일하던 모든 시간이 싫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퇴사 직전엔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결과 지금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축제 기획자로 일해볼 기회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아주 나중의 일이었겠지.


퇴사 후 나는, 때로 불안한 미래 앞에서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하고 홀로 반문한다.

어쩌면 더 다니거나 바로 이직하는 선택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른다.

내 경력에 단절이 생긴 것에 대해.


하지만 지금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접점이 없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때 그 선택을, 그리고 지금의 나를 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2. 우리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자



오늘의 저녁은 샤브샤브!

누군가 '국물'을 먹고 싶다는 의견을 냈고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해 찾아온 곳.


나 역시 샤브샤브를 좋아하는 편이라

두 손 들고 환영하며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샤브향에는 샤브샤브, 월남쌈을 포함해

떡볶이와 김말이 등 간단한 분식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의령에서 샤브샤브를 먹고 싶은 분들은 추천한다.

특히 숙주를 포함해 배추, 청경채 등 모든 야채가 신선해보였다.



우리는 손으로 부지런히 샤브샤브를 만들고,

소고기를 넣어 익히면서도 입은 쉼 없이

오늘 머니 플레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하는 일에는 부족한 점이 보일 수밖에 없기에
지금이라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보태고, 수정하다 보니
저녁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오늘의 초대가수는 '노라조'


리치리치 페스티벌을 진행한 4일 동안 (10/09 ~ 10/12)

매일 같이 3팀 이상 초대가수들이 왔었는데

여기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어 4일 동안 한 팀씩만 기억에 남았다.


첫날엔 10cm, 둘째날엔 노라조, 셋째날엔 비와이, 넷째날엔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를 꾸몄다.


일을 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초대 가수 무대를 구경할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지만

저녁을 함께 먹은 멤버 타라 / 또치 / 썸머는 노라조는 봐야겠다며 샤브샤브로 배를 불리자마자 얼른 몸을 일으켰고,


나 역시 주말부터 일할 동생이 퇴근 후 의령으로 넘어오고 있어 함께 자리를 떴다.



동생을 기다리며

못다 본 축제 현장 기웃거리기.


해가 져서 어두워졌지만 축제 현장은 수 많은 전구들로 통행에 무리 없게 밝았고,

그 불빛에 기대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푸드트럭에서 구매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먹고 있었다.


나도 저 사람들에 끼여 맥주 한 잔 먹고 싶다 생각이 들었지만 어제도 음주를 했으니 아쉬운 마음을 꾹 누르기로 했다.


주말엔 더 많은 사람들이 올 테고 그럼 정신 없이 바쁠테니까 오늘의 체력은 이만 아껴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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