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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13)

13.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한다는 건

by 이양고


1.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축제의 시작


축제 첫날의 날씨는 맑음.

머니플레이는 12시부터 시작이지만

미리 가서 세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홍의별곡에서 일찍 모이기로 했다.


축제 첫날이라 그런걸까.

마음이 묘하게 들뜨는 기분.


들뜨는 기분으로 짐을 다 싣고 축제 장소로 가기 전 본

논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가득 물들어 있다.

수확의 계절다운 빛깔.





축제 장소 도착!

리치리치 페스티벌은 의령군민공원에서 진행됐는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저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이

어느새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공간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평소엔 조용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축제 장소로 바뀐다는 것.

그건 어떤 공간이냐가 아니라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 같았다.





의령에는 특산품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의령을 대표하는 건 단연 ‘망개떡’이다.


그런 망개떡을 캐릭터화 해서 ‘팥꼬 프렌즈’를 2023년 제작했는데,

그 팥꼬 프렌즈가 리치리치 페스티벌에서도 대활약을 했다.


처음에는 별 특징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보다보니 정감 가는 캐릭터...

둥글둥글하고 선하게 생긴 얼굴이라 그런지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수많은 부스를 지나 도착한 우리 부스.

리치리치 페스티벌 총괄 운영부스 바로 옆에 있어서,

부스 뒤 공간이 꽤 넓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인원과 짐이 많아 공간을 넉넉하게 이용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머니플레이 운영부스에만 3명이 필요했고,

미니 부스마다 사고파는 인원이 각 2명씩 들어가 최소 13명이 필요했다.


그 인원들이 한 눈에 보이도록 우리는 노란색 하와이안 셔츠를 맞춰입었다.

처음 단체복을 정할 때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리치리치 페스티벌의 주된 색인 노란색을 잘 담은 하와이안 셔츠를 선택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리치리치 페스티벌을 알리는 스카이 배너.

진주에서 오래 살았던 나는 매년 10월마다 열리는 유등축제가 시작될 때면

저런 배너를 보면서 어느새 10월이구나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 스카이 배너를 의령에서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4일 동안 잘 해내보자!





12시부터 18시까지 진행되는 머니플레이.

손님들은 5천 리치를 목표 금액까지 불려야 했기 때문에

게임은 쉼 없이 이어졌다.


때문에 우리도 쉴 틈 없이 일해야 했고,

중간에 밥 먹을 시간이 없어 12시 전에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오늘의 도시락은 본도시락.

야외 일정이 있을 때면 먹곤 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 여전히 맛에 비해 비싼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시작해요?“를 열 번쯤 들었을까.

12시가 되어 게임이 시작되자

결제 전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한 표정이던 사람들이

다섯개의 상점(=미니부스)를 돌아다니며 신난 얼굴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 또치, 썸머는 머니 플레이 운영부스에서

결제, 게임 설명, 상품 수령을 돌아가며 맡았다.


중간중간 미니부스들이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주거나

상황을 살펴야 해서 1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땀으로 머리칼이 젖을 정도였다.


하지만 축제의 신나는 분위기에 젖어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일을 하는데,

한 꼬마 손님이 작은 사탕 두개를 선물로 주었다.


그 꼬마 손님에게 사탕이 얼마나 큰 선물일지 알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네는 사탕에 감동해 눈물이 날뻔 했다.



연휴의 마지막날이자

축제의 첫날이라 그런걸까.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

미니부스에 딜레이가 생겼고

그 바람에 뜨거운 가을 햇볕에서 땀을 흘리는

고객의 원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중간중간 결제를 멈추고

미니부스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중재했고,

망고가 가서 미니부스를 돕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딜레이가 해결되곤 했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을 흘러 18시.

마지막 손님들이 다 나가고 나서야 오늘의 머니플레이 종료.

우리는 열심히 일한 기념으로 ‘화정이네 쌀집’ 부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머니플레이 운영부스에 있느라

다른 부스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는데,

다 끝나고 나서야 2만원 이상 결제한 영수증을 내면

선물로 바꿔주는 부스에 갈 수 있었다.


우리 셋은 본도시락을 결제한 영수증을 가지고 가서

각자 2장씩 쿠폰을 받았고

나는 패브릭 퍼퓸과 초콜릿을, 썸머와 또치는 휴지 등을 받아서 돌아왔다.





해가 지고 나서야 제대로 돌아보는 축제 현장.

타코야끼, 스테이크, 음료 등을 파는 푸드트럭도 있고

의령에서 소원을 빌고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다는

‘김보’ 아조시의 소시지도 구경했다.


일을 하느라 다른 부스들을 둘러볼 틈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알차게 준비된 모습을 보고

이런 곳에서 나도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축제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의 얼굴을 매순간 마주한다는 것.

그들에게 작은 좋은 기억이라도 선사하기 위해 나는 운영 부스에 서서 자주 웃었고,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그들 또한 내 친절에 함께 웃고, 같이 기뻐해주었다.


축제에서 일한다는 건 내내 서 있고 뛰어다니느라 몸은 바쁘지만,

웃는 사람들과 즐거운 사람들을 보며 마음은 한없이 기쁜 일인가 보다.





2. 우리, 내일은 더 힘내보자




12시 전에 가벼운 점심을 먹고

과자를 포함한 이것저것 주전부리는 했으나

내내 뛰어다니느라 밥을 먹은 기억이 휘발된 듯 배가 고프다.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에 젖은 몰골로 우리가 찾은 곳은 ‘남다른 꽃대패’.

예전에 한 번 와본 곳이었는데,

배부르게 먹을 식당을 찾다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됐다.

김치와 콩나물무침, 무말랭이까지 다 맛있어서 고기가 질리지 않고 술술 넘어갔다.


힘들게 일한 우리를 위해 건배를 외치고,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맛있게 먹고 나가는 길에 본 고양이 그릇들.

연고도 없는 길고양이일텐데

이렇게 예쁜 밥그릇까지 준비해 정성스럽게

밥을 챙겨주는 마음씨가 어여쁘다.


길고양이들도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시는 사장님도

건강하시길, 행복하시길.




성공적인 첫 시작을 마쳤으니, 기쁜 마음으로 파티를 열어볼까.

우리는 고기로 배가 잔뜩 부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의별곡 사무실로 돌아와 2차를 즐겼다.


2차의 메뉴는 우리의 요리사 망고가 만들어준 새우 듬뿍 감바스와,

키위를 안주로 곁들인 맥주였다.

며칠 동안 포장 작업을 하느라 어깨와 팔이 아팠고,

오늘은 하루 종일 뛰어다녀 다리까지 아팠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고 느낀 건 아마 성공적인 개시의

도파민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피곤한 것도 잊은 채 맥주를 계속 들이켰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퇴근한 타라도 합류했고, 지나가다 들렀다는 국수도 왔다.

그야말로 의령의 청춘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듯한 밤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 리스트도 공유하고

쓸데 없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밤 늦게까지 그렇게 첫 시작의 도파민에 젖어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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