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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12)

12. 축제 하루 전, 우리가 해야 하는 일

by 이양고


1. 다들 연휴 잘 보냈나요


의령에서 동생 차를 타고 집으로 갈 때만 해도 추석 연휴가 꽤 길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쉬고 오니 뭘 했는지 딱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후루룩 지나가버렸다.


추석을 쉬고 온 우리는 9일부터 시작되는 머니플레이 부스를 준비하기 위해 8일 14시부터 모이기로 했다.


전날 밤 잠을 설친 탓에 피곤했지만 (복선)

오늘 끝내야 하는 일과 준비하고 챙겨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포장 작업을 시작하기 전, 대표님이 맥주를 한잔 마시며 일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우리는 추석의 여흥을 즐기기 위해 맥주를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우리가 오늘 모두 끝내야 할 일 중 첫번째는,

목표 달성한 사람들에게 나갈 선물 파우치를 완성하는 일.


목표는 3000개.

흰색 파우치 안에 5만 리치와 물티슈, 젤리를 넣는 작업을

오늘 중으로 끝내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가 열심히 파우치를 포장하는 동안

망고와 만듀는 리치 파우치 안에 들어갈 리치를 열심히 넣었다.


우리는 이미 다른 곳에서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주지 않아도 손이 필요한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의령 한달살기를 하며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여기 와서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아도 되나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오늘은 특히 그 궁합이 더 잘 맞아, 일이 한결 빠르게 진행됐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나와 썸머가 흰색 파우치를 열어 물티슈를 넣으면,

마지막에 앉은 또치가 젤리를 넣어 파우치를 닫고 박스에 넣는 식으로 분업했다.


글로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중간중간 물티슈 박스를 가져와 뜯어야 했고,

완성된 파우치를 담을 박스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한 명은 눈치껏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고정된 역할 없이 돌아가며 박스를 만들고,

만들어진 박스를 치우며 몸을 움직였다.


말 그대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한참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1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포장 작업이 다 마무리 되지 않아

쉼 없이 작업을 하는데,

설치 되고 있는 부스를 확인 해야 했고

여러모로 읍내에 나가야만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저녁을 먹고 다시 와서 마무리 하자는 생각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망고의 차에서 내리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가공사’라는 곳에서

방금 볶은 깨를 손보고 계셨다.


예전에 내가 자랐던 곳에도 이런 방앗간이 있었다.

그 방앗간은 터미널 근처에 있어서,

하교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맴돌곤 했다.


냄새라는 건 참 신기하다.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아주 옛날의 장면들도,

그 냄새 하나로 그때 그 시절이 눈앞에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오늘 우리의 저녁은 감자탕.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은 뒤

노동을 하느라 힘을 많이 쓴 우리에게 안성맞춤 메뉴였다.


우리는 오래 굶은 사람처럼 배고픈 얼굴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감자탕을 바라보다가

맛있는 냄새가 확 퍼지며 끓어 오르자 일제히 먹기 시작했다.


그냥 먹는 감자탕도 맛있지만

확실히, 다 같이, 노동 후에 먹는 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건 감자탕 집에 있던 소주병!

무슨 이벤트를 진행 중인 것 같았는데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술을 마시지 않았고

그 때문에 무슨 이벤트인지조차 전해 듣지 못했다.





2. 다들 리치리치 페스티벌에 놀러오세요



저녁을 먹고 들른 리치리치 축제 현장.

멀리서 무대 위 리허설 소리가 들려오고,

이미 불이 밝혀진 부스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묘하게 들떴다.


그때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이 어찌나 밝고 환한지, 처음엔 축제의 장식물인 줄 알았다.

달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기념하듯 사진으로 남겼다.






저번에 망고, 만듀, 또치와 함께 밤산책을 나왔을 때도 봤던

리치리치 페스티벌의 마스코트들.

그땐 불이 안 켜져있었는데 오늘은 불이 켜져 좀 더 환하게 볼 수 있었다.



이건 우리 ‘머니 플레이‘의 상회 부스!

어떻게 제작될지 피드백도 주고 받았던 디자인인데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더 예뻐보여 신났다.


드디어 시작이다.

의령에 와서 내내 준비해왔던 머니 플레이가,

내일 드디어 손님들 앞에서 선보이게 된다.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이 게임을

손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고

궁금한 만큼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어떤 문구를 쓸지 고민했던 입간판도 직접 세워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후루룩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잘될까, 잘 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왔던 일이

이제 정말 내일이면 오픈된다.


대표님을 포함해 망고, 만듀, 썸머, 나, 또치까지

모두 함께 모여 완전체로 부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 앞으로 4일 동안 다치지 말고, 열심히 즐겁게 잘 해봅시다!”



부스의 대략적인 위치를 잡고,

입간판을 만들어 둔 뒤 우리가 온 곳은 ‘풀마트’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살 요량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저녁을 너무 든든하게 먹은 탓에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고,

내일이면 축제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술을 먹고 싶지도 않아서 우리의 장보기는 시시하게 끝이 났다.



장을 본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우리.

우리는 못다한 포장을 다시 시작했다.


열심히 분업을 해서 포장 작업을 하고,

옆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던 물티슈 박스를 옮기고...


몸에 무리가 간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일을 하다 보니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잠깐 누워서 쉬면 될 것 같은 마음에 숙소에 가서

긴팔을 반팔로 갈아입고 숨을 돌리는데

코피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무리를 하면 코피가 그걸 증명하듯 한바탕 쏟아졌는데

아무래도 잠도 못 자고 무거운 것을 반복해서 들면서 기압이 찬 모양이었다.



코피가 멎으면 다시 가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휴지를 풀어 코를 틀어막았지만 쉽게 멎질 않았다.


이거 무리하면 그토록 기대하던 축제 첫날부터 조지겠는데...

싶은 마음으로 사무실에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니

다들 코피가 났으면 얼른 들어가서 쉬라며 등을 떠밀었다.


다들 늦은 시간까지 포장 작업을 할 게 뻔한데

먼저 돌아가려니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축제를 무사히 마무리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얼른 들어가서 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피를 흘렸으니 뭐라도 채워넣어야겠다 싶어

풀마트에 들렀을 때 사온 빈츠를 몇 개 집어가지고는

먹으면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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