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취미는 가난의 반대편에 있어서(2)

배가 불러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

by 이양고

개발 교육을 하며 느꼈던 굴욕적인 기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되었다.


개발 교육은 한 달에 고작 50만 원을 주는 일이었지만, 회사는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이익을 내야 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교육을 받을 때보다 몇 배의 돈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회사가 내게 바라는 능력은 컸지만, 나는 회사가 바라는 만큼의 능력치를 보유하지 못한 통근러였다. 회사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골치 아픈 신입사원이었으리라.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스펀지처럼 많은 것을 흡수했다. 선배들에게 묻고 또 물어가며 회사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배우려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와중에도 ‘글쓰기’에 대한 갈증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개발을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 말고, 자재 관리를 위한 SQL 언어 말고, 내 일상과 내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그런 ‘글쓰기’에 대한 갈증.



평일 다섯 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던 나는 그 갈증을 해소하고자 토요일 오전에 글쓰기 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가입했던 모임이 바로 ‘써요’였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 1년간 공백이 있었다는 말이다. 6개월 간 개발 공부를 하고, 그 직후 바로 입사했던 1년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를 넣기에 급급했다. 도무지 해소되지 않던 갈증, 그 무엇을 해도 허전했던 공허가 ‘글쓰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모임에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게 되고 나서였다.



지금 내게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답할 것이 많다. 주말엔 근교로 드라이브 가는 것도 좋아하고, 시집을 사서 필사하는 것도 좋아하며,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돌려보는 것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게 많은 나는 취미 부자이고, 그 질문을 받았을 때의 시기마다 답변이 달라지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취미는 내가 밥벌이를 잘 해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취준생 때, 교육생 때는 내게 그 누구도 취미를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업무, 어떤 직종,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말을 주로 들었다. 때에 따라 다르게 대답을 하고 나면 이어지는 말은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내 노력하고 있었으나 이뤄낸 게 없어 불안했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있냐’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예술은 배고픈 일이다.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수저가 아름답지 않듯이, 매일 신고 나가는 신발이 유일하지 않듯이.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더 처절하다. 배가 고플수록, 더 아름답다.



반대로 취미는 가장 배부른 일이다. 배가 불러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취미를 물어보지 않는다. 내일 당장 먹을 밥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취미를 묻는 바보는 없다. 허기진 사람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먹을 거나 달라’고 대답할 것이다. 큰 성과를 내지 못해 회사에서 잘릴까 봐 두려워하던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도,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어야 해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해서 선택한 일을 하면서도 내내 갈증이 생겼던 ‘글쓰기’는 결국 밥벌이가 아니라면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취미는 가난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내가 지금 모임을 할 수 있는 것도, 다양한 취미를 가진 것도 내일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 걸 안다. 그리고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던 그 시기의 나는 내가 이렇게 되리란 걸 한 톨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물속에 잠긴 채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시기의 내가 그렇게 우울해하지 않았어도 결국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게 되리라는 걸 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그냥, 매시간 불안함을 집어먹고 내내 배고파하던 그 시기의 나에게, 그 시기의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런 말, 정말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이 정말 다 지나가더라고. 당신이 노력하고 있는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자신을 믿어보라고.


좌절과 우울 속에 잠겨 울어도 짠맛이 안 나던 그 시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당신들에게는 조금 더 빨리, 꼭,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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