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취미는 가난의 반대편에 있어서(1)

아무도 취미를 묻지 않던 시절에

by 이양고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적금처럼 보상이 올 거라 믿는 나날이었다. 어쩌면 젊은 날의 패기였을지도 모를, 청춘의 착각이자 오만일지도 모를 그런 시기들이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착각. 어느 날엔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영화 속 근사한 인물들처럼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간들. 그 시간은 달콤했고, 배불렀다. 냉정한 현실 속 그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걸 깨닫기 전까진.



어느 날 갑자기 전염병이 돌았고, 그건 내 특별한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일정 시간을 채우면 일정 금액을 주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소멸하다시피 했고, 나는 통장 잔고를 보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오늘 식사를 하며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삶. 겪어보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삶.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예술을 한다는 건, 적어도 전염병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예술은 빛나지 않는다고.



처참하고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예술과는 정반대의 어느 직업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은 없었지만,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그 고양이 이전에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있었다. 엄청난 부자인 소수의 그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모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시기에 가장 아프게 깨달았다. 예술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자본은 끼니를 걱정하던 그 시기의 내게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프로그래밍’이었다.



지식은 정말 조금도 없었다. 단지 학교에서 개발 교육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심지어 교육만 들어도 50만 원을 준다는 말에 혹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불안했기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럴듯하게 지원서를 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교육에 뛰어들었다. 그 선택이 옳은지 긴가민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좋은 기회였다. 늘 국어와만 친했던 나는 글쓰기 외의 모든 일은 스쳐 지나가는 일이라 여겼다. 모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결국 작가가 될 거라 믿었기 때문에. 그 태도는 어딘가 모순적이어서 아르바이트 중 만나는 이들에게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작가’가 될 거니까, 너희와 다르다는 같잖은 태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고 믿었던 내게 ‘개발 공부’는 가치관을 넘어 태도까지 깨부수는 경험이었다. 고고한 예술이 밥 먹여주냐는 싸늘한 태도 앞에서 나는 처참히 녹아내렸다. 개발 공부는 처음이었지만,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책을 보면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는지는 금방 깨달았다.

분명 한국어로 말하는데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수업이 지속되었다. 오늘은 꼭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노트에 모든 말을 적으려 했으나, 적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쓰디쓴 패배자의 기분이었다. 교육을 들으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학생들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흰 메모장을 띄우고 앉아있는 나는 그저 바보 같았다.



공대 출신들에게 인문대 학생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교수 중에 학식 먹는 사람은 인문대 교수들밖에 없어.
그 사람들은 돈을 못 벌거든."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던 교수의 말이었다. 나는 실제로 국문과를 다니며 교수님들이 학식을 드시는 걸 자주 봤기에, 괜히 욱했다. 그들의 잣대가 ‘돈’일지는 몰라도 국문과 학생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공부했고, 교수님들 또한 자긍심을 갖고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공대 교수라는 이유로 타 학과 교수님을 욕보여도 되는 건가 싶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 교육을 담당하던 교수에게 찾아가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자유지만, 적어도 인문대 학생들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담당 교수는 그 뜻이 아니었을 거라며 나를 달랬지만, 얼굴이 붉어진 채 화를 내는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했다. 그곳에서 국문과 학생인 나는 이방인이었다.




매일 패배자의 기분으로 교육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독기가 차올랐다. 그까짓 거, 무엇이든 해보이겠다는 마음. 물러설 곳도 없었다. 마음을 먹으면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기본 지식이 없어 간단한 교육으로도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나는, 직관적인 결과물이 필요했고,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한 달 만에 자격증을 땄고, 그 다음 달에도 또 하나를 땄다. 자격증이 하루아침에 개발 실력을 높여주진 않았지만,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방향은 잡아주었다. 그렇게 하나씩 따나가자 비로소 패배자의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나를 구원하는 건 나의 노력뿐이라는 걸 실감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교육을 끝까지 들었고, 결과물은 엉망이었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6개월 교육을 통해 값진 경험들을 얻었고, 개발 회사에 입사해 3개월 간의 인턴 기간을 거쳐 실무에 투입되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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