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외로울 때 꺼내읽던 도시락 같은 두 권의 시집
자꾸 자꾸 시집을 사러 다니던 날들이 있었다. 마음이 외로울 때나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 그랬다. 밖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때도 그랬고, 마지막 발악인 듯 새빨개진 얼굴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나무를 볼 때도 그랬다. 자꾸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곁에는 사람이 없었고, 마음속에는 말이 넘쳐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시집을 샀다.
나에게 서점은 방앗간 같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 역시 서점을 보면 늘 마음이 쏠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독립서점은 오아시스 같았고,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대형서점은 딱히 볼 일이 없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들르곤 했다. 진열대 위에 나란히 놓여,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반짝이는 책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올 수 있지?’ 싶어 경이롭다가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점은 나를 다그치게 하면서도, 좋은 가르침을 건네주는 공간이었다.
예전엔 주로 소설을 사 모았다. 한 인물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서사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소설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만큼 수집하는 것도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어떤 책은 단 하나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 샀고, 또 어떤 책은 그 자리에 서서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도저히 덮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사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 모은 책들이 언젠가 내 방 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우게 되기를 바랐다. 그게 나만의 소소한 목표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소설보다 시가 더 좋아졌던 것은. 인물들의 복잡한 서사가 머리에, 마음에 잘 닿지 않던 날들이 계속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마음에 볕이 들지 않는 것처럼 축축한 나날이 이어졌고, 도무지 좋은 날이 올 것 같지 않던 어느 날, 우연히 펼친 시집 한 권이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건넸다.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가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수필처럼 느껴졌고, 어느새 시는 더 가까운 것이 되었다. 에세이보다 더 내밀하고, 일기보다 더 자기고백적인 글. 그렇게 시는, 내가 몰랐던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스며들었다.
여러 권의 시집을 사고, 읽고, 필사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좋아하여 가방에 넣고 다닌 시집이 두 권 있다.
허연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전영관의 『슬픔도 태도가 된다』
시집을 사 모으던 그 시절, 나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리고 시를 좋아하게 된 일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도 몰랐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읽은 시는 결국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는 걸.
함축된 표현에서 정제된 감정을 배웠고,
조심스레 써 내려간 문장들이 내 표현력을 길러주었으며,
정성스레 눌러쓴 필사들이 결국엔 새로운 모임으로 이어졌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시집 한 권이, 질퍽이는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지금도 마음은 여전히 윤택하지 않다.
아마 앞으로도 내내 이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이 질퍽거려도,
혹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마음속에 가뭄이 일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건 끝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적당히 보송보송한 날이 다시 찾아올 거라는 믿음.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견디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