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나물이를 처음 보던 날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첫째 고양이 콩이와 둘째 고양이 나물이다. 둘을 함께 부르면 ‘콩나물’이 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이 콩나물이어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첫째에게는 흔한 이름인 ‘콩이’를 붙였다가 후회가 남아, 둘째에게는 아무도 쓰지 않을 법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센 발음’이 있어야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다고 하여 걱정했지만, 나물이는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도 내 목소리에 곧잘 반응했다.
콩이는 가정에서 태어난 고양이로, 동생이 데려왔다. 어느 날 동생이 SNS에서 본 ‘콩이’ 사진을 보여주며, 다섯 마리 새끼 고양이 중 한 마리만 남았으니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막대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며, 사랑하게 될 것이고 결국 이별하게 될 텐데 그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화까지 내며 거절했다.
평소 내 말이라면 뭐든 따르던 동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기분이 좋아 보일 때마다, 혹은 무언가를 잘해낸 날이면 슬그머니 사진을 다시 꺼내 보이며,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데려오게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만 보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거절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꼬리를 말고 얌전히 앉아 있는 새끼 고양이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고,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콩이는 어미 고양이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에 도도한 면이 있었다. 장난감으로 열심히 놀아줘도 금세 흥미를 잃었고, 사람의 손길을 특별히 원하지도 않았다. 본가에서 키우던 마당 고양이도 그런 식으로 지냈기에, 나는 원래 고양이라는 동물은 사람이 곁에만 있어도 손길을 바라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콩이는 나에게만 유독 냉정했다. 화장실을 치워주고 이부자리도 함께 쓰는 동생에게는 머리를 비비고 다리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는 등 애교가 많았다. 반면 고양이 털이 날린다며 내 방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거리부터 둔 나에게는 서먹함을 느끼는 듯했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길고양이에게도 마음이 쓰이는데, 가족이 된 고양이라면 오죽할까 싶어 처음부터 애써 거리를 두려 했고, 콩이도 그런 내 태도에 반응하듯 선을 그었다. 나는 그저 적당한 관심과 애정만을 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고양이 나물이를 만났다. 산책로로 이용되는 폐기찻길에서 나무를 타며 혼자 잘 놀고 있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길고양이로 태어난 탓인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꼬리 끝이 낙인처럼 휘어 있었다. 산책하던 사람들은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잠시 구경하다 자리를 떴다. 나 역시 어미나 형제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는 돌아섰다.
며칠 뒤, 동생들과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지난번 그 고양이가 있을까 싶어 눈을 돌렸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며칠 사이 더욱 말라 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자, 고양이는 낯을 가리지 않고 우리 셋에게 차례로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2편에서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