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가 사랑을 받으면 생기는 일
(1편에서 이어서..)
며칠 뒤, 동생들과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지난번 그 고양이가 있을까 싶어 눈을 돌렸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며칠 사이 더욱 말라 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자, 고양이는 낯을 가리지 않고 우리 셋에게 차례로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확실한 건, 어미와도 형제들과도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에게 잠시 곁에 있어 달라 부탁한 뒤, 나는 간식과 물을 가져오려고 집으로 뛰었다. 돌아왔을 때, 나물이는 둘째 동생의 다리에 기대 골골송을 부르고 있었다. 동생은 난감한 얼굴로 “언니, 어떡해?”라고 물었고, 나는 “우선 밥이라도 주자”고 말했다. 내가 오자 나물이는 동생의 다리에서 내려와 허겁지겁 물과 간식을 먹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 건지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처음에는 밥만 챙겨주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우리가 걷기 시작하자 따라오기 시작했다. 발을 구르며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잠시뿐, 어느새 다시 졸졸 따라왔다. 이게 바로 간택인가 싶었다. 둘째 고양이를 들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 작은 생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약속했다. 집까지 따라오면 키우자고.
두 손바닥을 합친 것보다도 작았던 나물이는 15분 거리를 끝까지 졸졸 따라왔다.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놀라 화들짝 뛰었고, 주차된 차 밑으로 몸을 숨겼다 다시 나와 우리를 따라왔다. 그 작은 발걸음에 내 심장은 벅차올랐다. 차에 치일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정말 끝까지 따라오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물이는 끝내 우리 집 문 앞까지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나물이와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나물이는 길 생활을 했던 탓인지 두려움이 많았다. 특히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무서워했다. 수염 끝이 탄 듯 꼬불꼬불했는데, 우리가 추측하기로는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화가 치밀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고 싶을 만큼. 콩이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이건 분명 사랑이었다. 첫날부터, 그랬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나물이는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다. “나물아–” 하고 부르며 손을 내밀면 총총 달려와 얼굴을 비비고, “앵–” 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울며 나를 반긴다. 나무를 타며 홀로 놀던 고양이는 이제 콩이와 함께 따뜻한 집에서 뒹굴며 여유를 부린다. 참 다행이다.
세상에서 나물이가 제일 좋다. 콩이가 들으면 서운해할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사실이니까. 나물이를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을까?’ 싶어 쓰다듬어주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사랑받고 있다는 건 아는 듯 골골송을 부르며 눈인사를 한다.
마음으로 낳고 사랑으로 키워서일까. 나물이는 이제 당당한 집고양이가 되어 털에도, 태도에도, 두 눈에도 윤기가 흐른다. 같은 간식을 연달아 먹지 않아 다양한 종류를 준비해두고, 아침에 갈아준 물도 저녁이면 다시 신선한 것으로 바꿔줘야만 마신다. 화장실은 아침저녁으로 치워주고, 빗질도 수시로 해준다.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돌보고 있다.
사랑받은 고양이는 티가 난다.
얼굴에 여유가 흐르고, 털에 윤기가 나며,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린다. 사랑이란 감정은 받는 이도 주는 이도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 같다. 나물이를 키운 뒤, 나 역시 더 자주 웃고 더 자주 즐겁다. 사랑이란 큰 재산은 든든한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내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준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괜찮다’는 감정은 사랑받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걸, 나물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길거리 생활로 상처받은 고양이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면 변한다. 지금 내 다리 옆에서 꾹꾹이를 하는 나물이가 그렇다. 그래서 현재 상처받고 있는 누군가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상처받는 건 당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저 길 위의 삶이 고됐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제발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누가 당신을 미워하고 해코지를 해도, 언제 어디서든 사랑받은 고양이처럼 당당히 살아가라고. 나물이를 키우며 사랑을 알게 된 나처럼, 나를 만나 사랑받게 된 나물이처럼, 오늘 밤 어딘가에서 상처받아 울고 있을 모든 이들이 부디, 사랑받은 고양이처럼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