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졸업하던 해는 내 삶이 흔들리던 시간이었다. 그 흔들림은 무겁고 커다랗게 밀려들었다. 삼청동에서 회사는 이사를 했다. 논문을 써야 했고, 결혼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1월에 결혼을 했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졸업식이 이어졌다. 숨 돌릴 틈 없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게 속에서 나는 행복했다.
행복이란, 아마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그때의 시간 때문이었을까? 결혼은 내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내와 함께 맞이한 환경의 변화는 힘든 나날 속에서도 나를 견디게 했다. 새벽의 통근 길, 오후의 지친 걸음에도 그녀는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신혼집을 구하며 아내의 직장과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게는 하루 4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하는 삶이 되었다. 금요일이면 퇴근길이 더 길어졌다. 차 안에 갇힌 시간이 3시간을 넘는 날도 있었다.
논문을 쓰며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그린디자인을 진정으로 실현하려면 건축디자인이나 제품디자인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길은 멀고 험했다.
회사를 다니며 이직을 준비했다. 번아웃은 깊었다. 삼청동에서 쏟아낸 열정과 논문, 결혼 준비가 모두 내게로 돌아와 피로라는 이름으로 몸을 짓눌렀다. 그런데도 나는 쉬지 않았다.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퇴근 후에도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제품디자인 경력이 없던 나는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하나, 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내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입사 자체가 벽처럼 가로막혀 있었다. 그런 날들은 어둠 속을 걸으며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 아내가 곁에 없었다면 나는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곁에 있었다.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니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국내 최대 필기구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처음이었다. 수많은 서류 탈락 끝에 처음으로 온 연락이었다. 연락만으로도 가슴이 뛰었고, 동시에 걱정이 몰려왔다.
“괜찮을까?”
“내 포트폴리오로 충분할까?”
나는 면접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다. 준비라는 것도 막연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면접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