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건물은 낯설었다. 본사가 용인으로 이사 왔다고 들었다. 사옥을 새로 지었다 했지만, 아직은 입주 전이었다. 임대한 건물 하나에 임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를 면접 안내문에서 읽었다. 건물 입구에 서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고요하고 텅 빈 기운이 감돌았다.
다행히 집에서는 멀지 않았다. 예전에 겪었던 두 시간 짜리 출퇴근의 지옥은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아니, 일할 수 있다면.
면접관은 눈매가 짙은 여성이었다.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강렬한 사람.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 말끔한 외모와 예리한 분위기. 마치 드라마 속 면접관처럼 멋지게 생긴 사람이었다.
질문은 예상과 달랐다. 대학원에서의 경험, 친환경 디자인, 지속 가능성. 그녀는 내가 걸어온 길을 차분히 캐물었다. 그러나 제품디자인 자체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질문이 끝나갈 즈음, 그녀가 말을 꺼냈다. 새로운 프로젝트라고 했다. 친환경 제품 개발이라고. 그제야 나는 퍼즐을 맞췄다. 내가 왜 이 자리에 불려왔는지 이해가 됐다.
“솔직히 고민이 됩니다.” 그녀가 말했다.
“경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봤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조용히 무너졌다. 그녀의 고민은 이해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대한 내 마음은 갈라진 땅속으로 끝없이 흘러 들어갔다. 하고 싶었다. 간절히. 그러나 현실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면접 도중,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명동 한복판, 로드샵 브랜드들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던 시절이었다.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화려한 매출로 서로를 자극했다. 그곳에 교수님이 계셨다. 친환경 컨설팅을 하던 분이었다. 어느 날, 국내 최대 화장품 기업이 그에게 의뢰를 맡겼다.
그들은 새로운 로드샵 브랜드를 만들고 있었다. 영국의 ‘더 바디샵’을 모방한 브랜드였다. 광고 모델은 송혜교. 그러나 매출은 저조했다. 5위. 회사 입장에선 치욕스러운 성적이었다.
처음 그들의 본사를 찾았을 때, 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마케팅 팀장과 제품 본부장. 친환경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의 패키지로는 진정성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날 두 사람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간절함과 믿음이 엉켜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들었고,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친 뒤, 그 브랜드는 대대적인 개편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브랜딩도, 매장도, 패키지도.
리뉴얼 된 브랜드는 그 이후로 10년 넘게 로드샵 1위를 지켰다. 국내 최초로 친환경 컨셉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 사례. 나는 그 과정에 함께했던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면접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의 과거와 그녀의 질문이 하나로 얽혔다.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전화가 왔다. 나는 그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