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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Nov 17. 2024

기술을 통한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며


혹평을 받았던 중간 평가 이후, 선배들은 나를 위로하며 다른 교수님께 조언을 청해보라고 권해주었다.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진 분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선배들이 추천한 다른 한 분은 우리 과의 논문 심사를 늘 맡아 주셨던 분 이자,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로 필드에서 활발히 활동하셨던 교수님 이셨다. 우리 교수님을 스카우트해 학교로 데려 오신 분이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우리 교수님보다 한 해 선배로, 영국 RCA 유학을 다녀오신 이 교수님은 디자이너 선배라기 보다는 제자들을 끊임없이 보살피는 따뜻한 스승님에 가까웠다. 날카로운 외모와는 다르게 늘 제자들에게 따뜻한 분이셨고, 언제나 우리 과와 우리 교수님을 지지하셨다. 디자인의 방향은 그린디자인 이어야 한다고 믿으셨다.


졸업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분을 찾아가 논문 초안을 보여드렸다. 교수님은 한 장씩 넘기며 천천히 읽어 가시더니, 갑자기 말씀하셨다.


“디자인을 이렇게 잘 해놓고 글은 왜 이렇게 밖에 못 썼나!”


칭찬과 질책이 섞인 말씀에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교수님이 내용을 공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의 논문을 깊이 이해하고, 다른 시각으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신 분은 그분이 처음이었다. 교수님은 고등학생을 가르치듯 논문의 구성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고, 글을 다시 정리해 오라며 숙제를 내주셨다.


다음 날 다시 찾아간 나는 수정한 글을 교수님께 드렸다. 교수님은 꼼꼼히 읽어 주시고, 내 논문이 교수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도 덧붙이셨다. 그분을 통해 논문 작성과 글 쓰는 법, 발표의 기초를 배운 그 시간이 내겐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지나온 대학 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과제를 제대로 쓴 적이 있었나, 학점은 어떻게 받았던 걸까,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논문은 통과했다. 교수님은 여전히 주제에 의구심을 가지셨지만, 다른 교수님들의 설득과 필요성에 대한 의견 덕에 승인해 주셨다.


내 논문의 주제는 본질적으로 단순했다. 오늘날 로봇 청소기처럼, 화분이 로봇으로 기능하는 아이디어였다. 공기 정화용 식물을 작은 모종으로 로봇에 심으면, 로봇이 방 안에서 식물이 자라기 가장 좋은 환경을 찾아 움직이고, 식물에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수분도 주기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이다. 단순히 식물이 자라게 돕는 역할을 넘어서, 애완동물처럼 사용자와 상호작용하고, 음악을 함께 들으며 같은 공간에서 사람과 식물이 함께 힐링 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었다. 식물이 어느 정도 자라면, ‘분갈이’ 시기도 알려주게 된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로봇이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물의 재배를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경험으로 변모 시키고, 기계적인 로봇의 이질감을 줄이면서 저탄소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성을 고민한 결과였다.


최근에 AI가 탑재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중 앞에서 시연되는 장면을 보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움과 공포였다. 로봇이 사물을 알아보고, 알맞은 힘으로 계란을 잡고, 칼로 과일을 써는 장면들,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두려움에 가까웠다. AI가 더 발전한 미래가 도래할 가능성은 매우 높았고, 심지어 일론 머스크는 그 로봇의 판매 가격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로봇이 인간과 함께하는 미래에서, 환경적이고 감성적인 고려는 당연히 필요한 것 아닐까.


이 시절의 고민들이 내 디자인 철학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이후 내가 경험한 많은 일들, 겪어온 어려움과 힘든 시간들, 그 모든 것은 이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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