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이 흘렀다.
그 날의 발표 이후, 친환경 프로젝트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팀장님께 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
그 대답은 나를 더 이상 어디에도 데려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의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매출 하락은 오래된 병처럼 회사 곳곳을 파고들었고,
모두의 눈은 단기적인 매출을 향해 있었다.
장기적인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아니, 어쩌면 팀장님과 대표이사 뿐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매출이 떨어지면, 그 비난은 곧 제품과 디자인을 향했다.
특히 영업팀의 말은 더 거칠었다.
파트장님은 그 모든 말을 가만히 받아냈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내 할 일을 찾았다.
소규모 재생플라스틱 업체들과 접촉하고, 구매팀과 품질경영팀을 통해 테스트를 이어갔다.
그 당시의 재생플라스틱은 거칠고 불완전했다.
불순물이 많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제품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전 회사들은 블랙컬러 외장 부품에 이를 활용해 원가를 줄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회사들은 수급조차 어려웠다.
외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내부에서 수거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을 계속 피력했다.
그러나 부서 간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높은 벽이었다.
필요하다는 공감은 있었으나, 누구도 첫 걸음을 내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파트장님이 떠나기로 했다.
둘째 아이의 출산과 육아가 이유였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떠날 준비를 했고,
그 준비는 내게 모든 것을 맡기는 과정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한곳에 바친 사람이 남긴 기록은
방대했다. 그 자료 안에는 그녀의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나를 위해 압축했고,
최대한 쓰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
마지막까지도 나를 배려하며,
타 부서 동료들에게 당부를 남겼다.
그녀가 떠난 후, 우리 팀도 흩어졌다.
팀장님은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우리 파트는 마케팅팀에 흡수되었다.
마케팅 팀장님은 제품보다는 브랜드에 익숙한 분이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나를 팀장처럼 대우해 주었다.
회의 자리마다 나를 데리고 다녔고, 결국 책임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디자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외면 받았던 제품들, 제대로 팔리지 않았던 제품들을 꺼냈다.
그 중에서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선별했다.
매일 수정안을 논의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냈다.
마침내 우리는 두 개의 제품을 선택했다.
그것들을 독일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에 보내기로 했다.
그 과정은 오래된 의문에 스스로 답을 찾는 시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