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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Mar 07. 2024

TV 속 본부장들은 다 돈이 많고 잘 생겼더라구요.

북조선과 남한으로 구분하지 않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


북조선과 남한으로 구분하지 않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너는 어디 지역 출신이니? 너희 나라는 여전히 가난하니? 어떻게 넘어왔니? 등 북한에서 온이웃과 친구들에게 우리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다양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그저 오늘날을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평범한 이웃들의 삶과 일상을 듣고 싶습니다. 무엇이 얼마나 다른 지가 아닌, 무엇이 같은지, 함께할 수 있는 공감과 고민이 무엇인지, 우리가 서로에게 진솔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 우리는 서로 묻고 싶습니다.






JOO (30대 대학생)



Q. 어제는 뭐 했었어요?


중국어를 할 줄 아는데 17일날 있을 북경 예술전시와 관련된 일들, 예를들어 통관처리, 계약, 위탁판매 등의 업무 등등으로 매우 바빴어요.




Q. 중국어를 어찌 그리 잘하시나요?


고등학교 때 선택이 중국어였고, 사는 곳에 중국 화교들의 왕래가 많아 친구들도 많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음. 저는 중국영화를 많이 보고, 중국노래도 많이 들어 보았어요. 인상적인 영화로는 홍루몽(중국 전통 사극영화, 사실주의, 사대부의 삶)과  갈망(드라마, 신중국시대(문화대혁명)때 개인의 삶, 가족과 사랑의 이야기) 등이 있어요. 




Q.가장 많이 기억나는 풍경이 있나요?  


공산주의는 책으로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전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우리(북한)가 이를 이루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던 생각이 나요. 사회주의 시대 때 북한시절(장마당 시절 이 전의 북한)에, 저는 부모님이 지방에서 고위공무원이었어요. 


사회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의 직업이 사람들의 사회편의를 위한 직업 정도로만 인식했지, 그리 높은 직책인지 몰랐어요. 아버지는 지역의 고위공무원이었는데 제철소의 노동자들보다도 배급을 더 적게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인민학교 때 아버지가 고위간부라 하여 특혜를 받거나 혹은 영향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북한은 과외라는 게 없어요. 그래서 많이 놀아요. 아이들이.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도 노동을 꽤 하는데 그게 조직 속에서 친구들이랑 함께 하는 것이라 즐거웠어요. 집단 안에서 개인의 역할, 상대에 대한 존중, 살아가면서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그 때 배웠어요.



다 같은 옷, 다 같은 연필, 똑같은 공책을 받고 아침에 노래소리를 들으며 등교하는 게 참으로 즐거웠어요. 그 당시에는 남조선은 못먹고 굶주는 곳이라 교육을 받았어요. 미군 군화를 닦아주는 남조선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래서 당시에는빨리 통일이 되서 이 어려운 남조선 아이들을 구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성인이 되고 군대에서 근무를 했었어요. 철책 인근 시골을 보며 아 남한은 깔끔하구나 이 정도만 생각했지. 63빌딩이나 스카이라인 이런 건 상상도 못했어요. 종종 남한 티비를 접했는데 티비 속 본부장들은 다 잘생겼고 돈이 없는 여자들을 좋아하더라고요.




Q. 남한에 살면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점점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사람사는게 다 똑같겠지. 같은 민족인데 낯설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입국해서 의료검진, 조사기간을 받으며 그 때 들렸던 한국말들이 너무 낯설었고, 신문을 보는데 제목과 내용을 꼼꼼히 다 읽었는데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파트는 다 똑같고, 길은 헤매고, 분명 저 큰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 텐데, 사람들은 구경도 하지 못했어요. 우리 아파트 앞에서 한 시간을 서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어요. 



북한에서는 마을어귀에서 마주치면 서로가 인사하고 같이 밥도 먹고 살갑게 지냈었는데. 입국하고 나서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정착금으로 400만원을 받았는데, 마트에 냉장고, 세탁기, 티비 이런 가격만 보면 냉장고와 세탁기를 동시에 살 수 없었는데. 나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어찌 사야하는 지 몰랐어요.


도저히 판단이 되질 않아 5개월 동안 아무것도 살 수 없었어요. 임대아파트는 소형평수인데, 그 작은 공간이 당시 나에게는 너무 큰 공간이었어요. 평생 조직생활을 해왔는데, 태어나서 단 한번도 늦잠을 자거나 내 마음대로 놀아본 적이 없어요. 나는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누구도 날 찾지 않는 게 너무나 불행하다 생각했어요. 저는 '외래어 천국에 온 이방인'이었습니다.


재외국인 전용입학은 나에게 혜택이 아니라 비참한 경험이었어요. 어학당 같은데를 다니거나 혹은 예비대학같은 시스템에서 기초적인 지식, 수강신청 방법이라도 알려줬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학교는 마음을 편히 하고 싶어서 갔던 곳이라 성적에 크게 신경을 안썼으나 그래도 잘해보고 싶어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책 추천이라도 받고 싶어서. (북한에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없음)


그런데 '북한에서 온 탈북학생인데요'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폭언을 당했어요 .그 이후로는 학교에 더 관심이 떨어지고, 외롭고, 너무 힘들었어요. 지역사회에서는 누구도 날 안 찾아주고. 2년을 그리 살았어요. 이 와중에 종교, 교회만 날 찾아준 것 같아요. 북에서 왔다하니 처음 만난 분이 나를 안아주면서 크게 울어주었어요. 그 때 왜 이리 슬퍼하시지라며 생각을 했었는데 나도 어느 새 크게 울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많이 서러웠던 것 같아요.


교회에서 공간을 마련해주어, 학부모,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알려주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중국어 과외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한국문화(가정문화)를 배우고, 너무 즐겁고 좋았어요.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또 아줌마들의 문화를 배웠어요.


고양시 시민단체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살가웠고 좋았어요 . 거기서 한국 아저씨들 술문화를 배웠어요. 좀 힘들긴 했지만 너무 인간답고 좋았아요. 덕분에 고양시에 온 것에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북한에서 군인은 군인증이 나오는 대신 주민등록증이 나오질 않는데, 한국 와서 '본적'이 고양시로 되어있는 주민등록증이 생겼어요.




Q. 최근 하고 있는 고민은?


시민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최근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보호자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가족관계등록부, 병원 보호자를 적을 때, 비자 발급 시 보호자란을 채을 때 등등 보호자에 관련된 서류를 보면 2~3일간 몸이 아파요. 보호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 외 나머지는 아주 열심히 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Q. 1주일 간의 일과는?


한국 미술 작품을 중국에 위탁판매 혹은 전시 등등을 주로 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실망할 일이 종종 있어요. 한국사회에서도 다 좋은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계약서 등을 주로 작성하면서 법이나 지켜야할 것 들에 대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간만에 자유가 주어졌는데, 그 자유를 어떻게 써야하는 지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여가시간에는 볼링(140)을 치고 맥주를 마시고. 통일과 관련된 시민단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Q. 스스로는 스스로에게 무엇인가요?


저는 저를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북한에서, 사회 공동체 안에서 살 때는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한국에 와서, 고양시 시민단체에서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겠다, 내가 행복해하고 있는가 등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요. 이 시간에 무엇을 할 때 내가 제일 행복한 지, 내 시간을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지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억지로 하는 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분들한테만 신경을 쓰고 그 외에는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항시 부모님이 원하는 것, 사회가 원하는 것만 해왔는데 이제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자유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오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매번 자기소개 할 때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소개가 너무 싫어요. 그냥 제 이름만 소개해도 평평하게 받아주고 반겨주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 

저는 지금 저에게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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