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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합성 이론

사람들은 또한,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늘 찾곤 하니까요.

by Boradbury

시애틀의 어느 좋은 날, 온갖 클리셰를 공중에 띄워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이곳 날씨는 늘 갱년기에 머물러 있어 비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덮을 카디건 하나쯤은 늘 준비해 둔다. 급격한 상상의 전환은 뇌의 면역력을 저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이를 늘이기 위해선 조밀하고 긴밀하게 생각을 잘 이어 묶어야 한다.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사람은 보통 할머니일 거로 연상되지만, 그 자리에 할머니를 빼고, 다섯살 짜리 여자아이를 앉힌다. 그렇게 조금씩 클리셰를 쪼개고 비틀어서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이야기를 뜨는 것이 나의 유일한 놀이법이자 휴양법이다.

유행곡을 많이 만들었던 한 작곡가에게 어떻게 한 두 곡도 아니고, 이렇게나 많은 유행곡을 쓸 수 있었냐고 리포터가 물었다.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신나서 말했다.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함이 없으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익숙한 멜로디를 먼저 적어 넣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이 중요하죠. 사람들은 또한,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늘 찾곤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멜로디 어느 부분에 낯선 음을 이어 붙입니다. 적당히 신선해지는 거죠. 말을 마친 작곡가는 즉석에서 시범을 보인다. 그러자 순식간에 귀에 착 붙으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곡이 탄생했다. 단 오 분만의 일이었다. 어릴 적 내 눈에 그 장면은 마치 마술사의 빈손에서 쏟아지던 트럼프 카드처럼 신기했다.

햇빛이 가득한 하늘에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콜라비, 브뤼셀, 양배추, 케일을 둥둥 띄워 놓고 가늘게 눈을 뜬다. 머릿속에 톡 쏘는 야생 겨자 같은 생각이 각종 변형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아, ‘토마토 숲’이란 제목, 참 멋지다. 토마토수프가 아닌 토마토와 숲을 합친 합성어처럼 안 어울릴 것 같은 단어의 조합은 언제나 신선하다. 누군가 토마토수프냐고 다시 물으면 장난스럽게 아니, 토마토 숲이라고 답해 주고 싶다. 그래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토마토 숲은 어떤 장르로 전개하면 좋을까.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드라마, 공상과학 등. 이야기 꽃봉오리에서 변형시키기도 하고, 이야기 줄기에서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것도 싫다면 이야기 줄기정단에서 변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한껏 기대에 부풀어 턱을 괴고 앉아 실험의 결과물을 기다린다.

‘토마토 숲’을 사람 이름으로 지정한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무의식중에 내뱉은 이 단어가 그의 임시 이름이 된 것이다. 기억상실증은 흔한 클리셰지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겪어보지 못한 새 판을 깐다. 그런 후, 그를 방화 사건에서 살아남은 남자로 설정해 놓고 사건의 전말을 꾸려 본다.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처럼 뽀글뽀글한 주인공의 머리카락은 불에 그을린 걸까, 원래 자연 곱슬인 걸까. 미간이 있는 힘을 다해 몸을 구푸린다.

톡 쏘는 겨자만 생각할 게 아니라, 콜라비 같은 깔끔한 맛은 어떤가 하고 생각의 허리를 비틀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더 넓은 독자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도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려면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토마토 숲이란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봤다. 빨강, 초록의 토마토인이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없던 세계관을 만드는 건 꽤 복잡한 작업이지만 그 안에선 불가능한 것이 없으니 매우 흥미롭다. 작가인 내 맘대로 풍경이 그려지고, 규칙이 세워진다. 그 모습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보단 <슈퍼배드>나 <인사이드 아웃>에 가깝다.

절정으로 올라가기엔 아직 부족하다. 브뤼셀 같은 더 독특한 한 방이 필요하다. 그때, 처마 밑에 달아둔 풍경이 흔들려 소리를 냈다. 맑고 더운 날이라고 바닥에 꽉 박아뒀던 내 고정관념에 경종을 울린다. 이야기 안에 넣을 풍경 소리가 필요하다.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 무언가를 뜬다는 건,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무척 어려운 퀴즈일 수 있다. 이젠 중년의 내가 나설 차례다. 토마토 숲에 사는 토마토인들에겐 각자의 매칭 인간들이 있고, 그들의 성숙도에 따라 토마토인들은 초록, 빨강이 된다는 이 설정은 실재하지 않는 세계라도 완벽히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자, 이제 양배추와 케일 같은 결말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끝을 잘 감싸 주지 않으면 온갖 물음표로 구멍이 나고, 주제가 줄줄 새기도 하니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어떤 클리셰에 새 옷은 입혀볼까 하다가 보편적 인간의 삶을 떠올린다. 누구나 겪기에 공감할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아! 하고 시애틀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갑자기 맑은 하늘에 비를 뿌린다. 창문에서 불어오는 공기가 금세 시원해진다. 뜨겁게 올랐던 이야기를 식힐 차례다. 인간의 성장과 성숙, 회복이라면 어떨까. 주인공들의 상처가 회복되고, 미성숙했던 모습들이 빨갛게 익어가는 것.

시애틀의 날씨로 콜히친 처리된 뇌가 생각의 양을 두 배로 늘려 세상에 없던 이야기 한 편을 오 분 만에 만들어 냈다. 단순한 소재에서 시작된 클리셰는 새로운 설정과 상상력이 섞여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제 만족스러운 실험 결과지를 받아들며 공중에 띄웠던 것들을 모두 거둬들인다. 서늘해진 공기에 카디건을 걸쳐 입는다. 흔들의자 위에 완성된 무지개색 스웨터만 남겨 두고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아이가 떠난 흔들의자가 홀로 여유롭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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