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란 말이야. 옆으로 비껴치지 말고 딱 위에서 정확하게 맞아야 해.
오늘도 문화 뉴스의 대부분은 세계를 강타한 한국 드라마 소식이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뒤집어졌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함께했던 놀이가 전 세계인의 놀이로 급부상했다. 한국 놀이라고는 윷놀이 정도 한글학교에서 배웠던 우리 집 막내가 갑자기 집안의 온 종이를 다 꺼내어 딱지를 접는 모습은 매우 생경하다.
이미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아이가 새벽부터 딱지 넘기는 연습을 한다. 층고가 높은 탓에 조용한 집이 딱딱거리는 소리로 요란하게 아침을 맞는다. 처음 해본 낯선 놀이여서인지 요령이 없다. 급기야 왕년에 동네에서 애들 딱지 좀 뺏어봤다는 외삼촌이 팔을 걷어붙이고 단기 속성 수업에 들어간다.
잘 보란 말이야. 옆으로 비껴치지 말고 딱 위에서 정확하게 맞아야 해. 그리고 딱지를 만들 땐 좀 두꺼운 종이가 필요한데... 달력은 없을 것이고. 아, 이 광고지가 좋겠다.
막내는 외삼촌이 빳빳한 광고지로 접어준 대왕 딱지를 들고 전 세계 1위에 빛나는 딱지 왕을 꿈꾼다. 어릴 적 맨날 공부는 안 하고 바깥으로 놀러 다닌다며 엄마에게 구박받던 내 동생은 미국에 와 비로소 조카에게 영웅이 됐다.
그럼 이 드라마의 흥행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외국인들 눈에 한국 놀이가 신기하고, 재미있어서일까.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식 신파가 통했다’고 말한다. 난데없이 신파 타령이라니.
80년대 생인 내게 신파극이란 <이수일과 심순애>처럼 옛날식 진부한 막장 이야기와 심장이라도 토해낼 듯 ‘아~ 그랬던 것이었다.’를 연거푸 외치던 변사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심지어 변사는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기 위해 말의 마지막을 살짝 날려버리는 고급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과장된 스토리텔링이 참 웃길만도 한데 당시 소시민들에겐 눈물깨나 쏟게 했던, 대단한 극 문화였을 터다.
신파극은 사실 일제강점기에 넘어온 일본식 연극 용어다. 서양 연극에 영향을 받은 극을 가부키 같은 구파(舊派)극과 구분 짓기 위해 신파(新派)극이라 불렀고, 자연스레 우리나라에도 유입됐다. 후엔 우리 고유 소설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처음엔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을 올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작품성보단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상업성을 더 강조하다 보니 지금으로 치자면 막장 드라마가 되겠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과연 한국에만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한국식 신파’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
7년 전,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국 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유명작가의 작품이었고, 엄마가 그녀의 작품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함께 보게 됐다. 이 드라마의 명장면이라면 단연 치매 걸린 엄마를 연기한 고두심 씨가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는 장면이었다. 그 옛날 약이 귀하던 시절 흔히 아까징끼라고 부르던 요오드팅크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물론 실제 약효가 그랬단 말은 아니다. 그냥 단순 소독약에 지나지 않았던 그 약은 강렬한 색깔 탓인지 엄청 아프다가도 스윽 발라놓기만 하면 낫는 것 같은 심리적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다. 그런데 이 간단한 소품으로 작가는 한평생 고통을 참으며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의 모습을 표현했다.
한국식 신파에는 희생이 있다. 그래서 감동이 있다. 자식을 위해 더럽고 치사한 사회생활을 감내하며 굽신거리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에서, 일찍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내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신의 형편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친구를 위해 도시락을 건네고 물배를 채우던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눈물을 쏟아낸다.
어쩌면 신파는 세련된 서양 극의 형식을 끌어오긴 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감정, 그 밑바닥을 건드린 현대 변사의 고급 기술이 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단순히 돈을 벌고, 유명해지기 위한 상업적 기술이었다 할지라도 이런 한국의 스토리텔링이 세계인에게 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인간’임을 재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침대에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막내의 딱지 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그 위로 과하게 포장되는 외삼촌의 허세 가득한 훈수가 이어진다.
이야, 내가 말이야 옛날에 밖에 나가면 동네 친구들 딱지를 다 따서 두 손 가득 들고 들어 왔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가르쳐 준 대로만 하면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
그래, 아~ 그 옛날 네 외삼촌은 그랬던, 그랬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