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dbury Apr 09. 2024

벚꽃 바이러스

코비드를 지나며...

    너 뭐 하니? 

    멍 때리고 있어요. 아니, 생각하는 중이에요. 

    무슨 생각? 

    그냥 그저 그런 거요.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사람들은 난리인데 저 벚나무엔 봄이라고 다시 꽃이 피고 있잖아요. 그것도 참 예쁜 연분홍으로 말이죠. 이번 바이러스는 사람과 동물에게만 나타난다고 하니 올봄은 저들만의 축제가 되었네요. 저들과 바이러스는 근본이 같을지도 모르죠. 처음엔 한 곳에만 국한된 것 같은데 어느샌가 저만의 길을 따라 번져가고 번져가고. 정신 차려보면 온통 주위가 저들로 가득 차잖아요.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본 적 있어요? 그건 마치 꽃송이 같죠. 민들레 꽃씨 같기도 하고. 그렇게 바람을 타고 소리 없이 공기 중에 번져 가는 것들. 하지만 누군가에겐 알레르기를 일으키잖아요. 알레르기가 그런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에겐 문제가 안 되는데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에겐 함께 가지만 함께 가고 싶지 않은 친구가 되어 버리거든요. 바이러스도 그런 거 아닐까요?  

    망상이야. 

    이건 망상이 아니에요. 이치에 안 맞는 얘긴 아니니까요. 하지만 오늘 아침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죠. 이 바이러스는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 중국, 일본, 한국을 넘어 이탈리아, 호주, 미국… 저들은 참 열정이 넘치는군. 나도 못 가 본 무수한 나라들을 오로지 저들만의 날개로 날고 날아 어디까지 가고 싶어 저렇게 몸부림치는 걸까? 그래서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어쩌면 저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매개체로 삼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걸지도 몰라요. 저들이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요? 정말 미안해.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우리도 저들처럼 공기 중에 사람들 눈을 피해 날아다닐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난 홀딱 벗고 거리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싶어요. 내 몸을 졸라매고 있던 모든 것, 내 속에서 꿈틀대는 것들의 거대한 폭발. 정말 멋지지 않아요?

    공상이야.

    이건 공상이 아니에요. 가끔 해외토픽에 보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단지 내겐 그럴만한 용기가 없을 뿐이죠. 사회적 틀을 깨부술만한. 그건 풍기문란죄가 되나요, 공연 음란죄가 되나요? 시선이란 게 참 무섭죠. 수많은 눈동자. 그것들이 내게 쏟아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짜릿할 수도, 끔찍할 수도 혹은 창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번져가는 것들의 속성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단 거예요. 자신의 목적에만 집중하죠. 뚝심 있게 하지만 요란하지 않게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는 거예요. 돌아보니 후회되는 것들이 참 많아요.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괴롭힐 때 난 용감하지 못했죠. 내 소신은 구석 어딘가로 숨어버렸고요. 그래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어요. 그 친구의 겁먹은 눈동자가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내 입은 왜 그깟 들판이나 서성이는 코요테들의 시선 따위에 무너졌을까요? 저들의 목을 비틀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인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그냥 그랬다고요. 자백은 아니고, 고백이에요. 다시 돌아간다면 난 입을 열어 그들에게 뭐라도 내뱉을 수 있을까요? 고약하게 냄새나는 가래라도 목을 긁어 퉤 하고 말이죠.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친구 앞에 다시 서 그 눈을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야. 

    이건 상상이 아니에요. 나의 헛된 바람이 만들어낸 허상이죠. 다시 말하지만 번져가는 것들을 보며 드는 생각들이라고요. 누군가는 저들을 보며 공포에 떨죠. 나에게로 올까 봐, 나에게 붙어 영원히 안 떨어질까 봐. 여기 한 아이가 있어요. 그의 친구가 어찌나 장난꾸러기인지 코딱지를 파서 아이에게 점점 다가갔죠. 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듯 뒷걸음질 쳤어요. 오지 마! 하지만 친구는 그 모습이 더 재미있는지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어요. 코딱지를 묻힌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였죠. 아이는 결국 벽까지 몰리고 말았어요. 오지 말라고! 그 불안에 잠식당하는 순간 이미 코딱지 하나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포기하게 돼요. 불안이 번지는 속도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더 빠르니까요. 달리기 시합을 한다면 벚꽃이 동메달, 바이러스가 은메달, 불안이 금메달을 목에 걸 거예요. 꿈을 꿨죠. 사람들이 불안으로 인해 서로를 해하고, 해하는 그런 장면이 반복됐어요. 끔찍하다 못해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기만 했죠. 

    몽상이야. 

    이건 몽상이 아니에요. 현실의 오마주죠. 현실에 대한 경의. 참 대단하다, 지긋지긋하게 대단하다, 하면서요. 아니, 비꼬는 것이니 패러디라고 해야 할까요? 내 의식이, 꿈이 현실의 페르소나가 된 것이죠. 그렇다면 벚꽃은 바이러스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 인간이 불안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을 비웃으며 패러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저들이 보기엔 한 편의 코미디 영화 같겠네요. 

    난 벚꽃을 보고 있어요. 몇 주나 갈까요? 올해 봄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봄비가 내리고, 꽃잎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면 번져가는 연분홍 길을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죠. 불안도 그편에 함께 쓸려가도록.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거나 마셔. 바이러스에 좋대. 

    무슨 차인가요?

    대추 생각차. 아니, 대추 생강차.


작가의 이전글 외계인 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