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마치 과속 방지턱의 무늬 같다.
눈 앞에 휙 하고 나타난 건 분명 사람이었다.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옆도 확인하지 않고, 운전대를 왼쪽으로 꺾었다. 남자가 내 쪽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검은 후드티에 숨겨진 그의 하얀 얼굴이 재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서야 급제동을 걸고, 경적을 울렸다.
이른 새벽, 비까지 내리는 어둠 속에서 가시거리는 몹시 짧다.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대로에선 눈 앞까지 가야 겨우 그게 무엇인지 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양쪽 차선에 오던 차가 없었기에 큰 사고는 면할 수 있었다. 무단횡단 하던 남자도 놀랐다는 듯 험상궂게 이 쪽을 한 번 째려보곤 재빨리 길 건너로 사라졌다. 새해 첫 날이었다.
오래 전 그 날도 새해 첫 날이었다. 자정에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험악하기로 유명한 동네를 지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보도도 아닌 차도 가장자리를 휘청거리며 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신경이 쓰여 속도를 줄여 지나가는데 남자가 갑자기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놀라서 운전대를 왼쪽으로 꺾으며 경적을 울렸다. 남자는 취한 것 같이 휘청거리다가 다시 보도 가까이로 몸을 붙였다. 동승했던 엄마가 깜짝 놀라며 내 어깨를 쓸어 내렸다. 혼이 나간 것 같았다.
어릴 적 기억 중에는 유독 강렬한 장면들이 있다. 주로 큰 충격을 받았던 장면들이다. 그게 인간 관계였든, 사고였든, 훈계였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 장면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유독 굵고 진한 줄로 그어져 있다. 그건 마치 과속 방지턱의 무늬 같다.
그 중 가장 굵고 진한 줄은 고등학생 때,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다. 그 날은 친구 생일이었다. 난 친구와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열 시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는 날 기다렸다는 듯 혼을 내기 시작했다. 친구의 아버지가 왔다 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책임을 물었다. 아마도 ‘나와 함께 나가서 노느라 친구가 집에늦게까지 안 들어왔다’는 대목이 아버지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난 잘못이 없다고 했다. 친구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나간 것이었고, 열 시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날 선 대화들이 오갔다. 내겐 납득할만한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처음이었던 만큼 상한 감정은 오래 갔다. 아버지와 나는 한 달을 입 다물고 살다가 엄마의 중재로 겨우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난 그때 내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내 입장만 생각한 것. 그리고 내 생각만 옳다고 단정지었던 것.
가끔 넋을 놓고 삶의 대로를 달릴 때면 오만, 아집, 편견, 교만, 그런 것들이 갑자기 내 앞으로 예고도 없이 뛰어 든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그럴 때마다 그 날, 그 일이 떠오른다. 그건 내게 정신 바짝 차리라고 경고등을 비추고, 경적을 울린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장면을 남긴다.
남자는 이미 어둠 속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정신 차려. 누군가 내 뺨을 때리는 것 같다. 새해부터 사람을 칠 뻔하다니. 넋 놓고 운전하다가 무서워서 혼났네. 미묘한 불안에 주변을 다시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