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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던 나는 나로 죽을까

신의 시간은 인간의 것과 같지 않다.

by Boradbury Feb 11. 2025

  시간이 없다. 

  X축과 Y축이 만나는 모서리에서 시작된 점 하나는 경사면을 만들며 한 걸음을 내디딘다. 마감이라는 고지를 향해 무수한 발자국을 찍어 상승곡선을 그려갈 예정이다. 이제 필요한 건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손가락이다. 신은 왼손잡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믿으며 오른손잡이인 난 괜히 왼손에 더 힘을 준다. 그래야 두 손의 속도를 맞추는 신의 경지를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컴퓨터 화면 상단의 시계를 확인한다. ‘분’ 자리의 숫자가 내 이런 속도 모르고 다음 숫자들을 줄 세워 달린다.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어릴 적부터 훈련된 숫자세기를 시작한다. 1, 2, 3, 4, 5....

  시간에 취약한 기억력은 다이얼을 돌려 20년 전에 읽었던 책 앞으로 날 데려다 놓지만, 사랑하는 이의 구원을 위해 과거로 달리던 주인공의 모습만 제자리를 돌고 돈다. 그가 사랑했던 그녀는 죽을병에 걸렸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였던가. 좀체 엉성한 그물에 걸리지 않고 다 빠져나간 세부 사항을 찾아오긴 쉽지 않다. 

  그나마 몇 개 큼지막한 이야기를 심해에서 건져 지금의 내 양식으로 삼는다. 오늘을 살아가기에 그만큼이면 충분하다. 나였던 점 하나하나는 뭉쳐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입체가 되며 점차 고차원을 이루지만 실제로 느끼는 건 사랑하는 이의 구원을 위해 과거로 달리던 주인공, 그 한 장면뿐이다. 앞뒤 맥락은 뇌가 선별하여 정리, 삭제해 버린다. 때론, 휴지통에 버렸던 사진 한 장과 파일 하나를 복구할 때도 있지만 정렬, 분류되지 않은 그것을 찾기는 꽤 번거롭기에 ‘귀찮아’로 묵음 처리한다.

   처음 숫자를 셀 땐 일정 박자를 따랐다. 8분음표보단 16분음표에 가까운 빠르기, 모데라토보단 알레그로가 좋았다.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숫자들이 점점 길어졌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숫자는 난해한 옷을 입고 모자를 썼다. 그걸 보는 내 마음처럼 교실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는 눈을 껌뻑이며 자꾸 꼬리에 붙은 숫자를 늘려갔다. 그렇게 힘든 하루가 365번이 지나면 나이의 뒷자리가 바뀌었다. 수십 년이 흘러 나였던 나는 숫자로 가득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시계를 흘기는 눈이 머리에 구멍을 내고 뭐라도 토해내라, 돼지 저금통 흔들듯 한다. 

  글은 사건과 생각을 점으로 찍는 일이다. 부지런히 열 손가락이 검은 키들을 눌러 그 점을 선으로 만들고 선은 모이고 모여 남기고 싶은 장면을 만들고 거기에 의미를 더해 입체로 부푼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은 지난 시간을 먹고 자란 지금의 나다. 어쩌면 다른 건 다 빠져나가도 마지막까지 그물에 가두고 싶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신의 시간은 인간의 것과 같지 않다. 처음과 마지막을 모두 알고 있다는 신의 시간을 이해할 순 없다. 미래는 아직 쓰지 않은 글이라 난해한 옷과 모자를 쓴 숫자 같다. 그러니 죽음은 마감처럼 빠르게 바뀌는 ‘분’ 자리 숫자고, 모든 이가 공평하게 갖는 규칙에 따라 그래프 고지를 향해 오른다. 어떤 물리학자는 그것을 거스를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우렛소리>처럼 무심코 나비 한 마리라도 밟는 날엔 무시무시한 미래를 만날 용기 또한 있어야 한다. 내겐 그럴만한 용기가 없기에 아예 질문을 가지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산다고 하는 현 인류는 연기된 죽음을 축복이라 말할까. 그건 그저 더 긴 숫자세기를 할 수 있게 된 고학년에 들어섰다는 뜻이 아닐는지. 신의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있는 것이란 현대 물리학에 닿아있다. 기억의 그물 사이로 다 빠져나가 굵직한 것들만 남은 과거의 나, 이 순간을 더 잊지 않으려 컴퓨터 화면 가득 까만 글씨를 채우고 있는 지금의 나,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해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하는 미래의 나. 이 셋이 한 그래프 안에서 만난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나였던 나는 나로 죽을까?

  이제야 생각났다. 사랑하는 이의 구원을 위해 과거로 달리던 한 남자의 이야기. 죄를 짓고 최초로 시간을 세게 된 한 인간의 이야기. 숫자의 연자 맷돌을 계속 돌리며 살아가야 했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시간을 되돌려 그녀에게로 달리고 또 달렸다. 다소 허무한 결말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시간을 세는 유일한 존재임을 강조하기에 충분했다. 

  4차원은 3차원 입체를 넘어 시공간을 더한다. 그건 신의 영역일 테지만 시간을 지우고 숫자 세기도 멈춘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차원의 눈으로 그래프 전체를 보려 한다. 그러자 하나의 내가 고요히 입술을 달싹인다. 변치 않는 규칙 안에서 난 언제나 하나였다고. 

  글 하나가 완성됐다. X축과 Y축을 따라 상승곡선을 그리던 글의 흐름이 전체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시간이 없어 쫓기던 내게 드디어 평온이 찾아온다. 글을 닫는 것처럼 하나의 나는 처음의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돌아보거나 염려하지 않고. 

  시간이 없다? 아니, 원래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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