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본 것 같아.
어디선가 본 것 같아.
사람들은 이런 걸 데자뷔라고 한다지. 참으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이름이야. 그건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우연을 가장해 자주 스치는 상황과 비슷하다랄까? 왜냐하면 주인공은 꼭 이런 대사를 던지거든. 우리 어디에서 본 적 없어요? 극작가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이건 운명이고, 우주의 법칙입니다. 관객 여러분, 인제 그만 받아들여요. 그런데 이 현상에 비명을 지르는 한 여자가 있어.
이 여자, 또 시작이네. 그녀의 광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 해마의 기억력을 극찬하며 브라보를 외쳤었는데 이젠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고 있어. 글 쓰는 날이면 항상 그래. 상황을 재연하자면 이런 거지. 먼저 어떤 글을 써 볼까, 기대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그리고 기억 창고를 뒤져 아주 작은 거라도 쓸만한 걸 찾아내면 바로 시작해. 작업 중간에도 수시로 내게 와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 가지. 그래서 잘 풀려가는가 싶을 때쯤 그녀는 하얗게 질려버려.
어디선가 본 것 같아.
바로 그게 문제야. 데자뷔가 느껴지는 글. 그런 글은 표절 시비에 휩싸이거나 신선하지 못한 글로 분류되어 독자들에게 내쳐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내 잘못이라고? 오해하지 마. 사실, 그건 기억의 문제가 아니거든. 그녀는 그녀보다 더 큰 그림자 안에 들어가 숨어. 사람들은 극한의 공포에 이르면 비명도 지를 수 없다지. 그저 숨을 참고 공포를 대면할 뿐 그 어떤 신체 부위도 말을 듣지 않잖아. 그녀의 상태가 이러하니 나도 움직일 수가 없어. 그녀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중이야. 마른 살 비비는 소리가 들리는군. 속상한 건가, 이상한 건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는 알 것 같아.
그래도 이 여자, 많이 변했네. 어릴 적엔 그저 3.1운동은 아이구아이구(1919)년,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억지로 내 창고에 기억을 구겨 넣기만 하더니 이젠 기억을 조합할 줄도, 깊은 생각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을 줄도 알게 되었잖아. 창작이라는 게 다 그렇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폭우 아래서 물 받듯 하겠냐고. 사막의 오아시스는 고사하고, 불타는 태양에서 물 한 방울 찾기만큼 힘들지 않을까? 때로는 영화 <완벽한 거짓말>의 주인공 마티유처럼 남의 빛나는 글을 훔치고 싶을 때도 있을 거야. 또한 원하는 능력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원망할지도 모르지. 어쩌면 흰 종이 위에 세워질 잉크 제국은 데자뷔와의 처절한 전투를 통해 신기루를 현실로 만드는 작업의 결과물일 테니까. 심지어 그건 군대가 아닌 한 명의 병사가 치르는 외로운 싸움과도 같지. 그래서 지금 그녀는 홀로 싸우고 있어.
‘왜 신선한 단어와 표현들은 언제나 잡힐 듯 말 듯, 보이긴 하지만 닿진 않는 범위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공전하고 있을까? 우주의 법칙이니 이유 불문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왜 그사이엔 나를 향한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거지? 가만히 있어도 나무에서 열매처럼 뚝 떨어지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데도 다시 돌아야지 어쩌겠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며 돌고 돌다 보면 가끔 별똥별 떨어지듯 좋은 글 하나라도 건질 날이 있겠지.’
그런데 오늘 밤, 이 여자는 긴 고민 끝에 반대로 좋은 글 주위를 맴돌고 있어. 작전을 바꿨나 봐. 역시 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건 어리석은 거겠지. 낚싯대를 드리우고 열심히 미끼를 던진다면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그녀가 이제 다시 공전하기로 했다면 자, 나도 이제 열심히 돌아야겠군. 이건 그녀에게 좋은 이야기를 내어 주기 위한 나의 자전이라고 해 두지.
마지막으로, 혹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 있어? 아마도 날 처음 본다면, 당신 머릿속 해마는 기억 창고를 뒤지다가 이렇게 말하겠지. 어디서 본 것 같아. 그래, 물속에서!